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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작업 중 사고에 처벌 느슨…‘제2, 제3의 이민호군’ 불씨 여전

등록 2018-11-26 05:00수정 2018-11-26 09:37

산재 사망 고교실습생, 그후 1년

이군 아버지, 겉핥기 조사 불만
“기계 고장 알고도 무시한 회사
아들 죽게했는데, 과실입니까”

산재 사망 처벌 약한 산업안전법
10년간 기소 형사재판 5109건 중
징역형 28건뿐…3413건이 벌금형

전문가 “안전의무 위반 사망 때
미필적 고의 살인 처벌” 주장도
서울, 인천, 광주, 부산, 대전 등 전국에서 모인 특성화고 학생들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서울엔피오(NPO)에서 지난해 현장학습 도중 숨진 고 이민호 학생 1주기를 맞아 추모식과 새롭게 시행된 정책으로 현장실습 등에서 겪고 있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생생한 현실과 요구를 토론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는 헌화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서울, 인천, 광주, 부산, 대전 등 전국에서 모인 특성화고 학생들이 지난 17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서울엔피오(NPO)에서 지난해 현장학습 도중 숨진 고 이민호 학생 1주기를 맞아 추모식과 새롭게 시행된 정책으로 현장실습 등에서 겪고 있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생생한 현실과 요구를 토론에 앞서 고인을 추모하는 헌화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연간 2천여명. 이 중 38%는 떨어져 숨지고 10%는 끼어서 숨진다. 제주의 한 생수 제조업체에서 압착기기에 끼이는 사고로 현장실습 고교생 이민호군이 숨진 지 지난 19일로 1년이 됐다. 지난해 11월 무고한 학생의 죽음에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1주기는 조용히 지나갔다. 다음달 17일 회사 대표이사와 공장장에 대한 구형 공판이 있을 예정이다.

“회사는 사고 전부터 기계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수차례 받고도 아무 조처도 안 했어요. 언젠가 터질 사고를 수수방관한 건데 판례상 과실치사가 될 수 있답니다. 그게 어떻게 ‘과실’입니까? 애를 죽음으로 내몰아놓고 ‘죽을 줄 몰랐다’고 하면 다입니까?”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56)씨는 지난 1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고의 표면적인 원인에만 집중하는 고용노동부와 경찰의 ‘겉핥기’ 조사를 비판했다. “정부는 계속 팔레트(팰릿)가 불량이라 센서 오작동이 생겼고 그때 민호가 기계에 들어가서 사고가 났다는 말만 되풀이해요. 왜 회사가 기계 고장에 대한 보고를 받고도 방관했는지, 왜 방책을 안 세웠는지, 왜 위험한 작업을 학생 한명에게 맡겼는지 아무도 조사하지 않아요.”

이군의 사고는 사실상 예견된 측면이 크다. 이군 유족과 동료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사고가 난 기계는 평소에도 고장이 잦았다. 이군이 회사 쪽에 “간지공급장치가 간지를 공중에서 그냥 놔버려서 기계가 자꾸 멈춰버립니다”라고 보고한 카카오톡 기록도 남아 있다. 사망 사고 두달 전 이군은 높은 곳에 올라가 기계를 점검하다 떨어져 갈비뼈를 다친 적도 있었다.

지난해 12월6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엄수된 고 이민호군의 영결식에서 이 군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눈물 흘리고 있다. 제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해 12월6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엄수된 고 이민호군의 영결식에서 이 군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눈물 흘리고 있다. 제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회사는 기계 문제를 인지했지만 대처하지 않았다. 회사는 고장 난 기계를 정비할 때 기계를 잘 아는 작업 지휘자를 배치할 의무가 있지만 이를 오롯이 현장실습생의 몫으로 남겨뒀다. 또 자동화 기계 주변에 출입을 막는 울타리를 설치하고 노동자에게 안전수칙을 충분히 교육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대표이사와 공장장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아 피해자(이군)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혐의가 적혀 있으나 검찰은 이를 업무상 과실로 봤다.

안전조처를 하지 않아 노동자를 숨지게 한 사쪽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이유는 허술한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탓이 크다.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지면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 제66조의 2 ‘노동자 생명 침해에 대한 벌칙’ 또는 형법 제268조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처벌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으로 형법의 업무상 과실치사죄(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처벌이 강하지만, 이 조항이 적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판례상 사업주가 안전조처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거나 안전조처 위반을 알면서도 방치해 ‘고의’로 노동자가 숨졌을 때만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 대부분 사업주가 법정에서 안전조처 의무를 “몰랐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이유다. 사실상 사업주가 안전조처에 무지해야만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을 때 유리해지는 셈이다.

실제 일하다 숨져도 법은 좀처럼 회사나 사업주를 처벌하려 들지 않는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2007~2016년 10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의 형사재판 건수는 5109건(1심 기준)이었으나, 이 가운데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0.5%인 28건뿐이었다. 절반 이상(3413건)이 벌금형이었고, 집행유예(582건)와 선고유예(194건) 판결도 많았다.

전문가들은 안전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숨지게 한 사업주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성룡 경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사업주가 ‘설마 안 죽겠지’ 하고 안전보건 조처를 하지 않았는데 노동자가 숨진다면 이는 ‘미필적 고의’로 봐야 한다. 그런데 현행법은 이런 경우에도 고의범으로 처벌하지 못한다. 사실상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업을 처벌할 마음이 없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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