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대전·충북 지역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장그래꽃분이노조’(꽃분이노조)의 설립 신고 과정은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며 크게 바뀌지 않고 내려온 한국 노동행정의 반민주성과 억압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전고용노동청(대전청)이 지난달 노조 설립 신고를 한 꽃분이노조에 내린 보완처분은 다섯 가지다. 노조 설립 목적에서 “정치”라는 단어를 빼라는 터무니없는 요구(<한겨레> 8월3일치 9면 참조)도 실은 도대체 무엇을 고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동조합법 2조 보완”이라는 보완요구서 문구를 이해하려고 노조 쪽이 대전청에 전화로 문의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전청은 꽃분이노조에 “노조 임원은 조합원 중에서 선출돼야 한다”거나 “(규약 제정·변경…노조) 조직 형태의 변경에 관한 사항은 조합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규약에 넣으라는 보완요구도 했다.
이 또한 억지가 아니라면 불필요한 요구다. 임원 관련 내용은 노동조합법 제23조 1항, 투표 요건은 같은 법 16조 2항과 문구가 똑같다. 해당 법률 조항은 강행 규정이라 노조가 같은 내용을 굳이 규약에 넣을 필요가 없다. 어기면 무조건 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대전청은 4일엔 앞선 세 개는 놔두고 나머지 보완요구 2개 가운데 노조 회의록만 내면 설립 신고 필증을 주겠다고 해 꽃분이노조는 그 말을 따랐다. 보완요구 회신 마지막날인 5일이 되자 대전청은 말을 또 바꿨다. 대전청은 낮 12시께 ‘쟁의행위 찬반투표 공개’ 등의 내용을 담아 규약을 개정하라는 요구가 담긴 전자우편을 노조 쪽에 보내더니 오후 8시께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장그래꽃분이노조’ 설립 신고 필증을 내줬다. 애초 보완요구 처분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이었는지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노동삼권의 시작점인 단결권조차 누리기 힘든 나라에선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입에 올리기 전에 ‘노동행정 구조 개혁’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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