회사는 대개 ‘비용’ 문제로 산업안전 대책에 소홀하다. 안전한 사회는 비싸지만, 안전하지 않은 사회가 사고로 치르는 비용은 ‘더’ 비싸다. 안전관리에 합리적으로 투자할 때 위험 비용뿐 아니라 작업시간 손실률을 낮춰 오히려 비용 면에서도 이득이라는 연구 결과도 많다.
지난 10월 완공된 충남 서산의 엘지(LG)화학 탱크 건설현장은 안전관리에 노사가 적극 협력해 상생을 꾀한 사례다. 이곳 공사를 맡은 시공사 ‘서브원’은 지난해 3월 착공 뒤 매달 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와 노사 공동 안전점검을 했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에게 작업장의 위험요소를 제보받아 회사 쪽과 함께 현장을 돌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식이었다. 다음달 점검 때는 앞서 시행한 안전조처에 대한 피드백도 주고받았다.
현장은 여러모로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작업자가 요구하는 안전설비 설치에 회사가 적극 나섰다는 점이다. 장유덕 서브원 건설사업부 책임은 “옛날 사고를 가진 사람은 회사가 노동조합에 끌려다닌다고 오해하겠지만, 직접 일을 하는 사람은 회사가 못 보는 위험을 본다”며 “작업자들의 요청으로 전에는 비용 등 문제로 꺼렸던 낙하 방지망을 이중으로 설치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그동안 무심했던 하청업체의 안전설비에도 관여했다. 하청업체가 비계(건설공사 때 쓰는 임시구조물)를 설계하고 변경하는 과정도 일일이 승인서를 받아 관리한 것이다. 마구잡이로 비계를 세우거나 고치다 비계가 무너지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일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전체 작업공정을 알면 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 노사가 공감해 소규모 작업회의도 자주 했다.
충남 서산의 엘지(LG)화학 탱크 시공사 ‘서브원’과 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가 월례 산업안전 점검회의를 열고 논의하고 있다. ‘서브원’ 제공.
그렇게 더욱 안전한 작업장이 됐다. 안전점검에 참여한 강성철 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 노동안전국장은 “회사 안전관리자는 현장을 구석구석 알기 어렵고 인력도 부족하다. 노동조합이 현장을 구역별로 나눠 살피기 시작하면서 안전 사각지대를 금방 잡아냈다”고 말했다.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고 권한을 나눠준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회사는 지난 1년 반의 노사협력 경험에서 깨달은 바가 크다. 장 책임은 “노동자의 마음을 사야 공사 품질이 좋아진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안전에 시간과 자원을 들여도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고 했다. 실제 지난여름 폭염으로 작업 속도가 늦어져 납기를 놓칠 수도 있었지만, 중대 재해가 한건도 없어 품질·공사비·기한을 모두 맞출 수 있었다. 장 책임은 “안전에 신경 써서 성공한 경험이 전파되면 건설업계 전반의 인식도 바뀔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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