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민주노총이 “국회의 근로기준법 개정 추진은 ‘노동시간 연장-휴일근무 임금삭감’이라는 개악”이라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청와대와 정부, 더불어민주당 등 당정청의 근로기준법(근기법) 개정 추진에 대해 노동계의 반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은 주 최대 노동시간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을 즉각 폐기하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권 일각의 ‘근기법 연내 처리’ 주장과 관련해 노동계 일부에선 “내년 초 대법원 선고 이후로 법 개정을 늦춰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14일 한국노총 집행부는 우원식 원내대표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 근로기준법 개정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지만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분위기가 안 좋았다. 싸우다시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이 자리에서 “잘못된 행정해석 폐기가 먼저”라고 강조하고 “여야 합의가 가능한 ‘근로시간 특례조항’부터 개정”할 것을 주문했다.
노동계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으로 최대 68시간(법정노동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토·일 휴일근로 16시간)까지 허용하고 있는 주당 노동시간의 단축(주 52시간)과 휴일근로를 연장근로로 인정해 휴일수당과 연장수당의 중복할증을 요구한다. 또한 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아니라 정부가 행정해석을 폐기하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여권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의 핵심 쟁점인 휴일수당 중복할증(100% 임금 더 지급)을 허용하되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하자는 주장(우원식 원내대표)과, 50%만 추가 지급하자는 주장(홍영표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등이 엇갈린다.
13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노동시간에 대한 행정해석이 잘못 됐으면 폐기하는 게 맞다”며 “휴일노동·연장근로 중복할증 논의는 내년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자”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14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근기법 개악을 강행하면 노-정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집권여당이 오히려 근기법 개악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 청와대가 불개입이 아니라 적극 제동을 걸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14일 <한겨레>에 “노동시간 단축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고, 고용부장관도 사과하지 않았느냐”며 “현재의 행정지침을 유지하면 법 개정을 논의하는 동안에도 피해자가 발생한다. 당정청 회의에서 ‘단계적 시행’을 언급한 것은 내년 1월 대법원 공개변론을 앞두고 정부가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부위원장은 “과거에 주 44시간 근로를 40시간으로 단축할 때에도 사용자 쪽에선 금방이라도 경제가 망할 것처럼 위기설을 내세웠지만 사실무근이었다. 왜 집권당이 그런 위기설에 현혹돼 근기법을 개악하려 하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와 집권당이 노동계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해야 하는데 민주노총 쪽엔 아직 그런 제안이 오지 않았다”며 “대화 요청이 온다면 당연히 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14일 “행정해석을 폐기하면 굳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다루지 않아도 된다”며 “정부와 여당은 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한 여야간 합의가 안되면 행정해석을 내년 1월에 폐기하겠다고 밝힌 약속을 지키면 된다”고 말했다. 남 대변인은 근기법 개정 논란과 관련해 ‘정치권과 노동계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논의가 꼬이고 있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선 “집권 민주당 내부에서 혼선을 빚을 뿐, 노정 관계가 꼬인 건 아니다. 행정해석 즉각 폐기가 사태의 실마리를 푸는 가장 간명한 방안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날 한국노총과 정책협의를 진행하며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했지만 이 법을 둘러싼 여권 내부 이견부터 조정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당 원내 핵심 인사는 “당 내부 이견을 조정하는 일과 함께, 환노위 소속 한정애 간사가 한국노총 실무진 등과 만나 노동계와 의견 교환을 진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조일준 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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