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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짜깁기 철탑’ 위 노동…타워가 부러지자 하늘이 쏟아졌다

등록 2017-11-04 09:41수정 2017-11-04 17:05

[토요판] 커버스토리
타워크레인, 하늘의 지진
타워크레인이 숲을 이뤘다. 저 먼 풍경 속 타워들은 거대 철근들의 밀림 같기도 하고, 재래식 로봇의 팔다리 같기도 하며, 멍든 등에 꽂힌 쇠침 같기도 하다.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 하나의 타워에서도 기계마다 제조업체가 다르고, 생산연도가 다르고, 정품과 비품이 공존한다. 죽은 자들의 신체기관을 조립해 탄생한 프랑켄슈타인처럼 이곳저곳 짜깁기된 타워들이 고공에서 사람을 태우고 일한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누군가에겐 공사장의 쇳덩어리일 뿐인 철탑에도 사람이 있다. 70~100m 하늘에서 이뤄지는 노동이 있고, 먹고 쉬는 일상이 있으며, 추락의 위협을 견뎌야 하는 공포가 있다. 지난 10월10일 경기도 의정부 민락지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100m 높이의 타워크레인이 무너지며 3명이 사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책 마련을 지시(10월16일)한 타워 재난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이유와 비슷한 패턴으로 수십년 반복돼왔다. 연식을 알 수 없는 서로 다른 업체의 기계들과 검증되지 않는 불량 부품을 경계 없이 잇고 붙인 거대 철탑이 도처에서 허리를 꺾으며 쓰러지고 있었다. 삶과 죽음으로 연결된 타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묶었다. 이 땅의 아파트는 그 이야기 속에서 척추를 세워 고도를 높인다. 사진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의 한 건설 현장.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청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타워크레인이 숲을 이뤘다. 저 먼 풍경 속 타워들은 거대 철근들의 밀림 같기도 하고, 재래식 로봇의 팔다리 같기도 하며, 멍든 등에 꽂힌 쇠침 같기도 하다.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 하나의 타워에서도 기계마다 제조업체가 다르고, 생산연도가 다르고, 정품과 비품이 공존한다. 죽은 자들의 신체기관을 조립해 탄생한 프랑켄슈타인처럼 이곳저곳 짜깁기된 타워들이 고공에서 사람을 태우고 일한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누군가에겐 공사장의 쇳덩어리일 뿐인 철탑에도 사람이 있다. 70~100m 하늘에서 이뤄지는 노동이 있고, 먹고 쉬는 일상이 있으며, 추락의 위협을 견뎌야 하는 공포가 있다. 지난 10월10일 경기도 의정부 민락지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100m 높이의 타워크레인이 무너지며 3명이 사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책 마련을 지시(10월16일)한 타워 재난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이유와 비슷한 패턴으로 수십년 반복돼왔다. 연식을 알 수 없는 서로 다른 업체의 기계들과 검증되지 않는 불량 부품을 경계 없이 잇고 붙인 거대 철탑이 도처에서 허리를 꺾으며 쓰러지고 있었다. 삶과 죽음으로 연결된 타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묶었다. 이 땅의 아파트는 그 이야기 속에서 척추를 세워 고도를 높인다. 사진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의 한 건설 현장.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청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크레인 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200여명의 크레인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타워크레인에선 3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20년 동안 200여명의 타워 기사가 삶을 빼앗겼습니다. 내가 죽을 뻔한 곳에서 누군가 죽고, 누군가 죽은 곳에서 다른 누군가 목숨을 건지며, 사슬처럼 얽혀 내게 돌아오는 살고 죽음이 타워 업계에선 흔합니다. 타워를 오르내리며 삶과 죽음으로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탑.

층으로 쌓아 올린 건축물.

타워.

쌓아 올려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쌓아 올린 뒤 해체되기 위해 축조되는 구조물.

탑이 무너지지 않을 때도 타워는 벼락처럼 무너졌다. 타워가 무너지면 사람이 죽고 하늘이 쏟아져 내렸다.

의정부
‘연식 불명’의 타워 붕괴로 3명 사망
사고 소식에 1년2개월 운전한 안효근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죽음에 몸서리
사고 타워 맞은편 기사 김선국도
‘20만원 헐값 계약’ 거부해 생존

남양주
마스트 인상 중 ‘까치발’ 부러지자
철공소에서 깎아온 불량품으로 대체
2차 인상 때 다시 부러져 3명 사망
극적으로 살아남은 타워 기사 최기정
‘인상 땜빵’ 하다 중상 입은 서철국

“오늘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타워크레인 출근할 일 없는 그의 오후에 휴대전화기가 진동했다.

“안 기사, 무사해?”

안효근(38·경력 14년)의 전화기 안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달려나왔다.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날(10월10일)에도 그의 ‘쉬는 날’은 계속됐다. 늦은 점심밥을 먹고 있었다. ‘소식’을 전하는 전화와 “괜찮냐”고 묻는 전화가 잇따라 걸려왔다. ‘그곳’에 있지 않아 다행이란 말들이 찰기 잃은 밥풀처럼 밥상 위로 떨어졌다.

머리에 새긴 그곳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그날(9월26일) 안효근은 평소처럼 아침 7시에 그곳에 올랐다. 사다리를 붙들고 처음 그곳으로 올라가며 ‘출근 첫날 해고를 걱정’하던 1년2개월 전(2016년 7월28일)의 일도 잊지 않았다.

그곳은 아파트 26층 앞에 높이를 맞춰 서 있었다. 아파트가 고층으로 줄기를 뻗어 올리는 동안 사다리는 100m까지 자라 있었다. 목구멍으로 가쁜 숨을 밀어내며 한 계단씩 밟았다. 사다리 끝에 도착한 안효근이 머리 위 뚜껑을 밀어 열었다. 그가 0.5평 넓이의 조종석으로 올라갔다.

‘립벨’(Liebherr. 정확한 표기는 리프헤어) 220, 10t 25m.

독일 립벨사 타워크레인. 양중능력(타워가 들 수 있는 최대 무게) 10t에 지브(jib·자재를 들고 옮기는 가로축) 반경 25m. 발밑의 투명 유리 아래로 용암마을(경기도 의정부시 낙양동 민락지구·시공사 KR산업) 12단지 건설 현장이 내려다보였다. 타워크레인 5대가 8개 동(992가구)의 골조공사를 했다. 안효근은 5호기 조종사였다.

타워크레인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건설자재를 운반하는 초대형 기계였다. 그날 안효근은 권상(들어올리기)·권하(내리기)하고 좌싱(지브 좌선회)·우싱(우선회)하며 하루 종일 호퍼(시멘트·자갈·모래 등을 담는 깔때기 모양의 용기)를 움직여 콘크리트 타설을 도왔다. 점심 식사는 지브 후크에 매달아 올린 볶음밥을 횡행(지브에 매달린 트롤리 이동)으로 받아 조종석에서 했다. 10분 만에 밥을 먹고 다시 조종 레버를 잡았다.

오후 6시께 안효근은 자신에게 부과된 모든 작업을 종료했다. 조종석에 두고 다니던 소형 선풍기와 히터, 허리 쿠션 등을 단단하게 싸서 지브 후크에 걸어 땅으로 내렸다. 휴대전화 충전기와 선글라스 등은 가방에 넣어 등에 멨다. 100m 사다리를 내려왔다. 땅을 밟는 순간 안효근은 실직했다.

“현장 종료 시까지로 한다.”

그는 타워크레인 하도급업체 백경중기산업 소속이었다. 채용 당시 쓴 계약서는 그의 고용 기간을 그렇게 명시했다. 건설 현장이 생기면 시공사는 타워 임대업체를 선정해 골조공사를 맡겼다. 임대사는 타워 조종사들을 임시 계약직으로 채용해 타워에 태웠다. 타워를 설치하고 안전검사를 마친 뒤 시작되는 고용은 작업 완료와 더불어 소멸(자동 퇴사 처리)됐다. 안효근은 14년 동안 16차례 일을 얻고 일을 잃었다.

현장을 빠져나오면서 그는 하루 10시간씩 14개월간 머물렀던 타워를 쳐다봤다. “사고 없이 잘 견뎌줬다”는 말을 작별인사처럼 올려 보냈다.

27년 된 늙은 타워였다. 2009년 12월에 ‘연식 1991년’으로 등록된 타워가 정말 ‘27년밖에’ 안 된 기계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타워크레인은 등록할 때 원본 제작증명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었다. 소유주가 등록 신청서에 써넣는 숫자가 검증 없이 생산연도가 됐다. 위험을 얼마나 누적한 장비인지 크레인을 가진 사람만 알 뿐 크레인에서 일하는 사람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조종석을 치운 크레인에 다시 시동이 걸린 날(10월10일) ‘등록번호 인천27가5016’은 굉음을 내며 주저앉았다. 오후 1시36분께 22층 부근에서 마스트(mast·타워 기둥)가 부러지면서 지브가 무너졌다. 마스트에서 타워를 해체하던 노동자 3명이 땅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14층 높이에 있던 한 명만 추락 중 마스트에 걸려 살아남았다.

‘오늘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사고 없이 버텼다고 안도했던 그날을 떠올리자 소름이 돋았다. 스치듯 비껴간 죽음에 몸서리치며 안효근은 숟가락 들 힘을 잃었다.

마스트 김선국(44·경력 20년)이 용암마을 12단지에 도착했을 때 안효근의 타워 자리는 폴리스라인이 쳐진 ‘사건 현장’이 돼 있었다. 타워 마스트에선 의식을 잃은 생존자를 응급구조대가 내리고 있었다. 사망자들은 병원으로 옮겨지고 없었다.

김선국은 12단지 타워크레인 2호기 조종사였다. 그의 타워(프랑스산 ‘포테인 380’)는 안효근의 타워와 마주보는 위치에 서 있었다. 5호기의 부러지고 휘어진 마스트가 웅장했던 형체를 잃고 폐기물 처리장의 고철처럼 흩어져 있었다. 참혹한 광경에 김선국은 현기증이 일었다.

마스트는 타워를 쌓는 기둥이자 타워를 지탱하는 근간이었다. 가로 2m×세로 2m×높이 3.75m(립벨 사양)의 철제 구조물을 세로로 쌓은 뒤 조종석과 지브를 올렸다. 타워는 아파트 5~6층 단위로 한 번씩 마스트를 추가(25~30m)해 고도를 높였다. 안효근·김선국의 타워는 3차례 인상(telescoping·텔레스코핑)해 100여m에 이르렀다.

마스트를 인상할 땐 텔레스코핑 게이지를 이용했다. 게이지에 유압상승장치(유압실린더)로 유압을 넣으면 타워 상단이 위로 올라가며 공간이 생겼다. 이 공간으로 추가 마스트를 끼워 넣거나 기존 마스트를 빼내면서 설치와 해체가 이뤄졌다. 마스트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 가장 위험했고 가장 많은 사고가 났다. 부품 결함이나 외부 충격으로 균형을 잃으면 타워는 순식간에 침몰했다. 안효근 타워도 해체 과정에서 붕괴됐다. 타워의 줄기가 부러지면 노동의 줄기도 부러졌다.

김선국은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 때 타워 조종사 일을 시작했다. 그 전까지 타워 노동자들은 건설사에 직접 고용돼 있었다. 1997년 건설사들은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퇴사 직원들에게 타워 업무를 불하했다. 이 업체들(현재 국내 150여곳)이 시공사의 하청을 받아 건설 현장에 타워를 빌려주고 임대료(톤당 월 100만원)를 받았다. 타워 기사들은 공사 기간 동안 임대업체와 계약하거나 인력관리를 하는 임대사의 하청업체와 계약했다.

2002년 김선국은 4개월째 새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도봉구의 한 대형마트 건설 공사에서 10t 크레인을 월 200만원에 타기로 구두계약했다. 타워 설치 일주일을 남기고 다시 연락이 왔다. “월 180만원에 그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김 기사도 그렇게 하겠냐”는 물음이 뒤따랐다. 임대사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미끼를 던지며 ‘호가’를 낮추고 있었다. 김선국은 거절했다. 며칠 뒤 그 타워가 무너졌다. 20만원 싸게 타워에 올랐던 사람이 타워 붕괴로 목숨을 잃었다. 내가 죽을 뻔한 곳에서 누군가 죽고, 누군가 죽은 곳에서 다른 누군가 목숨을 건지며, 사슬처럼 얽혀 내게 돌아오는 살고 죽음이 타워 업계에선 흔했다.

용암마을에서 김선국이 탔던 타워엔 ‘1997년식’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민락지구 공사가 시작될 때 김선국은 “이 현장 마무리하고 기계를 녹일 계획”이란 말을 임대사로부터 들었다.

“1년만 버티자…, 5개월만 버티자…, 2주일만 버티자.”

‘포테인 380’을 타는 첫날부터 그는 기계에게 부탁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고를 피하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삶과 죽음의 관계
옆 타워에서 날아온 지브의 충돌로
겨우 목숨 구한 뒤 ‘지옥’ 본 황옥룡
남양주 사고 3년 전 같은 임대업체
타워에서 ‘닮은꼴 사고’ 추락사 김석동
삶과 죽음 물리고 얽히는 타워 노동

프랑켄슈타인
고공농성 하며 27번째 건설기계 등록
생산연도 속여도 검증할 방법 없어
규제완화가 부른 ‘위험 무방비’ 타워
‘짜깁기 괴물’ 된 타워 도처에서 전복
타워 참사 딛고 고도 높이는 아파트

지난 10월10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 낙양동 용암마을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이날 붕괴된 타워크레인이 참혹하게 부서져 있다. 의정부/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10월10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 낙양동 용암마을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이날 붕괴된 타워크레인이 참혹하게 부서져 있다. 의정부/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하늘 지진 부른 ‘불량 까치’

까치발 안효근의 무너진 타워엔 한때 까치집이 있었다. 조종실에서 ‘타워 헤드’로 올라가는 사다리에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고 와 둥지를 틀었다. 둥지 안엔 야윈 알 4개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 위태로운 알을 지켜주는 것으로 자신의 안전도 지켜지길 바라며 안효근은 까치 둥지를 살피고 빵 부스러기를 넣어줬다. 까치가 새끼를 까서 데리고 나간 뒤에야 공사 완료 뒤 타워를 해체하듯 까치집을 치웠다. 의정부 사고 142일 전 안효근·김선국은 타워 기사들의 에스엔에스(SNS) 대화방에서 ‘남양주 소식’을 접했다. 그 타워에서도 까치가 위태로웠다.

5월22일 자동차를 운전하던 최기정(가명·34)이 급하게 핸들을 돌렸다. “최 기사 크레인이 전도됐다”는 전화를 받고서였다. 가슴에서 심장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오후 4시40분께 다산신도시(경기도 남양주시) 현대힐스테이트 아파트 공사장에서 ‘코만사 LC550’ 타워크레인의 마스트가 인상 중 내려앉았다. 3명이 죽고 2명이 다쳤다.

바리케이드 앞에 도착한 최기정은 “난리의 현장”을 “한동안 멍하게” 쳐다봤다. 그날 종일 대기했던 최기정은 오후 4시 넘어 마스트 인상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퇴근했다. 밤 9시께나 끝날 작업이었다. ‘저 위험한 일을 내일 일찍 하지 않고 왜 이렇게 늦은 시각(원청의 작업 독촉)에 시작할까’ 그는 궁금했었다.

13개 동을 짓는 공사였다. 8대의 타워가 설치됐다. 원청 현대엔지니어링은 남산공영과 ㅇ건기에 4대씩 타워 공사를 하청했다. 남산공영은 하청받은 4대 중 2대를 성주타워에 재하도급했다. 최기정은 1호기를 운전했다. 그는 남산공영 소속으로 일했지만 1호기는 성주타워 장비였다.

붕괴는 두번째 인상 때 발생했다. 사흘 전 1차 인상 때도 사고는 있었다. 설치·해체팀이 타워 마스트를 높이는 과정에서 유압상승장치에 딸린 부품이 파손됐다. ‘까치발’로 불리는 부품(정식 명칭 ‘유압실린더 슈’)이었다. 까치가 발톱으로 나무를 짚고 몸을 일으키듯 이 부품이 마스트를 지지하는 힘에 의지해 텔레스코핑 게이지는 몸체를 밀어올렸다. 까치발이 손상돼 텔레스코핑 게이지를 버틸 힘이 사라지면 마스트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참사가 나지 않은 것을 최기정은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코만사 타워는 스페인에서 제작됐다. 남산공영은 제조사의 까치발을 구하는 대신 인근 철공소에서 대체 부품을 깎아왔다. 사흘 뒤 설치·해체팀이 끼운 ‘가라 까치발’이 인상을 재개하자마자 다시 부러졌다. 천운은 두번 찾아오지 않았다. 하늘에서 지진이 났다. 임대사는 설치·해체 노동자들의 과실을 주장했으나 경찰은 임대사의 불량 부품 사용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최기정은 “‘일주일’만 늦었다면 내가 사망자 가운데 있을 수도 있다”는 자각에 몸을 떨었다. 그는 지난 3월 노조(민주노총 건설연맹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 가입을 신청했다. “쉽게 쓰이고 쉽게 버려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텔레스코핑 때 타워를 조종하지 않았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의 타워 탑승을 노조 차원에서 거부(임대사의 설치·해체팀 직접 고용 등 안전조처 요구)했다. 최기정은 사고 일주일 전쯤 가입을 승인받았다. 임대사는 비조합원 타워 기사를 운전석에 앉혔다. 최기정 대신 조종 레버를 잡은 기사는 다행히 생존했다. 그가 살아남지 못했다면 최기정은 “평생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았을 것”이었다.

앵커 설치·해체는 ‘완전 외주’였다. 1997년 타워 업계의 하도급이 본격화된 이후 한동안 임대사가 직접 운영했던 설치·해체 공정이 일당 노동으로 굳어졌다. 특정 임대사의 일을 주로 맡아보는 팀은 ‘원팀’(전국 100여개 팀 중 30%)으로 불렸고, 업체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경우는 ‘외주팀’(70%)으로 통칭됐다. 일당제 외주가 되면서 기계 상태를 작업 당일 파악할 수밖에 없어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 원청의 공사 일정 독촉은 ‘속도전’을 불렀다. “립벨 타워의 경우 미국은 일주일 동안 하는 작업을 국내에선 각각 이틀 안에 설치·해체를 끝내야”(정회운 설치·해체 노조위원장) 했다.

강태식(가명)은 최기정 타워의 1차 인상 때 까치발 파손으로 철수한 설치·해체 노동자였다. 남산공영 원팀 팀장에게 연락받고 ‘땜빵’으로 들어갔다. 소속 원팀에 일이 없던 그는 아파서 빠진 남산공영 팀원(보통 5명으로 구성) 대신 투입됐다. 마스트를 텔레스코핑 게이지에 넣다 세번째 시도에서 까치발이 부러졌다. 사흘 뒤 불량 까치발로 두번째 인상이 시작됐다. 강태식은 빠졌다. 자신의 원팀으로 복귀해 세종시 현장에서 일했다. “갔다면 죽었을” 남양주 2차 텔레스코핑 소식을 강태식은 그곳에서 들었다.

강태식이 피한 재앙에 서철국(가명·55)이 대신 탔다. 서철국은 소속 팀에서 나와 새 팀을 찾고 있었다. ‘알바’로 투입된 타워에서 그는 70m 아래로 추락했다. 남산공영 원팀 5명 중 서철국과 함께 마스트를 탔던 ‘상부팀’ 3명이 사망했다.

타워크레인 설치는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고 콘크리트를 타설해 기초(앵커)를 놓는 일부터 시작했다. 서철국은 2002년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 건설 현장에서 설치·해체 일을 시작했다. ‘타워의 궁전’을 짓는 타워크레인의 앵커를 놓으며 그는 자기 삶의 기초가 튼튼해지길 바랐다. 15년 뒤 그가 지은 ‘초고가 타워’는 넘볼 수 없을 만큼 육중해졌으나 그는 흔들리는 타워에서 떨어져 머리뼈에 금이 갔다. 갈비뼈 두개가 부러졌고, 무릎뼈가 골절됐으며, 코뼈가 함몰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타워크레인 위에서 한 조종사가 슬리퍼를 신고 서 있다. 조종석 아래 투명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운전하는 타워 기사들은 흙이 창을 더럽히지 않도록 슬리퍼를 신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문영 기자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타워크레인 위에서 한 조종사가 슬리퍼를 신고 서 있다. 조종석 아래 투명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운전하는 타워 기사들은 흙이 창을 더럽히지 않도록 슬리퍼를 신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문영 기자
통제받지 않는 ‘짜깁기 괴물’

지옥 최기정의 타워 붕괴 당일 황옥룡(50·경력 13년)은 다산신도시 공사장을 찾아 현장(노조 차원 조사)을 살폈다. 타워 잔해가 사업구역 펜스 밖으로 넘어가 있었다. 뼈가 튀고 내장이 흘러나온 듯한 타워의 주검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이 겪었던 ‘지옥’으로 다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형님, 오늘도 조심.”

2010년 10월6일 아침 체조를 마친 그가 4호기 ‘문 기사’(당시 44)에게 안부를 전했다. 합정동 서교 지에스(GS)자이 101동 건설 공사장(서울시 마포구 현 메세나폴리스)에서 황옥룡은 1호기로 올라갔고 문 기사는 60여m 떨어진 4호기 사다리를 탔다. 점심을 타워에서 김밥으로 때운 황옥룡은 12층 골조공사를 하며 형틀 자재를 운반하고 있었다. 오후 2시40분께 그는 고개를 숙이고 발밑 투명창으로 줄걸이(자재를 지브 후크에 거는 작업)하는 땅의 노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사님 올리기 합니다.”

신호수는 땅까지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타워 기사에게 무전기로 작업을 안내했다. 목공팀, 철근팀, 설비팀, 형틀팀마다 신호를 잡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전문신호수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말이 서툰 중국 동포나 한족 노동자들이 ‘기호’처럼 익힌 말을 무전기에 싣기도 했다. 하늘과 땅의 의사소통이 어긋날 때 하늘은 땅으로 곤두박질칠 것이었다.

쾅 콰콰콰쾅.

전쟁터에서 대포 쏘는 듯한 소리가 황옥룡의 귀에 꽂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4호기에서 이탈한 지브가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4호기 지브가 1호기 지브를 강타했다. 황옥룡의 머리가 충격으로 조종실 벽을 때렸다. 1호기 지브를 찌그러뜨린 4호기 지브가 101동 벽을 긁으며 낙하했다. 건물 외벽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 2명이 지브에 쓸려 추락했다. 뇌진탕으로 혼미한 황옥룡이 사다리를 타고 맨발로 탈출했다. 후크 와이어가 터져 건물 위의 콘크리트 타설기를 감으면서 1호기의 전복은 피할 수 있었다.

땅에 도착하자 ‘두번 다시 목격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목격됐다. 문 기사를 덮은 천막 밖으로 그의 발끝이 보였다. 그가 흘린 장기들이 피와 함께 뿌려져 있었다. 울부짖는 소리와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가 극한의 공포와 뒤엉켰다.

‘죽어서 지옥을 본다면 이 모습이겠구나.’

2016년 9월 황옥룡은 경주 현지에서 규모 5.8의 지진을 만났다. 아들딸이 무서워 울고 있을 때 ‘타워 지진’을 겪어서인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27번째 건설기계 고층 건물 공사장에 바늘처럼 꽂힌 거대한 철근 덩어리 안에도 사람 사는 일상이 있었다.

타워 기사들에게 좁은 조종실은 집보다 오래 머무는 삶터였다. 점심 먹으러 내려가지 않으면 하루 10시간을 꼬박 하늘에서 일했다. 기사들은 창에 가림막을 쳐서 햇빛을 막았고, 소형 스피커를 놓고 음악도 들었다. 작업 대기 땐 책을 읽기도 했다. 소변은 플라스틱 페트병에 해결했고, 배탈이 나면 고공의 발판에 신문지를 깔았다. 방광염과 목디스크는 공통의 직업병이었다. 돌풍이 불 땐 구름다리처럼 타워가 흔들렸고, 안개가 끼면 무서운 백색의 바다가 조종석 아래로 펼쳐졌다. 70~120m 위에 뜬 조종실은 일터이면서 감옥이었다. 출퇴근만 제외하면 타워의 일상은 고공농성과 다르지 않았다.

김명욱(서울경기타워크레인지부장)은 2007년 6월 동료들과 70m 타워크레인(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올라 26일간 농성했다. 지브엔 ‘정부는 타워크레인 건설기계 등록 합의사항 즉각 이행하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타워크레인은 그때까지 ‘건설기계’가 아니라 ‘철구조물’이었다. 안전관리도 되지 않았고 유통질서도 투명하지 못했다. 사고가 나도 보상체계도 미비했다. 2008년에야 타워크레인은 ‘27번째 건설기계’로 등록됐다.

프랑켄슈타인 건설기계 등록을 이루자 ‘등록만 하면 되는 파행’이 펼쳐졌다. 생산연도를 속여 등록하는 일이 일반화됐다. 중고 기계를 수입해 신형으로 등록해도 그대로 인정받았다. 생산시기를 판별하지 못하도록 명판을 제거한 타워가 많았다. 외환위기 때 건설사들이 외국에 판 타워가 ‘연식 세탁’을 거쳐 역수입된다는 의혹(김명욱)도 일었다. 이명박 정부는 ‘정체불명의 타워’가 자유롭게 출몰하도록 길을 닦았다.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에서 하던 안전검사가 국토교통부를 거쳐 민간(규제 완화)으로 이관됐다. 업체로부터 검사를 수주받는 민간 기관들은 꼼꼼하게 검사할수록 돈을 벌기 힘든 구조가 됐다. “부적합 판정 비율이 높은 1개 기관을 제외한 4곳이 전체 타워크레인의 97%를 검사”(건설노조)했다. 철공소 까치발을 끼운 최기정의 타워도 사고 직전 안전검사를 통과한 상태였다.

연식을 알 수 없는 서로 다른 업체의 기계들과 검증되지 않는 불량 부품을 경계 없이 짜깁기한 ‘프랑켄슈타인 타워’가 도처에서 허리를 꺾으며 쓰러지고 있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타워크레인분과 조합원들이 2007년 6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70m의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철구조물’ 타워크레인의 ‘건설기계’ 등록을 정부에 촉구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국건설노동조합 타워크레인분과 조합원들이 2007년 6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70m의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철구조물’ 타워크레인의 ‘건설기계’ 등록을 정부에 촉구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다”

반복 영통구 이의동(수원 광교 대우월드마크 공사 현장)으로 차를 몰면서도 임채섭(경기남부타워크레인지부장)은 거듭 휴대전화 발신 버튼을 눌렀다. 김석동(가명·당시 42)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2014년 5월24일 김석동이 운전하던 100m 타워크레인의 붕괴 소식을 듣고 임채섭은 동료들과 현장으로 달려갔다.

마스트 기둥이 건물 쪽으로 휘어 있었고 지브는 27층에 걸려 있었다. 임채섭이 타워의 폐허를 뒤지며 김석동을 찾았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사고 직후 설치·해체팀은 현장을 빠져나가 버렸고, 119 구조대도 조종사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임채섭이 진입 통제된 계단을 뚫고 27층까지 뛰어올라갔다. 건물에 걸린 턴테이블(마스트 상단과 조종석을 잇는 선회 장치) 안에 김석동이 누워 있었다. 그를 찾아낸 시각은 사고(오전 10시56분께)로부터 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의 외침에 구조대가 올라와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맥박은 돌아오지 않았다. 헬기가 날아와 김석동을 실어갔다.

‘구조가 제대로 됐다면 살아 있었을까.’

임채섭은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웠다.

남양주 최기정·서철국의 타워 전복 3년 전 김석동이 동일 업체(남산공영)의 타워를 타고 추락했다. 남양주에서처럼 마스트를 인상하던 중 일어난 참사였다. 김석동은 조종석에 앉아 설치·해체팀의 인상 작업을 돕고 있었다. 광교와 남양주의 사고 패턴은 상황부터 원인까지 꼭 닮아 있었다.

인상 작업이 한차례 실패한 것도 남양주와 같았다. 처음 텔레스코핑을 시도한 팀이 마스트에서 위험(노후화와 마스트 간 간격 이상)을 발견하고 철수했다. 사고 당일 인상 땐 다른 팀이 투입됐다.

경기도 수원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 솟은 타워크레인에서 한 노동자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수원/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경기도 수원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 솟은 타워크레인에서 한 노동자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수원/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석동의 타워도 짜깁기됐다. 그가 운전한 타워(독일산 ‘프라임’)는 ‘2000년 제작’으로 등록돼 있었다. 중국에서 10년간 사용된 것을 2010년 남산공영이 본체만 수입했다. 조종석과 텔레스코핑 게이지, 유압장비 등은 국내산을 붙였다.

김석동의 죽음은 그렇게 3년 뒤 서철국의 추락과 최기정의 공포로 고스란히 재현됐다. 광교 사고 때 다른 현장에 투입돼 재앙을 피했던 남산공영 설치·해체 원팀 3명은 3년 뒤 최기정 타워에 올라 사망했다.

김석동의 타워를 감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복 원인으로 기계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다. 고용노동부와 수사기관은 김석동의 개인 과실로 종결했다. 원청은 처벌받지 않았다. 대우건설과 남산공영이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산업안전감독관 등에 뇌물을 주고 접대한 사실이 이후 드러났다.

의정부 사고 당일 현장을 찾은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엄중 조처를 지시했다. 사상자를 낸 업체가 3년 안에 다시 사고를 일으키면 퇴출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광교 사고가 제대로 규명되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졌다면 3년 뒤 남양주 사고는 되풀이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임채섭은 믿었다. 10월16일엔 문재인 대통령이 원청의 책임 강화를 강조했다. 남양주 사고 타워의 원청인 현대엔지니어링 쪽은 구속되지 않았다.

김석동은 경기남부타워크레인지부에서 노동안전부장을 맡았다. 타워 사고를 막기 위해 고심했던 그가 타워 사고로 사망했다. 노제 때 전국의 조합원들이 10분간 작업을 멈추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례에 모인 참석자들은 안전 대책 없인 설치·해체 조종석에 앉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으로 남양주 사고 때 최기정은 조종 레버를 잡지 않았다.

유서 날아오는 지브를 견디고 살아남은 황옥룡은 한동안 타워에서 떨어져 죽는 꿈을 꿨다. 모든 폐쇄공간에 들어갈 때마다 비상구부터 확인했다. 극장이나 쇼핑몰에 가는 아이들에게도 대피로부터 파악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새 유언이 생각날 때마다 한 줄씩 덧붙였다. 그의 하늘에선 언제 벼락이 칠지 알 수 없었다.

가족 최기정은 타워 붕괴 한달 만에 새로 설치된 타워(같은 자리)에 올랐다. 그는 “본래 놀이공원 바이킹도 못 타는 사람”이었다. 사고 뒤 고소공포가 심해졌다. 아이가 셋 있었다. 아버지의 책임을 생각하며 주저앉는 다리에 힘을 주고 사다리를 탔다. 찰나의 순간에 살아남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14㎏을 뺐다.

기억 서철국은 추락 후 며칠 만에 깨어났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기억을 잃고 부분 기억상실증을 얻었다. 매일 일당을 기록한 노트를 보고 사고 전후를 추정했다. 그의 무릎은 45도밖에 구부러지지 않았다. 몸에 남은 장애는 그가 가족을 부양해온 생계수단을 앗아갔다. “앞으로 이 몸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그는 “끔찍”했다. “차라리 깨어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운이 좋아 다시 타워에 오른다 하더라도 잃어버린 기억은 되찾고 싶지 않았다. “추락의 기억이 돌아온다면 두번 다시 타워에 몸을 싣지 못할 것” 같았다.

아파트 사람이 탑을 이뤄 사는 곳. 끊이지 않는 사람의 추락을 딛고 사람의 탑은 고도를 높였다.

수원 의정부 남양주/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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