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노조 김득중 지부장(가운데)과 윤충렬 수석부지부장(왼쪽), 김재환 조합원이 29일 경기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인도 마힌드라 그룹 회장과 해고자 복직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원정 투쟁’을 위해 출국하기 하루 앞서 결의를 다지며 포즈를 취했다.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제공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9년째 대량해고자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조 집행부가 1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밝힌 ‘불퇴전’의 다짐이다. 김득중 쌍용차 노조 지부장(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을 비롯해 윤충렬 수석부지부장, 김재환 조합원 등 3명은 이날 오후 인도 뭄바이로 출국하기 앞서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경영진이 해고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기 위해 12월1일 ‘인도 원정’ 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원정투쟁은 2015년 9월에 이어 두번째다. “전원 복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칙적 약속만 받고 돌아온 당시와 달리, 이번엔 복직 문제 해결의 확약과 이행 계획을 받아낼 때까지 인도 현지에서 무기한 투쟁을 벌일 작정이다. 김득중 지부장은 30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기약 없는 원정투쟁이 힘들 수 있지만, 동료와 가족을 세상에서 먼저 떠나보내는 고통에 견줄 수나 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5월에도 쌍용차 해고자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벌써 스물아홉번째다. 지난 9년새 29명의 소중한 목숨이 극도의 절망과 심신쇠약,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스러졌다.
현재 복직하지 못한 해고 노동자들은 130명. 희망과 절망, 투쟁과 기다림으로 점철된 9년 세월은 젊었던 그들의 몸과 마음을 윤기 없이 바스락거리는 낙엽처럼 바꿔놨다. 지금은 대부분 40대 중후반에서 50대가 됐고, 어렸던 자녀들은 중·고등·대학에 다니거나 사회에 진출했다. 해고자 대다수는 공사장 일용직, 영세업체 비정규직, 택시 운전, 보험 영업, 대리운전 같은 궂은 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면서도 조만간 복직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힘겨움을 끝내 견디지 못한 이들이 삶을 놓아버리는 비극이 9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김득중 지부장은 “이젠 어느 정도 성인이 된 자녀들이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고 전했다. 살아남은 이들과 노조도 그런 죽음을 차마 공론화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야 하는 현실은 또다른 비극이다. 김 지부장은 “해고 노동자의 배우자(아내)는 누구와 대화할 상대도 마땅히 없어 우울증이 심각하다, 세월이 흘렀다지만 그만큼 가슴에 쌓인 게 더 많다”고 했다.
“인도에서 무기한 체류 투쟁, 쉽진 않을 겁니다. 확실한 것도 없습니다. 어떡합니까, 버텨야죠.” 김득중 지부장은 “(인도로 가는 노조 대표인) 저희 3명 뒤에는 9년째 복직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절박하게 버티는 130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이 있다”며 “어깨가 무겁지만, 그분들의 절박한 심정으로 인도 원정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지난 9년 동안 해고자들은 복직 희망과 좌절 속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듯 살고 있다. 지금 그들의 건강상태는 최악이다. 이러다 다 죽는다”고도 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다.
쌍용자동차의 주력 상품이 된 티볼리. 위키피디아
쌍용차 사태는 2009년 봄 회사 쪽이 경영난을 이유로 정규직 2646명을 포함해 3000여명의 노동자에 대한 무더기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촉발됐다. 앞서 2004년 유동성 위기에 빠진 쌍용차의 경영권을 인수한 중국 상하이차가 한 푼의 투자도 하지 않은 채 핵심기술만 빼돌려 ‘먹튀’하면서 위기를 키운 뒤였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차의 구조조정으로 1904명이 울며 겨자먹기로 희망퇴직을 했고, 159명이 정리해고됐으며, 455명은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전체 직원의 37%에 이르는 규모였다. 정리해고에 반발한 노동자 900여명은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투쟁에 들어갔다. 77일간이나 이어진 점거투쟁은 경찰 특공대가 테이저건(전기 충격기), 다목적 발사기, 헬기를 동원한 최루액 분사 등 대테러 작전을 방불케 한 폭력 진압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2011년 3월 인도 마힌드라 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하면서 순차적으로 조금씩 해고자 복직이 이뤄져왔다. 2015년에는 희망퇴직자를 포함한 퇴직자 전체를 대상으로 복직 희망원을 받아 103명이 복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구조조정 당시 희망퇴직을 거부해 자동 해고됐던 노동자들은 지금껏 복직을 요구하며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2015년 1월 신차 ‘티볼리’ 출시를 맞아 한국을 찾았던 마힌드라 회장은 “티볼리가 잘 팔리면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을 단계적으로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었다.
깜찍한 디자인의 티볼리는 기대 이상의 인기를 모으며 최고 히트 상품이 됐다. 그러나 해고자 복직 약속은 진전이 없었다. 그러자 노조는 그해 추석을 앞둔 9월 인도 뭄바이의 마힌드라 그룹 회장과 직접 담판을 지으려 1차 원정투쟁을 단행했다. 15박 16일의 체류 기간 동안 미한드라 회장은 만나지 못했다. 대신, 파완 코엔카 쌍용자동차이사회 의장(현 마힌드라 부회장)을 만나 “해고자 복직에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이에 힘입어, 12월에는 해고자 복직을 놓고 극적인 노사 합의도 이뤄냈다.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179명의 단계적 복직에 노력, 직원을 늘릴 경우 ‘해고자 3, 희망퇴직자 3, 신규채용 4’의 비율로 충원한다”는 게 뼈대다. 쌍용차는 티볼리의 호조를 발판 삼아 2016년 결산에서 9년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해고자 복직 약속은 여지껏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득중 지부장 등 노조 대표단이 이번엔 연말연시를 앞두고 두 번째 인도 원정 투쟁을 결심한 배경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왼쪽 두번째)와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을 위한 국제서한 전달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맨 왼쪽은 이용득 의원, 맨 오른쪽은 윤충렬 쌍용차노조 수석 부지부장. 연합뉴스
김 지부장 등 3명의 원정투쟁단은 인도 뭄바이로 떠나기 앞서 현지의 노동조합총연맹과 시민단체, 정당 관계자들과 접촉해 마힌드라 회장과의 만남을 미리 조율하려 했으나 사전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지부장은 “올해 들어서만도 마힌드라 회장과 두 차례나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며 “인도 방문을 앞두고도 직접 만나 문제 해결을 논의하자는 이메일을 보냈으나 그에 대한 회신은 아직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금으로선 일단 인도에 가서 현지 노동계의 도움을 받을 작정이다.
한편 김희중 대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홍정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설정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한은숙 교무(원불교 교정원장) 등 4개 종단은 29일 쌍용차 해고자들의 조속한 복직을 마힌드라 회장에게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쌍용차 노조에 보내왔다. 또 우원식·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같은 내용의 영문과 국문 서한을 쌍용차 노조 쪽에 지부 측에 전달했다. 김 지부장은 이 서한들을 인도에 가서 마힌드라 그룹 쪽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