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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간호사들 야한 춤 연습시킨 성심병원 들춘 ‘직장갑질 119’

등록 2017-11-13 17:11수정 2017-11-13 23:47

지난 1일 출범하자마자 성심병원 사건으로 사회적 눈길
전태일 47주기 기념 ‘21세기 시다들의 눈물’ 보고서 공개
성심병원이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체육대회 중 간호사들의 장기자랑 모습.   유튜브 영상 갈무리
성심병원이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체육대회 중 간호사들의 장기자랑 모습. 유튜브 영상 갈무리
간호사들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유독 한 병원 이야기가 연이어 올라왔다. 지난 2일 직장인 권리 보호 단체 ‘직장갑질 119’가 상담을 위해 열어둔 카카오톡 익명 채팅방에서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온 그 병원은 바로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이었다. ‘직장갑질 119’는 사흘 만인 지난 5일 부당노동행위 제보를 받기 위해 공개 채팅방을 개설했고, 개설하자마자 성심병원 간호사들의 피해 사례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이 단체 운영진은 피해사례 공개모집에 나섰고, 며칠 만에 이메일 수십통과 카톡 제보 100여통이 추가로 밀려들었다.

이 단체는 제보 내용을 정리해 56쪽 분량의 ‘한림성심병원 보고서’를 만들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에게 전달했다. 국회의원들은 8일 보고서 내용을 질의했고,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 성심병원의 간호사 대상 부당노동행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모든 과정이 ‘직장갑질 119’를 통해 6일 만에 마무리됐다.

이미 알려진 대로 피해사례들은 보는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했다. 병원 쪽은 재단 체육대회에서 간호사들에게 짧은 바지나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옷 등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했다. 간호사들은 이 장기자랑을 준비하기 위해 업무 시간 뒤에도 연습을 해야 했고, 휴일까지 반납했다. 수간호사는 병원 간호사들에게 지역구 의원인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후원금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도 받고 있다. 13일 오후 현재에도 공개 채팅방에는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 ‘월요일, 금요일 연차사용 제한’ 등의 제보도 쏟아지고 있다.

13일 오전 ‘직장갑질 119’의 공개채팅방에 회사에서 겪은 각종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13일 오전 ‘직장갑질 119’의 공개채팅방에 회사에서 겪은 각종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직원들에게 특정 정당에 입당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업무시간이 아닌 주말에 사장이 자기 집 시멘트 작업을 도와달라고 해요.”

‘직장갑질 119’의 공개 채팅방은 13일 오전에도 분주했다. 거의 매분 노동과 관련한 고발과 상담 글이 이어졌다. 직장갑질 119의 운영진은 직장인들의 울분이 담긴 사연들에 공감하면서, 법 지식에 근거한 실질적인 조언들을 건네고 있었다.

직장갑질 119는 지난 1일 시민·노동단체 소속 노무사와 변호사, 노동전문가 241명을 구성원으로 출범한 단체다. 사회관계서비스망(SNS) 메신저 등을 통해 노무 상담과 법률 지원을 진행한다. 이들은 출범하자마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한림대 성심병원 사건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단체의 행보는 가파르다. 직장갑질 119는 전태일 열사 분신 47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단체 출범 이후 접수된 591건의 부당 노동행위 제보를 정리한 ‘21세기 시다들의 눈물’ 보고서를 공개했다. ‘시다’는 의류·방직업계에 보조 업무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직장갑질 119는 보고서 서문에서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했던 전태일 열사의 희생으로부터 한국사회가 무엇을 배웠는가 돌아보게 한다”며 “청계천의 다락방은 없어졌지만 공공기관부터 작은 식당까지,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시다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고 바로잡는 사회적 캠페인 ‘직장갑질 119’의 스태프들이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4층에서 공식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한 뒤 거울로 ‘갑질 반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직장인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고 바로잡는 사회적 캠페인 ‘직장갑질 119’의 스태프들이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4층에서 공식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한 뒤 거울로 ‘갑질 반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1세기 시다들의 눈물을 보면 가장 많은 제보가 쏟아졌던 갑질은 ‘임금 미지급(19%)’이 112건으로 가장 많았다. 구체적으로 사연을 들여다보면, 각종 수당이나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하는 직장인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포괄임금제로 묶여 있어 야근이나 휴일 출근을 해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제보도 많았다. 이 밖에도 ‘직장 내 괴롭힘(18.3%)’, ‘노동시간(15.4%)’, ‘휴가 미보장(11.7%)’ 순으로 상담요청이 있었고, ‘일방적 인사 조처(8.5%)’, ‘부당한 징계 및 해고(7.1%)’, ‘성폭력(3%)’ 등의 상담도 있었다.

■ 직장갑질 119 상담사례

갑질어린이집/ 저는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중략) 밥도 제대로 안나옵니다. 선생님 먹을 반찬, 밥이 없어요. 식판 사진을 올려야하니 식단대로 장은 보지만 양이 터무니 없이 부족합니다 선생임 먹을 밥 반찬이 없어요. 예를 들면, 어른 4명 아이들 12명 먹는데 두부 한모, 돼지고기 5000원치 정도 사옵니다. 가장 심한 건 원장이 교사들에게 기분따라 막말을 하는데 만만해서 그렇게 말한다고 직접 얘기하며 언어폭력이 늘 있습니다. 그리고 원장이 애 우는 소리를 못참는다 해서 (우는)애가 있으면 그 아이랑 교사는 교실에 문 닫고 갇혀 있어야 합니다.

직장갑질119/ 하…어린이집도 갑질이 많이 발생하는 업종 중에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ㅠㅠ 관련 녹취나 이미지, 주고받은 메시지 등이 있으면 좋고요. 관련 자료를 취합하신다면 상단의 갑질119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신원노출을 꺼리는 제보자들의 익명 닉네임에는 이들의 울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을오브을, 돈떼먹지마라, 이직준비중, 이민이답인가, 갑질적폐청산, 똥같은회사, 어린이집비리’ 등에서 고민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이 채팅방 대화에서 쓰는 키워드도 ‘힘들다(192번)’, ‘괴롭다(71번)’, ‘모욕감(47번)’ 등 부정적인 어휘가 많았다.

<갑질에 대응하는 직장인 매뉴얼 7가지(부제: 전태일이 2017년 시다들에게)>

1. 관련 내용을 그때그때 적어둔다. (업무일지, 작업일지를 쓰면 좋습니다)

2. 녹음 녹취를 한다. (내가 참여하는 대화를 몰래 녹음해도 불법이 아닙니다)

3. 통장, 월급명세서, 입금내역, 영수증 등 모든 문서나 증거를 모아 둔다.

4. 직장 안에서 목격자, 동료발언을 모아두고, 가족이나 지인에게도 바로바로 말해둔다.

5. CCTV 위치 등도 알아둔다.

6. 혼자 끙끙대지 말고 동료들과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해본다. (뭉치면 힘이 커집니다)

7. 직장갑질119에 문의한다! (전문상담 단체들을 바로바로 활용하세요)

직장갑질 119는 21세기 시다들의 눈물 보고서 마지막 부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직장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숙지해야 할 7가지 매뉴얼도 제시했다. 박점규 직장갑질 119 집행위원은 “사장과 관리자만 갑질을 하는게 아니라 지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계약직으로 구분돼 이들 사이에서도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며 “이번에 제보를 받은 노동 문제들을 분석해보니까 여성과 비정규직·계약직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갑질 상담에는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직장갑질119’를 검색해 오픈채팅방에 입장한 뒤 익명으로 글을 올리면 된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노동 전문가들이 상담해 준다. 직장갑질 119는 신고된 갑질 행위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거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 공익적인 사건으로 판단되는 경우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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