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이 위탁운영을 맡긴 육아종합지원센터의 센터장이 1년짜리 기간제(계약직) 직원들에게 자신의 대학강의 학사 업무와 박사학위 논문작성 관련 작업 등 사적인 일을 시키며 ‘갑질’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근무시간에 끝내지 못한 부당한 업무는 퇴근 뒤 집에 가져가 해야했다. 복지가 확대되면서 국공립보육시설의 소규모 민간위탁 사업장이 느는데도 이런 곳의 노동조건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 감독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이 육아종합지원센터 전현직 노동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고아무개 센터장은 지난해 자신이 ㅂ대학에서 하는 강의와 관련한 행정업무 등을 직원들에게 시켰다. 강의계획서 등록·시험성적 입력·종강 뒤 강의 포트폴리오 작성 등 센터 업무와 관련 없는 것들이다. 한달에 한번 정도는 대학 외 강의 발표자료 수정 작업도 시켜, 이를 맡은 직원이 근무시간을 넘겨 금요일 저녁까지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이 센터 직원 ㄱ씨는 “지시받은 직원은 ‘을’ 입장에서 안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지도 못하고 성적 관련 작업을 하는 것을 본 적 있다”고 말했다.
센터 직원 ㄴ씨는 지난해 2월 센터장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ㅂ대학 학사시스템에 로그인해 강의계획서를 입력했다. 센터장은 입력작업에 참고하라며 전공서적 한 권만 던져줬다. 학기 중간엔 센터장의 수업 휴강과 보강 연락을 학과 조교에게 하는 ‘비서’ 업무도 맡아야 했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20∼70여명의 성적을 대학 학사시스템과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시스템에 입력하고 별도 서류로 대학에 제출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한겨레> 취재에 응한 ㄴ씨는 “자신의 강의 수강생 성적 입력하는 것도 보고하라고 하고, 학기마다 엔씨에스 포트폴리오 작성에만 꼬박 사흘을 매달리게 하는 등 업무 외 다른 것에 신경 쓰느라 편두통에 시달렸다”며 “못하겠다고 하면 퇴사당할까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원래 업무는 가정양육 부모상담 등이다. 또다른 센터 관계자 ㄷ씨는 “센터장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작성을 위해 다른 직원에게 인터뷰와 이를 풀어 입력하는 코딩 작업까지 시켰다. 어떤 직원은 영어논문 번역을 지시받았다가 어렵게 거절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은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 만성두통, 과민성대장증후군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센터장이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매일 시켰다는 증언도 나왔다. 직원들은 센터장에게 매일 아침 우유에 커피를 탄 뒤 전자렌지에 데워 가져다줘야 했다. 고 센터장이 돈도 주지 않고 우유를 사오라고 하는 지시가 잦자, 직원들은 스스로 모은 상조비에서 돈을 털어 센터장이 먹을 우유를 배달시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 센터장은 지난 11일 <한겨레>와 만나 직원에게 개인적인 업무를 시킨 것에 대해 “(내가) 컴퓨터 입력이 느려서 ‘도와줄수 있느냐’고 이야기하니까 직원이 흔쾌히 응한 것이다. 잘못인지 몰랐다. 또 커피는 내가 직원들에게 타준 게 두세배 더 많다”고 주장했다. 이날 센터에서는 고 센터장이 ‘제보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져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는 13일 다시 <한겨레>에 전자우편을 보내 “(대학 강의 관련 일이 아닌) 2018년 사업계획 등 육아종합지원센터의 고유 업무였다”며 직원에게 컴퓨터 입력 작업을 시킨 것에 대한 해명을 뒤집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국공립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관리자가 사적인 업무를 직원들에게 거리낌없이 시킬 수 있는 배경에 정부의 무분별한 ‘민간위탁’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보육·교육 등 정부가 해야할 서비스를 나랏돈을 주면서 개인과 사회복지법인·학교법인 등에 맡긴 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사와 노무관리 등은 수탁사업 기관장이 독립적으로 행사하게 되어 있지만, 지자체는 해당 기관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ㄱ씨는 “기장군에서 센터를 잘 들여다보지도 않고, 동명대도 운영위원회를 통해 예결산을 확인하는 데만 그쳤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고용도 남발됐다. 이 센터에서 일하는 13명 모두 1년짜리 기간제 신분이다. 노조도 없다.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놓인 직원들이 문제제기를 하긴 쉽지 않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깜깜이’다. 복지부 보육정책과 관계자는 “육아종합지원센터 직원은 모두 정규직으로 알고 있다. 지역센터 고용방법은 지역 예산편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 ‘육아종합지원센터 설치·운영 매뉴얼’의 직원 평가관리 항목엔 센터장 평가를 직원들이 무기명으로 진행한다는 조항이 있으나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 이 센터 직원들은 센터장 평가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아이엠에프 이후엔 비용절감과 전문성 강화가 민간위탁의 목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정부의 사회서비스 확대 차원에서 민간위탁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민간위탁의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노동인권과 고용에 대한 규제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기장군청은 센터장에 대한 직원평가와 근로계약 등은 살펴보지 않은 채 동명대와 센터장에게 재위탁을 맡겼다. 기장군청 인재양성과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보건복지부에서 만든 매뉴얼에 따라 점검을 하고 있지만 부당행위는 드러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갑질이나 부당행위 등 문제가 불거지면 위탁취소 사항까지 가는지 검토해보겠다”고 해명했다. 기장군청이 이곳에 준 예산은 지난해 6억3000만원, 올해 7억700만원에 이른다. 직장갑질119의 조애진 변호사(법률사무소 시대)는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데도 전반적인 상황이 투명하지 않고, 하나의 개인 사업체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보니 육아종합지원센터 등 국공립보육시설 위탁을 받으면 재위탁을 받는 게 당연시된다.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실 자료를 보면, 2014년∼2017년 6월까지 국공립어린이집 재위탁 심사에서 탈락한 곳은 심사대상 927곳 가운데 1%(10곳)에 불과했다. 서은실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지부 조직국장은 “국공립어린이집 위탁은 안받아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위탁받는 사람은 없다”고 짚었다.
국공립보육시설 민간위탁 사업장의 이같은 파행은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1995년 시작된 육아종합지원센터는 현재 전국적으로 100곳인데, 지자체 직영 6곳을 제외한 94곳은 모두 위탁사업이다. 국공립어린이집과 보육·복지, 방과후 학교 등 교육 행정 서비스 전반엔 이보다 훨씬 많은 민간위탁 사업장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공립어린이집을 대폭 확충하려는 정책도 민간위탁 어린이집이 늘어나는 것으로 연결된다. 지난해 국공립어린이집 전체 3034곳 가운데 97.2%(2950곳)가 개인이나 사회복지법인 등에 위탁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지난해 부산 진구의 한 국공립어린이집에서도 원장의 ‘사유화’ 문제가 불거졌다. 토요일 휴식도 연차휴가 사용으로 처리를 하는가 하면 노조에 가입한 직원들은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업무를 감시당했다. 이 원장은 10년간 국공립어린이집을 운영했고, 정년까지 재위탁을 연장했다. 서은실 국장은 “이 곳의 사례는 국공립보육시설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세금으로 운영돼도 원장의 갑질에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 20∼30년 국공립시설 재위탁을 받으면서 개인에게 사유화되고, 공무원들도 건들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사회복지 시설은 소규모라서 장기 위탁을 주면 사유화되고 갑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광역지자체가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해 보육복지시설을 직접 운영·고용하면 직원들의 근로여건도 좋아지고 소비자 만족도도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이완 기자
wani@hani.co.kr
사장님 갑질, 부장님 갑질, 정규직 갑질, 원청업체 갑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직장갑질 빅뱅의 시대다. 40여일 전 문을 연 오픈카톡방 ‘직장갑질119’에는 매일 700명 이상의 직장인이 들어와 자신이 당하는 직장갑질 사례를 제보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갑질’을 검색하면 누구나 방에 들어올 수 있다. 저마다 털어놓는 온갖 애환을 보고 있노라면 ‘직장이 지옥’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직장갑질119와 <한겨레>가 공동으로 기획해 연속 보도한다. 제보: gabjil1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