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가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앞 농성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처음엔 달랑 우산 하나로 받치던 농성장 천막의 높이가 어느새 어른 키만큼 자랐다. 이젠 훨씬 큰 파라솔이 농성장 비닐을 떠받친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 지킴이, 반올림’ 농성장 얘기다.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에 걸린 황유미씨의 죽음과 뒤이은 아버지 황상기씨의 외로운 투쟁, 이종란 노무사 등이 결합해 반올림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반도체 노동자들의 인권도 꼭 그 만큼 자랐다. 농성 777일째인 지난 21일 농성장에서 이 노무사를 만났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 공장이 깨끗하지 않다, 많은 화학물질을 쓰고 백혈병에 걸린다’는 사실, ‘개인질환이 아니라 산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그동안 투쟁의 성과”라고 짚었다. 별명이 ‘울보’인 그는 반올림에 제보해온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이나 법원의 외면 속에 생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접할 때마다 절규했다. 이 노무사는 “투병하는 노동자들이 쾌유하는 대신 그 촛불이 꺼져가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투쟁의 성과’는 그 절규와 이를 딛고선 반올림 활동가들의 불굴의 투지를 퇴비 삼아 컸다.
아쉬운 점도 적잖다. 이 노무사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독성 물질이 작업장 노동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돼 사용하지 않게 하고 재발방지가 돼야 하는데 그게 안됐다”며 “가장 가슴 아픈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영업활동을 이유로 기업이 비밀을 유지할 수 있게 놔두고 ‘무노조 경영’을 방치한 정부가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할 지점이다.
농성장 파라솔은 삼성전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를 하고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하기 전까진 접히지 않을 전망이다. 이 노무사는 삼성전자를 향해 “노동자 기본권을 존중하고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기업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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