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고 바로잡는 사회적 캠페인 ‘직장갑질 119’의 전문활동가들이 지난달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4층에서 공식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한 뒤 거울로 ‘갑질 반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입니다. △△△(직장 상사)님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며 앞으로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눈물로 사과했습니다. 갑질119가 아니었다면 약자라고 당하기만 했을 텐데 도와주셔서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됐습니다. 회사도 계속 다니기로 했구요. 감사합니다!!!^^”
지난달 30일 한 직장인이 노동자 인권보호단체 ‘직장갑질119’의 활동가에게 보내온 문자 메시지다. 지난달 1일 결성된 직장갑질 119가 출범 한 달을 맞아 ‘직장갑질 30일의 기록’ 보고서를 7일 공개했다. 직장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 한 달새 이메일 676건, 오픈카톡 1330건, 페이스북 메시지 15건 등 모두 2021건의 갑질 신고와 상담이 쏟아졌다. 하루 평균 68건에 이른다. 오픈카톡방(▶
gabjil119.com)에는 연인원 5634명(하루 평균 188명)이 방문했으며, 상담자와 활동가 사이에 무려 4만207회의 대화가 오갔다. 신고·상담 내용은 임금 미지급(20.8%)과 직장내 괴롭힘(19.2%)이 가장 많았으며, 장시간노동과 야근 강요(12.2%), 휴가·휴식 미보장(8.76%). 과도한 징계·해고(7.6%), 부당 인사(3.1%), 성폭력(2.82%), 근로계약 미작성(2.47%) 등이 뒤를 이었다.
고용주나 직장상사가 저지르는 기상천외한 갑질의 민낯도 드러났다. ‘을’의 처지인 직장인들은 사장 가족과 친척의 김장 담그기, 사장 자녀 결혼식에서 온갖 잡무. 가족여행을 떠난 회장의 빈 별장에서 개와 닭 사료 주기, 캐디들에게 골프장 제설작업, 사장 딸의 이삿짐 나르기 등에 동원되기 일쑤였다. 심지어 사장과 식사하면서 턱받이를 해줘야 하거나, 회사가 동료직원의 징계 결정을 강요하면서 ‘무죄’ 결정땐 전 직원의 연봉 10%를 깎겠다고 위협한 사례도 있었다.
직장갑질119에는 노동 활동가, 노무사, 변호사 등 241명의 전문가들이 일체의 보수나 사례도 받지 않은 채 시간을 쪼개어 법률 및 노동 상담에 참여하고 있다. 노동 관련법 지식과 다양한 경험에 바탕한 이들의 도움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한림대 섬싱병원이 간호사들에게 장기자랑에서 선정적인 춤을 강요하고 연장근로수당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폭로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고, 지난 1일엔 노동조합이 결성돼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하기도 했다.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았거나 용기를 얻은 을들의 감사와 응원 메시지도 쏟아졌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콕콕 찝어주셔서 저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일단 노동부에 진정서를 넣기로 했고, 좋은결과가 있으면 좋겠어요 ㅎ”, “답변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구요, 화이팅하시길 빕니다!! 이해가 많이 되었습니다.ㅎ 세상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같은 분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수고해 주셔서 이 사회가 유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답변 주신 내용 잘 숙지하여 추후에 잘 대응하겠습니다.”
그러나 감사 인사 중엔 벼랑 끝에 내몰린 절박함이 드러나는 글들도 있었다. 회사로부터 배임·횡령 혐의로 괴롭힘을 당해온 한 상담자는 극단적 생각까지 털어놨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매일매일 답변을 기다렸는데 (…중략…) 오늘 메일이 온 것을 보고 한참 울었습니다. 농약까지 사두고 아이에게 먹이고 저도 먹을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고있습니다. 메일 답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답변 메일을 받을 때까지 제가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는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당시 상황을 메모하고 나열해두었습니다.”
직장갑질 119는 출범 한 달 동안 갑질 상담과 별개로, 고용노동부와 두 차례, 국가인권위원회와 세 차례의 공식면담을 갖고 직장인들의 실질적인 노동인권 보호와
피해 구제를 위한 근로감독 강화와 법제 정비를 촉구했다. 직장갑질 119는 앞으로도 업종(직종)별 온라인모임을 통해 노동상담, 갑질 제보, 증거 수집, 홍보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포털사이트에 직종별 밴드가 만들어지면 노동전문가·노무사·변호사 한 명씩을 배치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