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쌍용 금속노조 부위원장(앞줄 왼쪽부터)과 정연재 발레오만도 비대위원, 원고 쪽 소송대리인인 김태욱 변호사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들머리에서 “산업별 노조 산하 지부·지회가 어느 정도 독립성이 있다면 스스로 조직형태를 변경해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입장을 밝힌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9일 전국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1·2심을 뒤집고 파기환송한 것은 그동안 국내 노동운동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한 산별노조의 기틀을 크게 흔들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산별노조의 일부 사업장이 기업노조로 전환하려 하거나 산별노조의 조직 장악력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고 이를 악용하려는 기업 때문에 노사갈등이 증폭될 소지도 크다.
대법원은 이날 여러 노조가 모인 연맹과 달리 단일노조인 산별노조에 속한 한 지부나 지회는 원칙적으로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자격이 없다고 봤다. 그럼에도 지부나 지회가 민법상 ‘법인이 아닌 사단’으로서의 실질을 갖춰 산별노조한테서 독립성이 있는 경우는 예외로 봐야 하는데, 1·2심은 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으니 이를 다시 살펴보라는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즉, 산별노조의 지부나 지회가 만들어진 경위와 규약·정관이 산별노조와 독립돼 있는지, 실제 지부나 지회를 운영하고 관리한 실태가 어땠는지 등을 따져 나름의 독립성이 있으면 스스로 기업노조로 전환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게 맞는다는 얘기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이 ‘산별노조 전환’이라는 국내 노동운동의 큰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비록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에도 노동계는 1990년대 말부터 개별 기업노조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결합한 연맹체계를 산별노조로 전환하기 위해 애써왔다. 노조와 회사의 유착을 벗어나 미약하나마 노동자의 집단적 목소리를 모아내고 동일한 산업 안에서 임금 등 노동조건의 격차를 줄여나가려면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부분 기업노조로 출발해 상당한 독립성을 가진 채 산별노조로 전환하고 있는 국내 노동조합의 특수성을 무시했다. 판결대로라면, 조금이라도 독립성을 지닌 지부나 지회가 산별노조의 단일한 지휘체계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산별노조가 규율하기 어렵다. 산별노조와 갈등을 빚는 지부나 지회가 언제든 조직형태 변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성명을 내어 “대법원은 독자적 교섭권과 협약체결능력이 없어서 도저히 노동조합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까지도 노조법에서 정한 조직형태 변경 제도의 적용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되면 산별노조는 무늬조차 남지 않게 될 수 있다.
대법관들조차 이번 판결로 기업이 노조의 활동을 지배하거나 개입하려 해 노사갈등이 커질 것으로 우려한다. 이인복·이상훈·김신·김소영·박상옥 등 대법관 5명은 반대의견에서 “사용자가 대립관계에 있는 산별노조를 축출하고 우호적인 기업별 노조의 설립을 유도하고자 산별노조 지회 등이 조직형태 변경을 통해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것을 은밀하게 지원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박정미 정책실장은 “금속노조가 민주노총 내부 16개 산별·연맹은 물론 한국노총의 25개 가맹조직을 통틀어 가장 산별노조의 힘이 강한 곳인데도 금속노조 소속 지부나 지회의 독립성이 인정되는 상황이 되면 국내 모든 산별노조의 기반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짚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