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기간제 노동자와 23개월 동안 무려 16차례에 걸쳐 ‘쪼개기’ 근로계약을 맺고도 정규직화를 피하려 해고한 건 부당하므로 해당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복직시키라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판정이 나왔다.
중노위는 2013년 2월부터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16차례에 걸쳐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다 올해 1월31일 해고당한 박점환(25)씨가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서 “부당 해고를 인정한다”고 4일 판정했다. 중노위는 “현대차는 박씨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기간에 근로했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현대차 생산직에서 일하는 기간제 노동자가 정규직 판정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겨레> 3월30일치 9면 참조))
중노위가 부당해고라고 판단한 핵심 근거는 박씨에게 인정되는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이다. 여러 정황상 박씨로서는 현대차와의 근로계약이 계속 갱신되리라 믿을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른 법적 권리가 생겼는데, 현대차가 이를 저버렸다는 논리다. 그 근거는 여러가지다. 현대차는 애초 촉탁직으로 불린 기간제 채용공고를 낼 때 “필요시 근로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을 게재해 박씨한테 ‘열심히 일하면 근로계약을 갱신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이를 믿은 박씨는 23개월 동안 단 하루의 휴가도 쓰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현대차가 박씨와 맺은 16차례 근로계약의 기간은 평균 44.1일인데, 때론 13일짜리 계약을 맺기도 했고 근로계약이 끝난 지 36일이나 지나서야 새 계약서를 쓰는 등 근로계약서는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중노위는 “박씨는 일시적으로 발생한 결원을 충원하기 위해 채용된 게 아니고, 상시 발생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채용된 점”도 갱신기대권의 근거로 인정했다.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은 2011년 대법원이 첫 판례를 내놓은 뒤 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서 점차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중노위는 ‘기간제법 규정상 정규직화해야 하는 기간제한 2년이 지나기 전에 이뤄진 정당한 해고’라는 현대차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간제법의 취지는 기간제 노동자를 2년이 되기 전에 자르라는 게 아니라 2년이나 썼으면 정규직화하라는 것인데 현대차가 그 취지를 벗어나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지 않으려고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 관련 기사: [단독] 현대차, 촉탁직과 23개월 동안 16번 쪼개기 계약)
민주노총은 이날 낸 성명에서 “중노위 판정은 대기업에 만연한 사내하청의 불법파견 판결에 이어, 이를 회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촉탁직을 고용하고 2년이 안 돼 반복적으로 해고하는 기업들의 관행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현대차는 중노위의 판결을 성실히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대차 쪽은 “중노위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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