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포커스] 노동계 연대전략 모색
“정규직이 먼저 나서야”
‘귀족노조’란 비판 넘어서려면
인상분 하청노동자와 나누고
청년고용에 쓰도록 실천해야
“불공정 거래부터 바꿔야”
중기몫 가로채기 규제가 먼저
연대전략 무용지물 안되려면
‘양보분’ 하청 몫 되도록 해야
노사정위원회 차원 벗어난
업종·지역별 대화틀 제안도
“정규직이 먼저 나서야”
‘귀족노조’란 비판 넘어서려면
인상분 하청노동자와 나누고
청년고용에 쓰도록 실천해야
“불공정 거래부터 바꿔야”
중기몫 가로채기 규제가 먼저
연대전략 무용지물 안되려면
‘양보분’ 하청 몫 되도록 해야
노사정위원회 차원 벗어난
업종·지역별 대화틀 제안도
“기아자동차 발전과 성과의 몫을 최고경영진만이 독점해서는 안 되지만, 임금 협상에서 정규직만이 성과를 차지해서도 안 된다. 이런데도 (이번) 합의를 하면 대기업 노조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이자 우리는 또다시 대기업 귀족 노조, 제 밥그릇 챙기기만 하는 집단이라는 무거운 굴레를 안고 가야 한다. ”
지난해 12월31일 김성락 전국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장이 낸 성명서의 일부다. 당시 회사 쪽은 연말성과급으로 정규직한테만 300만원 상당의 회사 주식을 나눠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지부장은 대신 성과급 일부를 떼어내 비정규직을 위한 연대기금을 조성하자고 호소했지만, 회사와 조합원 일부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기아차지부는 다음달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연대기금 조성 방안을 재추진할 방침이다.
■ “정규직이 연대전략 나서야” 김성락 지부장의 성명서는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업체 노동자 간 임금 등 노동조건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정규직 노조가 갖는 고민의 일단을 보여준다.
민주노총은 2000년대 초중반 느슨한 연대체 형태였던 산별연맹을 단일노조인 산별노조로 전환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기치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후 10여년 동안 산별교섭 체제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한편, 노동 내부의 격차는 확대됐다. 보수 세력은 “정규직 노조는 귀족노조”라는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대법원이 산별노조의 지회도 자체 결의로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산별노조의 토대는 더욱 약화될 위기에 처했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위기를 타개하고 노동시장의 분절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 산별노조 등 기존 정규직 중심 노조들이 적극적인 연대전략을 펼쳐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과의 연대의식을 강화하고, 정부와 사용자 쪽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산별노조는 대기업 정규직이 주체이니 만큼 먼저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보여야 정부와 사쪽에 대항하는 명분을 찾을 수 있다”며 “임금인상 일정분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으로 사용하거나 청년고용을 늘리는 데 쓰도록 하는 등의 운동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도 “대기업 노조가 기득권 세력으로 몰린 지금의 구도를 깨려면 노동운동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연대임금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투쟁’이나 ‘정규직·비정규직간 같은 금액의 임금인상 요구안’정도로는 벌어지는 격차를 좁히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이다.
■ 어떤 방안 있나 현재 노동계 안팎에서는 몇가지 형태의 노동연대 전략이 거론된다. 청년유니온 등은 ‘사회보험 확대를 통한 노동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 임금의 1.3%를 노사가 절반씩 부담하는 고용보험료를 2% 이상으로 올려 실업급여나 구직급여를 확대함으로써, 청년 실업자, 비정규직 등의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은 보험료를 더 내고 노동약자들은 고용보험의 혜택을 더 보는 방식이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정부가 마치 노동유연성 확대의 반대급부로 고용안전망을 내주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데, 고용보험료를 내는 기존 노동자들이 고용안전망 의제를 가져온다면 노동개편 국면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지부처럼 정규직 노조가 임금의 일부를 떼어 기금을 만들어 비정규직을 지원하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께도 기존의 근로복지기금을 사회연대기금으로 확대해 원청업체뿐 아니라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쓰는 방안이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안됐으나, 구체적인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정규직 노동자가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위해 내놓는 연대임금전략도 거론된다. 2007년 보건의료노조는 사용자단체와의 교섭에서 국립대병원 임금인상분 4% 가운데 1.5%, 사립대병원 인상분 5.3% 가운데 1.8%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을 위해 쓰는 방안을 관철시켰다. 보건의료노조는 다음달 유사한 방안을 재추진할 방침이다. 정규직의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이 만큼을 신규일자리 늘리기에 활용하는 방안도 넓은 의미의 연대전략에 포함시킬 수 있다.
■ “정규직 양보론 안된다” 비판 하지만 노동계 안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 역시 강하게 제기된다.
“노동시장 임금격차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이 하청업체 등 중소기업의 몫을 과도하게 가로채가는 구조에 있는데, 정규직 노동자의 몫을 덜어 격차를 해소하려는 시도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1월 발표한 ‘노동소득분배율과 경제적 불평등’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79.8%에서 2012년 68.1%로 하락했다”며 “이 기간 임금근로자 내부의 격차가 확대됐지만, 노동과 자본간 소득의 불균형이 더 증가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임영일 한국노동운동연구소 소장은 “본질은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하청업체들의 수익률과 임금까지도 통제하는 원하청간 불공정 거래에 있다”며 “정부는 동반성장과 공정거래의 틀로 시장을 규제해나가고, 노조는 산별교섭의 틀로 임금격차 축소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설령 정규직 노동자가 ‘양보’를 하더라도 그 부분이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에게 돌아가게 만드는 확실한 기제가 없으면 연대전략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임영일 소장은 “원청과 1·2·3차 하청업체까지 산별교섭의 틀 안에 들어와 원청 정규직이 내놓는 돈이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한테 돌아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가 되지 않는 한 자칫 기업의 배만 불리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가 아닌 다른 차원의 사회적 대화의 틀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온다. 조성재 본부장은 “임금 격차를 축소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노동계와 사용자, 정부가 모두 나서야 한다”며 “정부와 공익위원의 목소리가 너무 큰 노사정위원회 대신 업종별, 지역별로 중간 수준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