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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뉴스AS] 민주노총이 승소하고도 웃지 못한 까닭

등록 2016-04-29 15:54수정 2016-05-02 16:34

민주노총 사무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민주노총 사무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대법원, 노조전임자에 급여 더 주는 행위를 ‘부당한 노조지원’ 판결
노조활동 위축시킬 독소조항 근거한 법리 적용하자 민주노총 곤혹
대법원이 28일 노동조합 운영과 관련한 중요한 판결을 내놨다. 회사가 노조전임자의 초과 근무시간을 인정해 급여를 지급하면 부당한 노조지원 행위라는 판결이다. (▶바로가기) 이 판결을 형식적으로 보면, 민주노총 쪽 현장 조직이 한국노총 쪽 현장조직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긴 모양새가 된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뉴스AS에서 차분하게 따져봤다.

이번 소송을 낸 당사자는 전북 익산 지역에 뿌리를 둔 버스업체 신흥여객이다. 이 회사에는 한국노총 자동차연맹 소속의 신흥여객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의 신흥여객지부 등 두 개의 노동조합이 있다. 그런데 회사는 한국노총 노조 이아무개 위원장한테만 비슷한 경력의 다른 노동자에 견주어 1.5배가량 많은 임금을 줬다. 오래전 회사와 노조 사이에 맺은 단체협약에 따라 임금을 더 준 것일 뿐이라는 게 한국노총 노조와 회사의 주장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노조는 회사가 한국노총 노조에만 임금을 더 준 것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다. 노동조합법은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사용자가)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와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81조)를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북지방노동위원회는 회사와 단체협약에 따라 임금을 더 받았을 뿐이라는 한국노총 노조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재심을 맡은 중앙노동위원회는 민주노총 노조 손을 들어줬다.

이러자 자칫하면 처벌을 받게 된 신흥여객이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 이어 대법원도 과도한 임금을 지급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민주노총 노조와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을 지지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근로시간 면제자에 대한 급여 지급이 과다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는 근로시간 면제자가 받은 급여 수준이나 지급 기준이 그가 근로시간 면제자로 지정되지 아니하고 일반 근로자로 근로했다면 해당 사업장에서 동종 혹은 유사업무에 종사하는 동일 또는 유사 직급·호봉의 일반 근로자의 통상 근로시간과 근로조건 등을 기준으로 받을 수 있는 급여 수준이나 지급 기준을 사회통념상 수긍할 만한 합리적인 범위를 초과할 정도로 과다한지 등의 사정을 살펴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잡한 판결문 문장을 짧게 줄이면, 노조 전임자에게 지급하는 급여가 많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노조 전임자가 일하는 회사에서 비슷한 경력과 호봉으로 업무 성격이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일반 노동자들의 급여 수준에 준해 적절한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회사가 노조 전임자한테 일반 노동자에 견줘 과도하게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은 그 의도를 떠나 부당노동행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사건은 애초 문제를 제기한 민주노총 노조의 승리로 끝나는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환영 성명을 내지도 않았고 내부적으로 그다지 기뻐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대법원이 이번에 제시한 논리가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이 독소조항은 언제든 민주노총의 목을 향해 날아올 수 있는 칼이 될 수 있다.

사달이 빚어진 건 2010년 1월이다. 그 이전에는 노동조합에 몇 명의 노조 전임자를 둘지는 회사와 개별 노조가 자율적으로 합의해 단체협약의 문구로 정리하면 끝이었다. 회사는 노조와 합의된 인원들이 현업에서 일을 하지 않고 노조 업무만 보더라도 기본급과 상여금 등 고정급여를 지급했다. 법은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다.

2010년 1월1일 노동조합법이 바뀌었다. 노조 전임자 제도 대신 이른바 ‘타임오프’라고 불리는 근로시간면제심의제도를 도입했다. 법이 정한 한도 이상의 전임자한테 회사가 급여를 주거나 통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노조를 지원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처벌하는 제도다. 법이 최소한의 노조 전임자를 보장하고 노사교섭을 통해 그 수를 늘릴 수 있도록 하는 선진국과는 상반된 형태다. 당시 민주노총은 이런 방향의 노동조합법 개정이 노조 조직률 10.3%에 그치는 등 열악한 국내 노조의 활동을 더욱 옭죌 것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공조를 취하던 한국노총이 2009년 말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국면은 개정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이 이번에 새누리당 공천으로 구미시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장석춘씨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7월부터 타임오프 제도는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사업장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법이 정한 한도 이상의 노조 전임자를 두거나 사무실을 비롯한 각종 편의 제공을 회사 쪽에서 받고 있다. 사업장이 전국적인 단위에 흩어져 있는 경우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 등으로 인해 소수의 제한된 노조 전임자만으로 노조를 관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타임오프’의 경우 조합원 숫자가 증가하면 노조 전임자에게 면제하는 근로시간이 비례해서 증가하는 게 아니어서 사업장 규모가 클수록 노조 관리는 더 힘들다. 애초 개정된 노동조합법을 악법으로 규정한 민주노총으로선 자연스러운 저항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노조의 손을 들어준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자면 민주노총 쪽 사업장 일부도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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