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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아마추어 요리사’가 호텔쉐프를 대접하는 까닭

등록 2016-04-19 17:19수정 2016-04-20 11:29

고진수 셰프가 지난 2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후원주점에서 연어샐러드를 준비하는 모습. 고수정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고진수 셰프가 지난 2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후원주점에서 연어샐러드를 준비하는 모습. 고수정 다큐멘터리 감독 제공
고진수 세종호텔 노조위원장, 노동자 후원 주점 요리 도맡아
이번엔 전환배치·해고로 세종호텔 노동자 어려움에 빠지자
박점규씨 등 노동계 인사들 보답 차원 세종호텔서 연회 열어
조리사 면허도 없는 ‘아마추어 요리사’들이 1급 호텔 요리사들한테 음식을 대접하는 특별한 연회가 오는 28일 오후 6시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에서 열린다. ‘아마추어 요리사’는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집행위원을 비롯해 김소연 전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 등 노동계 인사들이고, 대접을 받는 이들은 세종호텔에서 일하는 정식 요리사들을 비롯한 세종호텔노조 조합원들이다. 이 노조의 위원장은 세종호텔에서 15년째 회칼을 들고 일식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 고진수(43)씨다. 고 위원장은 일식조리기능사와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 보유자다.

‘아마추어 요리사’들이 특별한 연회를 준비한 데는 사연이 있다. 고 위원장은 그 동안 해고되거나 탄압받는 노동자들이나 연대하는 이들이 후원주점을 열면 호텔 쉐프의 체면따위는 던져버리고 달려가 요리를 도맡아 했다. 그가 없는 후원주점의 주메뉴가 순대, 떡볶이, 어묵탕이라면 그가 나타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참치회나 연어회, 연어샐러드같은 고급 요리가 등장했다. 노동계에서 각종 행사에 백기완 선생의 출현만큼 고 위원장을 기다리는 까닭이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특화한 노동을 통한 연대에 나선 사업장은 기륭전자, 쌍용자동차를 비롯해 스타케미칼, 코오롱,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동양시멘트 등 10여 곳 이상 된다.

김소연 전 분회장은 “고 셰프가 기륭전자 후원주점 때는 와서 연어샐러드와 비전공 분야인 소시지야채볶음까지 해줬다”며 “노동계 어딘가에서 후원주점이 열린다고 하면 당연히 자신이 무언가를 도와야한다고 먼저 나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고 위원장이 몸담고 있는 세종호텔노조가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호텔 쪽이 경영사정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고 직원들을 전환배치하는 과정에서 노조 쪽과 갈등 상황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세종호텔은 19일에는 지난 2014년 12월까지 노조 위원장이던 김상진씨를 징계해고했다. 입사 할 때부터 객실과 프런트 업무를 맡던 김씨의 노조 전임이 해제되고 얼마 뒤 연회장 담당으로 발령을 내자 김씨가 여기에 저항했다는 이유에서다. 연회장 업무는 대개 초보자들이 맡는다. 예전에 세종호텔 일식당에서 일하던 고 위원장도 뷔페식당을 거쳐 현재는 연회장 업무를 맡고 있다.

2011년 제2노조가 출범해 복수노조 시대를 맞기 전 250여명에 이르던 세종호텔노조 조합원은 최근 16명으로 줄었다. 호텔 쪽이 배치전환 등을 무기로 조합원들의 노조 탈퇴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한 결과라는 게 노조 쪽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한 때 296명의 정규직과 2명의 직접고용 비정규직, 간접고용 20여명이 일하던 세종호텔은 현재 정규직 140여명과 60여명의 비정규직이 일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세종호텔노조가 속한 전국서비스산업연맹은 “호텔 쪽의 이러한 행태들은 지난 2009년 세종재단에서 무려 113억원이나 회계부정을 하고 비리로 물러난 주명건 회장이 다시 호텔로 복귀하면서 시작됐다”며 “호텔 쪽은 영업실적 저하를 이유로 기존의 직무와는 다른 부서로 강제발령을 하고 임금을 삭감하면서 정규직들을 퇴출시키고 비정규직들을 충원해왔고 조합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세종호텔 쪽은 “3년 이상 계속 수십억원의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해 회사를 정상화시키려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며 “다른 부서로 발령내면 일반 직원들은 잘 가는데 노조 조합원들만 유독 안 가려 한다”고 밝혔다. 노조 탄압에 대해서는 “노조의 피해의식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상황은 이렇지만 고 위원장은 일단 노동계가 차려주는 ‘연대의 밥상’을 받을 생각이다. “연회를 차라리 제가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하. 일단은 맛있게 먹으려고요. 요리사들 사이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남이 해주는 음식’이라고 하거든요.”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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