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고 바로잡는 사회적 캠페인 ‘직장갑질 119’의 스태프들이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4층에서 공식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한 뒤 거울로 ‘갑질 반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솔직히 네 경력 진짜 별로인데 내가 널 뽑아준 줄 알아.”
“고작 이따위로 일을 해놓고 돈 받아가는 게 부끄럽지 않느냐”,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잘라버릴 수도 있다.”
한 방송국에서 3년차 작가로 일하는 황 아무개씨가 막내작가 시절이던 첫 6개월 동안 매일 들어야 했던 말이다. 황씨는 하루 15시간 안팎의 중노동에 시달리고 새벽 2시에도 카톡으로 업무연락을 받았다. 임금은 취재비나 원고료로, 그것도 현금이 아니라 방송 협찬용 상품권으로 받았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사정을 말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직장갑질119’ 출범 기자회견에서, 막내작가로 고용될 당시 근로계약서는커녕 근로조건에 대한 어떤 설명이나 안내도 듣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저는 인건비 회계처리에서조차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는, 고용도 해고도 될 수 없는 존재였어요.”
직장 내의 불합리한 행태 수준(직장갑질 119 설문조사 중)
우리나라 직장인 3명 중 1명은 직장에서 겪는 불합리한 행태가 ‘매우 심각’(5.6%)하거나 ‘심각한 편’(25.9%)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런 ‘직장내 갑질’ 상황이 닥치면 ‘참거나 모른척 한다’(41.3%)거나 ‘회사를 그만 둔다’(12.3%)는 소극적 대응이 절반을 훌쩍 넘었으며, ‘동료와 집단대응’(8.2%) 하거나 ‘관련기관에 신고’(7.5%)하는 적극적 대응은 15.7%에 그쳤다. 이런 사실은 ‘직장갑질 119’가 전국의 15~45살 직장인 710명을 상대로 직장 만족도와 노동조합 인식 등에 대한 온라인 설문 조사로 밝혀졌다.
직장갑질 119는 노무사·변호사·노동전문가 등 노동계 인사 241명으로 구성된 직장인 권리 보호단체로, 1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4층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출범을 알렸다.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고 바로잡는 사회적 캠페인이자 실질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사회단체다. 기자회견장 앞쪽 벽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회사에 불만 많으시죠? 직장을 함께 바꿔봐요”라는 글귀가 쓰였다.
불합리한 대우 시 대응 방법(직장갑질 119 설문조사 중)
이른바 ‘직장 갑질’에 대한 설문 조사(1,2순위 복수응답) 결과를 보면, 직장인들은 인력 부족(60.8%), 추가근무 수당 미지급(51.5%), 저임금(49.9%), 초과 근무 강요(46.5%), 교육 없이 업무 투입(46.3%), 휴가 미사용(45.5%), 퇴근 무렵 업무 부여(43.8%) 등을 ‘7대 갑질’로 꼽았다. 모두 임금과 고용 조건에 관한 것들이다. 직장인들은 이 밖에도 인격 무시와 언어 폭력, 차별 대우, 근로 중 부상에 대한 미보상, 부당한 근로계약, 감시·통제, 성폭력, 따돌림, 해고 위협 등 사용자와 중간 관리자로부터 다양한 유형의 갑질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갑질의 심각성 인식에 대해선 정규직(30.9%)보다 임시직(40.0%) 노동자가, 대기업 직장인(31.3%)보다 중소기업 직장인(35.2%)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응답자 10명 중 4명꼴로 이같은 갑질을 ‘참거나 모른 척 한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는 ‘대응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서’(65.5%)와 ‘인사 등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34.1%)가 거의 전부였다. 만연한 직장내 갑질문화에 대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응답자 중 노조 가입률은 13.8%로, 우리나라의 실제 노조조직율(10.2%)와 비슷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로는 ‘노조가 없어서’(59%)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는데, 이 역시 대중소기업간 차이가 컸다. ‘노조가 없어서’ 가입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대기업은 47.5%인데 반해 중소기업은 69.0%로 훨씬 높아, 중소기업의 낮은 노조조직율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향후 노조가 생기면 가입할 의사가 있다는 답한 비율은 55.2%로 나타났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1+2순위, 직장갑질 119 설문조사 중)
한편 직장갑질 119는 앞으로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직장갑질 고발 운동’과 ‘직장 바꾸기 운동’을 통해 직장내 갑질을 해결할 수 있는 선순환구조를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블로그·유튜브·패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기반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노동 및 법률 전문가들이 요일별로 상담을 진행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또 ‘갑질’ 사연 제보를 활성화하기 위한 직장갑질 119이벤트 대잔치를 2주마다 열고, 만화 <갑질직장상담 119>를 매주 발간하고 갑질 대응 매뉴얼을 카드뉴스와 동영상에 담은 대응 가이드도 제작한다.
갑질 대응에는 직장인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직장갑질119’를 검색하거나 ‘gabjil119.com’을 입력해 오픈채팅방에 입장한 뒤 익명으로 글을 올리거나 상담할 수 있다. 임금체불, 징계·해고, 실업급여 등 노동상담과 촉박한 업무지시·반발과 욕설 등 다양한 유형의 갑질에 대한 대응 뿐 아니라, 일하면서 생기는 건강문제 상담도 받을 수 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노무사, 변호사, 노동전문가들이 순번제로 노동상담과 갑질상담을 받는다. 직장갑질119는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공공기관, 지역 비정규노동센터, 사회단체 등과 협업체제를 구축하고, 내년 4월에는 ‘2018 대한민국 갑질 페어(박람회)’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