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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왜 노동계에 돌을 던질까

등록 2017-11-03 11:29수정 2017-11-03 15:57

[기자가 현장에서 지켜본 촛불 1년] ④노동

“민주노총 왜 저래” “노동자 보호막” 뒤섞인 비판·기대

함께 촛불 들었지만 새 정부 출범이후
노동계, ‘촛불시민’과 간격 더 벌어져
청와대 만찬 불참은 비판에 기름부어

“그래도 노조가 지켜줄거야”
시민들 긍정적 의식도 커져
“함께 살자” 현장 목소리 듣고
노조 없는 노동자 손 잡아주고
민주노총은 그렇게 단련돼야
촛불 이후 노동정책의 드라마틱한 변화

“문재인 대통령, 공항 간다면서요?”

대선 직후인 지난 5월12일, 여느 때처럼 아침에 출근해 노트북을 열었다. 정치부가 보고한 문 대통령의 인천국제공항 방문 소식이 눈에 띄었다. 급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관계자한테 연락했다. 사실이었다. “곧 도착할 예정”이라며 방문행사 직전의 현장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푸른 펼침막에 쓰인 행사 제목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를 보니, 순간 기분이 멍해졌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하기 8일 전, 그러니까 19대 ‘촛불대선’ 닷새 전이던 5월4일 <한겨레>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비정규직 1위 인천공항…“대선 지나면 나아질까요?”’였다. 인천공항은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고용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공간이다. ‘비정규직 해결’ 공약이 쏟아지던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인천공항 비정규직 목소리를 담아 기사로 썼다.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았다. 기사 때문에 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약속하고,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연내 전원 정규직화”를 발표한 것은 아니겠지만, 관련 기사를 썼던 나로서는 기분이 묘했다. 8년 동안 이어진 ‘직접고용 정규직화’라는 노조의 주장이 이제야 현실화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다.

이전 정부 시절, <한겨레> ‘노동 기자’로서 결코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다. 지난해 4월, 출입처를 ‘노동’으로 옮겼다. 처음 출입처를 배정받고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했던 고용노동부를 출입할 때는 공무원과 전화통을 붙잡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적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지난 정부에선 마구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노동자 동의 없는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합법적 절차를 밟아 시작된 전국철도노조 파업은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법원은 대체로 당시 고용노동부 주장이 ‘틀렸다’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국회가 배정해 한국노총에 지원될 예산이 ‘노사정 대타협을 깼다’는 이유로 집행되지 않는 일도 벌어졌다.(이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취재할수록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노동 기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목격하는 사이, 촛불이 타올랐고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 존중 사회’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많은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부당노동행위 근절, 원청 책임을 강조한 산업재해 예방 대책,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땐 속시원한 기분도 들었다. 노동 기자로 일하면서 가장 ‘열받는 일’이었던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문 대통령이 밝히던 순간이다. 역대 정권에서 ‘이상적’ 또는 ‘원칙적’ 목표로 제시되었을지언정 현실화되진 못했던 ‘전향적 정책’이 실제로 이어지고 있다.

촛불 이후 점점 고립돼 가는 민주노총

노동권 확보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지금껏 가장 앞자리에서 싸워온 이른바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의 고립은 또다른 측면에서 극적으로 다가왔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남발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주체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부당노동행위나 산업재해 대책 등도 노동계가 수년간 외쳐온 의제였다.

민주노총은 수많은 촛불이 광장에 모일 수 있도록, 밑거름 구실도 맡았다. 촛불이 횃불이 되기 이전엔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이 광장을 메웠다. 시민들은 민주노총에 전화를 걸어 촛불집회에 대해 문의를 하거나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집회가 거듭될수록, 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지난해 11월12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이를 목격했다. 그보다 한 해 전,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쓰러졌던 바로 그 집회였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당시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각별한 의미가 있는 집회였지만, 민주노총 대표자나 조합원을 바라보는 시민 눈길에선 차가움이 느껴졌다. 노조 대표자가 무대 위에 올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만든 ‘재벌과 정권의 유착’이나 그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해’를 말할 때, 아니면 구속된 한상균 위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그만 좀 하세요, 그만 좀.”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데 왜 ‘다른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당시 소설가 김영하씨는 <한겨레>에 기고한 르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 규모의 집회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이다. 그들이 월급에서 떼어 꼬박꼬박 납부한 노동조합비가 없었다면 양초를 구입하고, 음향 시설과 대형 방송차를 대여해 곳곳에 적절히 배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쩐지 조금 주눅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집회를 기획하고 주최했음에도 언론에 의해 ‘순수한’ 시위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비치고 있었다.”

대선이 끝난 뒤,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은 강도를 더했다. 6월말 한 남성 독자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50대로 추정되는 그는 출근길에 전화를 걸어 따져 물었다. “민주노총이 지금 파업을 할 때입니까”, “지난 정권에서는 아무 말 못하다가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겁니까”, “민주노총이야말로 귀족노조 아닙니까”.

당시 민주노총이 준비하던 파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10만명이 대선 전부터 준비했던 것이고,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더 거센 탄압을 받으면서 싸웠다고, 민주노총에도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고 답했다. 독자는 선뜻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지난달 24일 청와대 초청 만찬 불참은 민주노총에 대한 들끓는 비난에 기름을 부었다. 가까운 민주노총 관계자한테 물었다. “청와대에 왜 안 가신 거예요?” “조직논리와 명분 싸움이죠, 뭐. 어쨌든 받지 않아도 될 비판까지 사서 받고 있는 꼴입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갑갑함이 느껴졌다.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2017 촛불 1년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함께가자! 비정규직없는 세상''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2017 촛불 1년 비정규직없는 세상만들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함께가자! 비정규직없는 세상''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노조 필요한 이’들 손잡고 일터 민주주의 위해 싸워주길

촛불을 함께 들었던 이들이 이제는 ‘너도 적폐’라며 민주노총에 가하는 비판은 분명 정도가 지나쳐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노동계가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과의 간극을 제대로 메우지 못해 빚어진 것이라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 노동단체 활동가는 지난 촛불에서 노동계가 보여준 모습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민들은 국정농단 세력과 재벌의 반칙과 특권, 불평등 문제에 분노해서 광장에 나온 것인데, 민주노총은 재벌, 재벌이 만드는 비정규직, 갑질 등 노동문제를 제대로 제기하지 못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몸으로 느끼는 일터의 불평등, 민주주의의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촛불 이전부터 노동계에 제기됐던 비판도 마찬가지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상황에서 노조는 이미 ‘기득권 세력’으로 호명되고 있다. 무엇보다 일부 대공장 정규직 노조는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연대의 원칙을 저버리며 고립을 자초했다. 지난 4월 기아차 정규직 노조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조 테두리 밖으로 내몰았다. 한국지엠 노조 간부는 지난해 11월 정규직 채용을 미끼로 돈을 받아 구속되기도 했다. 국제노동기준에도 못 미치는 한국의 법제도와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사용자들을 탓하기에 앞서, 노동계가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노동계에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 삶과 가까이에 있는’ 노조에 대한 인식과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노사관계 국민인식조사’(2017)를 보면, ‘노조를 통한 사회 불평등 완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1987년 민주항쟁 이후(1989년) 수준으로 ‘회복’됐다. 시민들은 노조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고용 안정에 기여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힘써주길 기대하고 있다. 노조가 ‘부당한 대우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10년 전에 견줘 두배나 치솟았다. 이 연구를 맡은 연구자들은 이런 시민들의 인식변화 원인으로 “촛불과 촛불로 탄생한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꼽았다.

한 노조 활동가는 “민주노총이 실제 미가입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말로만 비정규·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말할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투자해 저임금·비정규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노조 가입 사업을 해도 모자랄 판”이라고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노동계의 이런 고민과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노조 조직률’을 어떻게 올릴 것인지, 광장에서 외쳤던 민주주의를 일터에서 어떻게 뿌리내리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왜 우리 투쟁을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이해하지 못할 화법과 납득하지 못할 수단으로 명분과 당위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노조 자체가 생소하지만, ‘우리 회사에도 노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듣고 다가서기를 바란다. 노동계가 수년째 요구해온 내용을 정부가 이행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10일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에서 촛불을 언급하며 “정치와 일상이, 직장과 가정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민주주의로 훈련될 때, 민주주의는 그 어떤 폭풍 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촛불로 정권이 바뀌었다. 이제 우리 삶과 일터를 바꿀 때라고 믿는다. 촛불로 탄생한 정부가 촛불의 요구를 채우라고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정부를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일터를 민주주의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찾아나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온통 우울한 이야기투성이였던 나의 출입처이자 일터, 그러니까 ‘노동판’에 좀더 희망찬 이야기들이 가득하기를 나는 소망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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