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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안전관리비 빼돌리고 돌관작업 강행…이유 있는 ‘산재 공화국’

등록 2018-11-28 04:59수정 2018-11-28 09:26

[보이지 않는 죽음, 산업재해] ① 산재, 이제 끝내자

㎡당 건설비, 미·일 절반도 안돼
비용 줄이려 임시가설물 대충대충
선진국 1개층 올릴 때 한국은 3개층
낮밤, 평일과 휴일 없이 작업 속도전

산업안전관리비는 여윳돈 취급
접대비로 쓰는 등 쌈짓돈처럼
지난 9월 서울 녹번동 한 상가건물 건설 현장 옥상에서 작업자들이 임시난간을 설치하고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지난 9월 서울 녹번동 한 상가건물 건설 현장 옥상에서 작업자들이 임시난간을 설치하고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경북 김천의 추풍령 휴게소에 세워진 경부고속도로 완공 기념탑은 77단으로 이뤄졌다. 총 415㎞의 경부고속도로를 역사상 최단 기간인 28개월 만에 완공하기 위해 희생된 노동자 77명을 기리는 의미다. 11일에 한명씩, 5.4㎞당 한명씩이다. 1970년 준공 뒤 48년이 지났지만 한국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당시 작업방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속도전은 여전하다.

한국 건설 현장에서 공사 기간을 당겨 비용을 줄이는 시도는 흔하다. 낮과 밤, 평일과 휴일의 구분이 없는 이른바 ‘돌관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승현 건설노조 노동안전정책국장은 “우리 건설 현장엔 하루 만에 마쳐야 하는 하루 공정이 있는데 상당히 무리한 작업량”이라며 “선진국 건설 현장에서 1개 층이 올라갈 때 한국에선 3개 층이 올라가는 공사 속도를 비교하면 한국에서 왜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그나마 정률로 정해진 산업안전관리비는 허투루 쓰인다. 규정에 따라 산업안전관리비는 공사 종류·규모에 맞춰 재료비·노무비의 1.57∼3.43%로 정해져 있지만, 현장에선 언제든 빼먹을 수 있는 여윳돈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담당 근로감독관의 접대 비용으로 쓰이는 일도 심심치 않다. 지난 6월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부산고용노동청 동부지청장을 구속했는데, 건설회사 관계자 8명으로부터 1년여간 40차례에 걸쳐 1050만원 상당의 접대와 향응을 받은 혐의였다. 이 접대비의 재원이 모두 산업안전관리비였다. 동부지청 관할인 부산 해운대 엘시티 공사장에선 지난 3월 작업발판이 200m 아래 지상으로 떨어져 노동자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는데, 지청장은 이 사고 열흘 뒤 시공사 포스코건설 관계자들과 고급 술집을 간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

안전을 도외시한 채 그저 싸게 많이 지으려는 풍토는 여전하다. 한국은 단위 면적당 건설비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모자란다. 일본 건축컨설팅업체 에스에프시가 62개국 주택·사무용 건물 건설비 자료를 조사한 결과(2016년 기준)를 보면, 한국은 ㎡당 공사비가 163만원으로 미국(433만원), 일본(369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1위인 영국(459만원)과 비교하면 3분의 1에 불과했다. 이렇게 지으니 공사가 끝난 뒤 필요 없어지는 가설 구조물이 비용절감 우선순위가 된다.

그 결과로 값싸고 허술한 가설 구조물 위에서 많은 이들이 숨지는 일이 벌어진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산업재해현황분석’(2016년)을 보면, 업무상 사고의 40%는 가설 발판이나 비계, 거푸집, 동바리(버팀목·바닥기둥) 같은 가설 구조물에서 발생했다. 이런 구조물들은 상태가 불량한 자재를 썼거나,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을 때 하중이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지난 9월 서울 가산동에서 일어난 아파트 기울어짐 현상이나, 10월 일어난 서울 상도유치원 붕괴 사고 모두 인근 공사장에서 흙막이용 임시 구조물을 허술하게 지은 탓이었다. 가설 구조물의 안전은 현장 노동자뿐 아니라 인근 주민 등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를 그저 비용으로 여긴다.

김태범 건설노조 경기중서부지부장은 “중소건설 현장에선 비계를 설치하고 안전난간을 만드는 시간과 돈을 아끼려고 사다리를 가져다 작업하다 떨어져 사망한 사례가 적지 않다. 산업안전관리비를 사라지게 하는 최저낙찰제와 다단계 하도급 등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용 이지혜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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