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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동운동의 꿈 ‘배제된 노동자’들과 연대로 되살려야”

등록 2017-12-14 19:34수정 2017-12-14 20:54

[짬] 한국지엠 노동자 이범연씨

이범연씨는 책을 내기 전 원고를 ‘수유너머’ 학습 공동체 동료인 이진경 교수에게 보내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상투성을 걷어내고 당신의 특이성을 살리라고 하더군요. 도움이 됐어요.”  그는 1989년 입사 이후 계속 자동차 차체 사이의 틈을 메우는 실링 작업을 하고 있다. “같은 작업 라인에 저와 같이 나이 든 노동자가 많아요. 죽을 만큼 노동 강도가 센 편은 아닙니다. 비정규직 라인이 더 세지요.” 그는 “비정규직은 정규직 급여의 절반도 받지 못한다”며 “2·3차 파견 비정규직은 1차 파견자에 견줘 임금이 더 떨어지는데, 갈수록 2·3차 파견 비정규직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범연씨는 책을 내기 전 원고를 ‘수유너머’ 학습 공동체 동료인 이진경 교수에게 보내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상투성을 걷어내고 당신의 특이성을 살리라고 하더군요. 도움이 됐어요.” 그는 1989년 입사 이후 계속 자동차 차체 사이의 틈을 메우는 실링 작업을 하고 있다. “같은 작업 라인에 저와 같이 나이 든 노동자가 많아요. 죽을 만큼 노동 강도가 센 편은 아닙니다. 비정규직 라인이 더 세지요.” 그는 “비정규직은 정규직 급여의 절반도 받지 못한다”며 “2·3차 파견 비정규직은 1차 파견자에 견줘 임금이 더 떨어지는데, 갈수록 2·3차 파견 비정규직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범연(55)씨는 한국지엠(GM) 부평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다. 5년 뒤면 1989년부터 일해온 이 공장에서 정년을 맞는다. 그는 이른바 위장취업자다.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다닌 사실을 숨기고 대우자동차(한국지엠 전신)에 들어갔다. 당시 상당수 운동권 학생들의 경로를 따라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고 노동운동을 선택했다. 진짜 노동자가 되기 위해 입사에 앞서 6개월 동안 직업훈련원을 다니기도 했다. 그가 최근 “‘내부자’ 눈으로 본 대기업 정규직 노조&노동자”라는 부제를 단 책(<위장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을 냈다. 지난 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자를 만났다.

그는 이렇게 썼다. “2003년 이후 커다란 풍파 없이 공장 노동자로 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03년은 그가 두번째 해고 뒤 복직한 해다. 92년엔 위장취업을 빌미로, 2001년엔 대규모 정리해고 반대 투쟁으로 해고와 구속을 당했다.

두번째 복직 이후 급여도 늘었고 노동조건도 좋아졌다. 요즘 야근을 할 때는 잔업을 해도 오전 1시30분이면 끝난다. 입사 초기엔 오전 8시에 퇴근했다. ‘큰 풍파 없는 노동운동가의 삶’을 아내는 이렇게 말했단다. “결혼할 때는 노동운동을 하려면 많은 걸 희생하면서 어렵게 살아갈 줄 알았는데, 지금 보면 운동을 안 한 애들보다 (우리가) 더 잘 살아.” 아내도 노동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저자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묻는다. 그가 보기에 동료들은 여전히 노동기계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늘어난 수입과 가용시간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정규직들이 예전엔 맞벌이가 많았어요. 요즘은 아내들이 직장을 그만둡니다. 아내 벌이가 (남편의) 잔업·특근 수당과 차이가 크게 나거든요. 그래서 아내를 쉬게 하고 자신들이 더 일하는 것이죠. 창의적인 자기 계발보다 술이나 도박에 빠져드는 경우도 많아요.”

89년 위장취업 2번 해고·구속
민주노총·정당 활동 않고 현장만
최근 ‘대기업 노조·노조원 자성’ 책 펴내

“대기업 노조는 선거만 신경
노조원은 여전히 노동기계 삶
노동자들 서로 만나는 게 중요
사라진 학습 토론 문화 살려야”

노조는 조합원 표 모으기에만 신경 쓰고 이기면 권력을 누리기 바쁘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노조 활동에 문제가 있어요. 선거 중심으로만 돌아갑니다.” 그는 노조 간부가 되는 것을 ‘독약 든 물 항아리에 목을 내놓고 있는 형국’이라고 썼다. 실제 작년엔 한국지엠 노조 간부 여럿이 연루된 채용·납품 비리가 터졌다. 그가 상근자로 함께 일했던 노조 지부장도 구속됐다. “지난해 사건으로 저를 포함해 노조 상근 간부들이 총사퇴했어요. 저는 이제 노조 활동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지역사회에서 다른 길을 찾아보리라 맘먹었죠. 그때 아내가 ‘당신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라’고 권하더군요.”

이범연씨가 최근 펴낸 책 표지.
이범연씨가 최근 펴낸 책 표지.
그는 책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배제된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잃어버린 노동운동의 꿈을 되살리자고 썼다. 배제된 노동자는 한국 사회에서 다수이지만 잉여나 잔여 취급을 받는 비정규직, 이주, 여성, 중소기업, 청년 노동자를 말한다. ‘배제된 노동자의 조직화, 주체화를 위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진 힘을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가’. 이 시대 노동운동의 핵심 과제로 그가 정리한 문장이다.

저자는 배제된 노동자들과 연대를 위한 대중적 소통과 토론, 네트워크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7년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비정규직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더군요. 평소 함께 술 마시며 알던 친구들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지역이나 교육기관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노동자들이 만나 어우러지고 학습과 토론을 할 기회가 주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배제된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막는 법과 제도 개선을 노동운동의 중심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도 했다. “민주노총은 여성과 청년사업부를 따로 꾸려 배제된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조직을 만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저자의 이런 주장과 달리, 한국지엠 노조는 그동안 비정규직을 외면해왔다. 노조원 1만4천명은 모두 정규직이다. 비정규직 3천명은 따로 노조를 꾸리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은 매우 낮다. 정규직 발탁 채용의 기회를 잡기 위해선 회사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노조에 들어오면 근로조건을 책임져야 하니 노조 간부들이 좋아하지 않죠. 가입안이 노조 대의원 대회에서 여러 차례 부결되었죠.” 2001년 대규모 정리해고로 큰 상처를 입은 정규직들은 8년 뒤 회사가 자신들 대신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한 조처를 묵인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는 책에서 학습과 토론이 사라진 노동운동 문화도 비판했다. “노동운동이 쇠퇴한 데는 사람들 생각이 낡고 고루해진 탓도 있어요. 문제가 있는데도 관성적 활동만 합니다.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학습과 토론이죠. 민주노총이나 산하 금속노조에서도 떠드는 사람만 떠듭니다. 대부분은 토론은 빨리 끝내고 표결하자고 해요.” 그는 2013년부터 ‘다중 지성의 정원’이나 ‘수유너머’와 같은 학습·연구 공동체에서 공부를 계속 해왔다. “(공부는) 노동운동에 직접 써먹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노동운동에 대한 관점 정립에는 도움이 돼요. 나이 들면 생각이 굳어지는데 제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반성하면서 살 수 있는 것도 공부로 생각하는 힘을 키운 덕분이죠.”

지난 삶을 어떻게 평가할까? “일관된 삶을 살았고,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부딪히며 실천했다는 점에서 잘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한 삶, 소박한 활동이었죠. 몸이나 정신에 기름기가 끼지 않는 삶이었죠.”

한때 포기하려 했던 노조 활동에 대한 열의가 최근 다시 커졌다고 했다. “회사가 다시 비정규직을 자르려고 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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