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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농장일 하는 캄보디아인…‘226시간 근로계약서’의 덫

등록 2015-12-17 22:48수정 2015-12-18 08:50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지구인의 정류장, 이주노동조합, 수원이주민센터 등 단체 활동가와 이주노동자 50여명이 지난 8일 고용노동부 성남고용노동지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농축산업 노동자한테는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도 추가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한 근로기준법 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지구인의 정류장, 이주노동조합, 수원이주민센터 등 단체 활동가와 이주노동자 50여명이 지난 8일 고용노동부 성남고용노동지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농축산업 노동자한테는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도 추가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한 근로기준법 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최저임금 못받는 이주노동자
캄보디아 농촌지역 따께우에서 쌀농사를 짓던 28살 여성 모란(가명)이 한국 땅을 밟은 건 2012년 6월이다. 모란은 다른 캄보디아 여성 3명과 함께 비닐하우스 15동에서 상추며 깻잎·고추·머위·딸기 씨나 모종을 심고 물과 비료를 준 뒤 다 자란 작물을 수확해 포장하는 일을 했다. 지난 9일 경기 안산 이주노동지원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만난 모란은 “점심시간 1시간을 빼곤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1시간 일을 했다”고 말했다. 한여름 비닐하우스의 찜통더위 속에 무거운 비료포대를 나르면서도, “일 열심히 안 하면 캄보디아로 보내버린다”는 농장주의 험한 말을 들으면서 고향에서 간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동생한테 돈 부칠 생각에 힘을 냈다.

하지만 한달에 이틀만 쉬고 28~29일 동안 하루에 11시간씩 일을 해도 월급은 130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최저임금 5580원을 적용해 대충 계산해도 171만8640원(5580원×11시간×28일)은 돼야 했다. 농장주는 노동자가 아프거나 농장에 일거리가 없어 하루라도 쉬면 그만큼을 임금에서 빼고 줬다.

“하루 11시간씩 일해도 월급 130만원”
“사장님, 임금이 너무 적어요” 했다가
농장주, 되레 “숙소비 45만원 내라”
단체도움 받아 ‘최저임금법 위반’ 진정

농장주, 226시간 근로계약서 내밀어
노동자, 초과근로 증명 못하면 당할판
신고해도 고용센터·노동청은 묵인

이주노동자 근로계약서 작성사례
이주노동자 근로계약서 작성사례

급기야 지난 10월 농장주한테 “사장님, 임금이 너무 적어요”라고 따졌다. 그러자 농장주는 “그럼 다음달부터 숙소비로 45만원씩 내라”고 말했다. 그동안 비용을 따로 받지 않은 닭장 옆 컨테이너 숙소 사용료로 1인당 45만원을 내라는 것이다.

그날 농장을 나온 모란은 ‘지구인의 정류장’ 쪽 도움을 받아 고용노동부 대전지청에 농장주를 최저임금법 위반 혐의로 진정했다. 이제 시작 단계인 조사 결과가 언제 나올지, 이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해당 농장주는 “모란의 근로계약서에 한달 노동시간이 226시간으로 돼 있고 실제 그만큼 일을 시켰기 때문에 해당 시간만큼의 최저임금(226시간×5580원=126만1080원)은 줬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을 증명하지 못하면 노동청도 농장주들의 주장을 믿을 가능성이 크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모란의 근로계약서에 하루 노동시간이 오전 7시~오후 7시로 돼 있고 하루 1시간이 휴게시간, 한달 휴일이 2일로 적혀 있어 이를 곱하면 한달 308시간이나 316시간이 돼야 하는데도 한달 노동시간은 226시간으로 적혀 있는 근로계약서가 노동청에서는 버젓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226시간은 주 44시간제 시절 한달치 평균 노동시간인데, 지금도 고용허가제로 오는 이주노동자와 농장주가 맺은 근로계약서에는 하루 노동시간과 무관하게 한달 노동시간은 226시간으로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이상한 계약서를 신고해도 고용센터가 받아주고 노동청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과 관계자는 “영세한 농장들이 근로시간을 따로 적지 않고, 우리가 근로시간 관리를 해보니까 대략 226시간 정도 된다고 해서 인정하는 것”이라며 “추가근로를 시키면 반드시 임금을 더 주라고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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