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 노동자에 임금지급 판결
정부의 임금피크제 도입 압박에 따라 공공기관들이 노동자들의 반강제적 동의를 요구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눈길을 끄는 판결이 나왔다. 회사가 임금피크제 도입 관련 취업규칙을 바꾸려고 직원 동의를 받을 때 평소 직원교육·행사에서 회사 직제상 직원을 묶는 단위보다 유독 더 작은 단위로 의견을 모으거나, 사용자 쪽이 소수의 노동자를 대면해 동의 여부를 직접 묻는 방식은 회사의 지배·강요일 수 있어 효력이 없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부장 마용주)는 8월28일, 최아무개씨 등 사교육업체 대교 소속 노동자 3명이 회사를 상대로 ‘부당한 취업규칙 변경 과정을 거쳐 도입된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못받은 임금을 돌려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노동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했다. 법원은 대교가 2009·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직급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과 관련해 “1·2차 취업규칙 변경은 근로자들의 적법한 동의를 얻었다고 볼 수 없어 무효”라며 세 노동자한테 임금피크제 때문에 받지 못한 임금 3300만∼4000만여원을 돌려주라고 선고했다.
법원은 이런 판단의 근거로 대교 쪽이 바뀐 취업규칙의 내용을 사내 누리집에 게시했을 뿐 노동자들한테 직접 설명하지 않았고 의견 취합 기간도 사흘에 미치지 못한 사실을 들었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회사가 노동자한테서 의견을 취합한 단위와 방법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다. 회사가 내부행사나 교육·강연을 할 땐 전국 19개 지역별 본부나 본부 아래 여러 개로 나뉜 ‘권역별 조직’ 단위에서 했는데, 노동자한테 불이익한 내용의 취업규칙 개정 관련 의견 수렴은 권역별 조직 아래 가장 작은 조직단위인 교육국 차원에서 한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근로자들의 집단적 논의를 사실상 배제하거나 최소화하고, 나아가 해당 절차에 대한 회사 쪽의 관여도를 직·간접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조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노동자한테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을 때 노동자 이름을 쓴 서류에 찬성·반대를 묻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관리자가 서너명에 불과한 극히 소수의 노동자를 직접 대면해 동의서를 주고받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근로자들이 찬반 의사를 교환·형성함에 있어 유지돼야 할 집단성·자유성은 상당한 정도로 축소될 것”이라는 이유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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