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법] 말뿐인 노동자대표제도
‘직장내 민주주의’ ‘노동조건 대등결정’
“노동자 대표제도 개편·재구축 필요”
문대통령 ‘종업원 대표 실질화’ 공약
고용부, 노사협의회 강화 쪽으로 가닥
현실은 기업 42.8%가 노사협의회 미운영
‘직장내 민주주의’ ‘노동조건 대등결정’
“노동자 대표제도 개편·재구축 필요”
문대통령 ‘종업원 대표 실질화’ 공약
고용부, 노사협의회 강화 쪽으로 가닥
현실은 기업 42.8%가 노사협의회 미운영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대에 그치는 상황에서 노조 없는 사업장에 대한 ‘노동자 대표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과반수’, ‘근로자대표’나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참법)의 노사협의회가 각각 중구난방으로 운영돼왔기 때문에 이를 통합해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노사협의회 제도 개선을 노동자 대표제의 대안으로 삼는 것을 방향으로 삼았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노사협의회 운영이 법적 의무인 30인 이상 사업장의 42.8%가 이를 운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구난방 노동자 대표제도 통합해야” 전문가들은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과반수’, ‘근로자대표’ 제도가 온전치 않다는 점을 들어, 근참법의 노사협의회와 합쳐 단일한 ‘노동자 대표제’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직장에서 주요한 노동 조건을 사용자와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노동자 대표제도는 매우 다양하지만 제도 간 서열도 분명하지 않고, 법적 구속력도 의문스러운 상황이어서 어느 하나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잡다한 노동자 대표제도를 노동조합과 종업원대표기구(노사협의회 등)라는 이원 체제로 단순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대로 된 노동자 대표제를 만드는 것은 ‘직장 내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장 민주주의는 좁게는 노동조건의 공동 결정, 넓게는 노동환경 전반에서 사용자와 노동자의 불균형을 시정함으로써, 노동 분야에서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며 “노동관계법에 산재해 있는 노동자 대표 시스템을 통합해 명실상부한 기업 내 집단적 근로조건 결정의 주체로서 노동자 대표 시스템을 개편·재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노동리뷰 8월호> ‘근로자대표 제도의 개선방향’에서 새로운 ‘노동자 대표제’의 조건으로 △설치 의무 사업장 확대 △노동자 대표 선출절차·신분보장 방안 마련 등을 꼽았다. 이 새로운 ‘노동자 대표’의 권한과 관련해 △취업규칙 제도를 없앤 뒤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노사 공동으로 결정·합의 제도로 전환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대표’ 권한, 노사협의회 의결·협의 권한 흡수 등을 들었다.
■ ‘노사협의회 강화’로 방향 잡은 정부 정부는 노사협의회 강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에서 “사업장 내 노동자 이해대변기구인 ‘종업원 대표’ 제도 실질화”를 통해 “90%의 중소·영세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노동자 대표기구로서 노사협의회 기능 강화 방안’ 연구용역을 냈다. 세부 내용으로는 △노동자위원 선거제도 마련 △근로자위원의 민주성 등 확보를 전제로 노동관계법상 근로자대표 권한 부여 및 근로자대표 역할 수행 시 구체적 의사결정 방안 △노사협의회 협의·의결 사항 확대를 통한 노사공동결정 기능 강화 방안 등이 꼽힌다. 특히 △사내 취약근로계층 대표 선출 방안 △복수사업자 및 생산공동체 단위로 노사협력의 외연을 확장하는 통합 노사협의회 도입 방안·역할 등도 포함돼, 현재는 노사협의회에 근로자위원 자격이 없는 비정규직이나 파견·사내하청노동자들도 의사결정 주체로 참여하는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문제는 기업들이 법적으로 의무인 노사협의회도 제대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에 맡긴 ‘노사협의회 운영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사업장 586곳 가운데 42.8%가 노사협의회를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하고 있더라도, 회사가 근로자위원을 위촉하거나(13.4%), 간접선거로 근로자위원을 선출(11.0%)하는 등 변칙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40.6%나 됐다.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한 곳 가운데 77.7%가 “설치·운영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라고 답했고, 8%는 아예 “노사협의회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답변했다.
특히 노조가 있는 기업의 92.5%가 노사협의회를 운영하는 반면, 노조가 없는 기업에서는 절반도 못 미치는 49.4%만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사협의회가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이익 대변을 위해 마련된 제도라는 점이 무색한 상황이다. 연구를 맡은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30인 이상 기업에서 노사협의회 설치가 의무화돼 있는데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 응답이 6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라며 “근로감독과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행정행위와 함께, 노사협의회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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