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소속 예술강사들이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앞에서 예술강사들의 학교 선택권을 제한하는 쪽으로 제도를 변경하는 것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지난주에 한 아이가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대본 하나를 탈고해서 들고 왔어요. 기진맥진해하면서도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얼마나 기분 좋던지…. 그런데 이젠 ‘내년에도 다시 와주실 거죠’라고 묻는 학생들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 하겠네요.”
23년차 베테랑 연극배우 성석주(50)씨는 연극 무대에 서면서 2004년부터 학교와 복지관 등에서 학생과 어르신들을 상대로 연극을 가르치는 ‘예술강사’ 일도 병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진행하고 있는 예술강사지원사업에 참여한 데 따른 것이다. 시간당 강사료는 4만원, 그나마도 한 해 최대 강의시간이 374시간으로 제한돼 있어 1년에 1200만원 정도밖에 못 버는 불안정한 계약직 자리지만, 이 일 덕분에 세 아이 등 다섯 식구의 부양을 책임진 성씨가 순수 예술을 계속하면서도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
최근 성씨는 내년부터는 이 일조차 계속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문화부가 최근 “예술강사들이 수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이것을 보고 학교 교사들이 직접 예술강사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뜻을 전달해 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순수 예술만 해선 먹고살기 어려워 시작한 일이지만 ‘못 이뤘던 꿈을 찾았다’는 어르신들, 조금씩 나아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뿌듯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내년부터 이 일을 못 하게 된다면 연극을 그만두고 새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겠죠.” 성씨가 올해 연극으로 벌어들인 돈은 100만원 정도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 받은 지원금(300만원)을 합쳐봐야 연소득이 400만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연극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연극·영화·무용 등 8개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강사는 5000여명 정도다. 성씨와 크게 처지가 다르지 않은 예술강사들(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앞에서 제도 변경 철회를 주장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불안정한 고용, 낮은 임금으로 악명 높았던 예술강사 사업이 또다시 예술강사의 학교 선택권을 제한하고, 대량해고를 양산하는 쪽으로 개악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예술강사지원사업은 그동안 자격 검증과 시험을 거쳐 선발된 예술강사들이 각 학교의 신청 분야에 맞춰 학교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김광중 예술강사 노조위원장은 “결국 학교에서 선택받지 못하면 사실상 해고가 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5000여명에 이르는 예술강사들의 계획서를 일선 학교들이 일일이 검토할 여력이 되겠느냐”며 “학교에서 예술강사지원사업 자체를 포기해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예술강사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문화부 쪽에선 “현재는 의견수렴 단계”라며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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