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민주노총 2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경제위기-노동개악에 맞선 세계 노동자들의 투쟁’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경제 성장의 둔화와 함께 기업들이 업무를 외주화하고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움직임은 전지구적 현상이다. 특히 저임금·불안정 노동의 직격탄을 맞는 건 20∼30대 청년들이다. 전세계 노동조합들이 좋은 일자리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청년들을 조직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적극 나서는 움직임을 소개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민주노총은 12일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경제위기-노동개악에 맞선 세계 노동자들의 투쟁’이란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아시아, 유럽,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노동 운동 활동가, 노동조합 관계자, 노동 문제 전공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탈리아노총(CGIL) 활동가이자 유럽연합(EU)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살바토레 마라는 “노동시장이 점점 불안정해지면서 젊은이들이 갈수록 노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며 “기존 노조가 청년들을 노조의 중심축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유럽노총은 최근 5년 동안 조합원수가 240만명이나 줄어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처해있는 상황도 비슷하다.
이탈리아노총은 청년들을 조직하기 위해 대학 등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캠핑카를 개조한 이동식 버스를 임시 노조사무실 성격으로 투입했다. 대학생들한테 일자리 관련 설명회를 하거나 해고에 대응하는 법, 실업급여 받는 법 등을 교육하고 각종 문화행사를 열어 노조와 친숙해지는 활동을 벌였다. 마라는 “이런 활동들은 나름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마라는 또한 이탈리아 정부가 청년실업 해소를 명분으로 기존 노동체계의 안정성을 흔드는 방향으로 제도개편을 추진한 상황도 소개했다. 마라는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12월 30%대에 이르는 청년 실업률 해소와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일자리법(Job’s Act)을 통과시켜 대대적으로 노동자 보호 수준을 낮추고 쉬운 해고를 추진하고 있다”며 “하지만 정작 새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고 기존 일자리를 다시 분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기존 정규직보다 처우가 낮은 무기계약직 도입, 실업급여 적용대상은 확대하면서도 수급기간과 급여액은 삭감, 정리해고 뒤 일정기간이 되면 해직자를 의무재고용하는 조항 삭제 등이다. 이탈리아 정부도 한국처럼 “나이 든 노동자가 너무 보호돼 청년들은 덜 보호되고 있다”며 “ 정부는 청년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우산을 나눠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마라는 전했다. 이에 맞서 이탈리아 노총은 “정부가 부모 세대의 고용불안만 가중시킬뿐 청년들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노조 활동가들이 거리에서 구멍난 우산을 들고 행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고 한다.
최근 ‘최저임금 15달러’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미국에서도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들과의 관계맺기가 화두다. 전미서비스노조의 활동가 니콜라스 러디코프는 심포지엄에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노동운동은 청년들의 에너지와 열정을 노동자를 위한 투쟁에 승리를 가져다 줄 대중조직으로 변모시켜야 한다”며 “우리가 청년들과 성공적인 관계맺기를 하지 못하면 청년들은 사회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단체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 뉴욕주에선 지난 2012년부터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8.75달러인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리라는 운동이 벌어졌고, 지난 10일(현지시각) 공공부문부터 15달러로 올리는 행정조처가 단행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 운동은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디트로이트, 뉴올리언스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전국적 규모의 조직위원회까지 꾸려진 상태다. 러디코프는 “파견, 하청, 특수고용, 프랜차이즈 등은 자본이 이윤을 극대화하면서도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거리와 법정에서 투쟁하는 한편 전세계 노동조합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드레아 빌러 영국 노팅엄대 교수(정치경제학)는 “유럽도 전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 유로존 위기까지 닥치는 바람에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을 중심으로 공공부문 민영화, 노동유연화, 각종 복지삭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노동운동이 투쟁을 통해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초국적인 연대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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