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정부 노동개편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12일 오후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한국인사관리학회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양대 지침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해보니 “취업규칙 변경의 요건과 절차 마련에 70.0%가 동의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양대 지침은 기업이 업무실적 부진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요건과 절차를 명시한 이른바 ‘저성과 해고 지침’과, 이른바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춘 때에는 (근로기준법 규정과 달리)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취업규칙을 노동자 쪽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취업규칙 변경 지침’을 말한다. 모두 노동계·야당과 사용자단체·여당·정부가 양쪽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하는 주제다.
이처럼 갈등이 큰 주제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할 땐 찬반양론을 나란히 소개하면서 의견을 묻는 게 상식이다. 최소한 정확한 내용 전달이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인사관리학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취업규칙과 관련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서는 취업규칙의 변경이 필요하다. 임금피크제 도입 때 취업규칙 변경의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방안에 동의하느냐”고만 물었다. 긍정적 표현만으로 이루어진 질문에 국민 100%가 찬성하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다.
저성과 해고 관련 질문도 마찬가지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배치전환과 충분한 교육훈련을 통해 개선의 기회를 주고, 그래도 성과 향상이 없는 경우에 계약해지하는 등의 인사관리 방안에 대해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54.2%가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저성과 해고 지침 신설이 일반 해고의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쪽의 의견은 제시되지 않았다. 또 ‘해고’라는 단어 대신 ‘계약해지’라는 표현을 써서 마치 계약직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지침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우리가 학회에 조사를 요청했고, 조사비용은 일단 학회가 냈다. 우리가 어떻게 후원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지난달 7일에도 고용부 산하기관이자 이기권 장관이 장관 부임 전 총장으로 있던 한국기술교육대의 금재호 교수(한국노동경제학회장)한테 요청해 기간제 노동자의 71.7%가 사용기간 제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데 찬성했다는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계에서는 2년 뒤 정규직 전환 의사는 묻지 않은 편향된 조사였다고 반발했다.
고용부는 ‘제 논에 물 대기’식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 논에 물을 너무 많이 대면 벼가 썩는다. 여기서 벼는 국민의 신뢰일 것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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