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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최저임금 결정…“마트 동료들 문자에 통곡”

등록 2015-07-10 19:32수정 2015-07-11 11:21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 위원으로 처음 참여한 김진숙 홈플러스노조 서울본부장, 김민수 청년유니온 대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왼쪽부터)이 최저임금 논의·결정 과정에서 겪은 일과 느낀 바를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 위원으로 처음 참여한 김진숙 홈플러스노조 서울본부장, 김민수 청년유니온 대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왼쪽부터)이 최저임금 논의·결정 과정에서 겪은 일과 느낀 바를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노동자위원이 돌아본 최저임금 결정과정
공익·노동자·사용자 위원 각 9명씩 모두 27명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이 해마다 다음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올해엔 최저임금위원회에 비정규·여성·청년 당사자를 대표해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김진숙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노조 서울본부장,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처음 참여했다. 이들 ‘새내기’ 노동자 위원의 눈을 통해 4월30일 제2차 전원회의부터 노동자 위원이 빠진 채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7월8~9일 제12차 전원회의까지의 과정을 돌아봤다. 좌담은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2시간30분 남짓 진행됐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의 심의 촉진안(5940~6120원, 6.5~9.7%)이 발표된 8일 새벽 5시30분께 노동자 위원 모두가 퇴장했다. 노동자 위원이 빠진 상황에서 9일, 2016년 최저임금 시급 6030원·8.1% 인상이 표결로 결정됐다. 심정이 어땠나?

김진숙 7일 오후 3시30분부터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제11차 전원회의를 시작해 14시간 넘게 회의하다 공익위원이 낸 심의촉진안을 보고 퇴장해 서울로 올라왔다. 밤을 꼴딱 새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더라. 공익위원 심의촉진안이 나오는 순간 ‘우리는 들러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두자릿수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허탈했다.

노동자 위원들은 집단 퇴장 뒤 8일 기자회견에서 공익위원이 심의촉진구간을 다시 제시하면 회의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심의촉진구간을 새로 제시하고 복귀를 요청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8일 오후부터 열린 제12차 전원회의에서 노동자 위원도 없이 바로 표결해 결정하더라.

최저임금이 결정된 9일, 마트 문 닫는 밤 12시에 퇴근해 집에 돌아온 조합원들이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왔다. ‘우리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통곡했다. 법정 최저임금이 곧 받을 수 있는 최고임금인 우리 조합원들의 상처가 더 컸을 텐데 오히려 나를 위로하려 드니….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비정규직 대표 이남신
우리는 순진했고 정부는 거짓말
노조밖 노동자들 절절한 의견 전해
양대노총은 말만 말고 투쟁했어야

이남신 우리가 너무 순진하고 무력했던 것 같다. 올해처럼 최저임금 인상에 좋은 사회적 분위기가 언제 있었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최저임금을 빠르게 올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이번 8.1% 인상은 노동소득격차 해소에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최저임금제가 처음 실시된 1988년부터 지금까지 평균 인상률 9.8%에도 못 미친다. 내수를 진작하고 소득격차를 완화하려면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필요하다더니, 결국 정부가 거짓말을 한 거다.

하지만 정부 탓만 할 수도 없다. 노동자 위원들은 양대노총 조합원에 청년유니온, 알바노조까지 합치면 최소 200만명을 대표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임금 협상’이라고 하면서도 노동자들과 그 대표 조직은 너무 조용했다. 개별 회사에서도 임금협상 때 한 푼이라도 더 올리려고 파업 등 쟁위 행위를 하지 않나.

김민수 최저임금 논의에 참여하며 시급 6000원은 기본으로 넘고, 최소한 두자릿수 인상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노동자 위원이 퇴장하고 사용자·공익 위원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기본’이라고 생각한 6000원도 못 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에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했다.

-노동자 위원은 그동안 양대노총 간부 위주였다. 이번에 비정규·여성·청년 노동자 대표가 새로 참여해 노동자 위원 구성이 다양해졌다.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보나?

김민수 청년유니온은 2010년부터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저임금·주변부 대표 노동자인 청년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에는 최저임금 논의 과정을 지켜보며 뭔가 허전했다. 본격적인 금액 심의 기간은 1주일 남짓뿐이고, 그 기간에도 노동자·사용자 위원이 수정안을 주고받다가 공익위원이 심의촉진구간을 발표하고 바로 표결에 들어갔다. 숫자로만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올해부터 청년들은 저를 통해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참여할 통로가 생겼다. 청년은 조직 노동자가 많지 않다. 따라서 투명한 정보 공유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제2~4차 전원회의에서 회의 공개를 요구했던 거다. 개인적으로는 페이스북으로 회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공유하려 애썼다.

김진숙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노조 서울본부장
김진숙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노조 서울본부장

여성 대표 김진숙
공익위원안에 “우린 들러리였구나”
저임노동자 무시당하는 느낌 받아
실망했을 동료들이 되레 위로해줘

김진숙 2013년에 노조를 만들고 지난해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하며 최저임금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홈플러스의 경우 임금협상이 진행돼도 법정 최저임금이 결정되기 전에 회사 쪽 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지난해 2015년 최저임금이 5580원으로 결정된 뒤에야 회사 쪽 안을 가져왔고 결국 최저임금보다 120원 더 많은 시급 5700원으로 결정됐다. 대형마트 3사에 여기 딸린 유통협력 업체 임금이 딱 최저임금 수준이다. 노조가 있는 우리도 최저임금보다 더 받기가 이렇게 힘든데 노조가 없는 곳은 오죽하겠나.

그래서 올해부터는 최저임금 투쟁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노동자 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제안이 왔다. 최저임금이 곧 받을 수 있는 최고임금인 여성 노동자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서비스 노동자로서 이들을 대변한다는 책임감으로 임했다. 어떤 사용자 위원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한테 베풀어야 하는 건 맞지만 우리도 어렵다”고 하던데, 최저임금은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한테 돈 더 달라고 떼쓰는 게 아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달라고 요구하는 거다. 사용자 위원이 30원·35원 인상안을 냈을 때 액수 자체보다도 일하는 사람의 존엄이 짓밟혔다는 생각에 눈물이 많이 났다.

이남신 노동자 위원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양대노총 간부 9명으로 구성됐다. 노조 밖에 있는 최저임금 노동자를 대변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인 김진숙·김민수 위원이 들어가서 자기 이야기를 하니 내부에서도 파문이 인다. 사용자 위원이 올해보다 최저임금을 30원만 올리자는 2차 수정안을 냈을 때 김민수 위원이 할아버지·외할머니·아버지·여동생 이야기를 하며 최저임금이 왜 인상돼야 하는지 절절하게 말했다. 시급 5700원, 월 114만원 받는 김진숙 위원을 보며 다른 노동자 위원도 “최저임금위원회에 와서 노동자 대표로 앉아있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참 부자처럼 살았구나 싶었다”는 자기 고백을 했다. 어떤 사용자 위원은 “홈플러스에서 정말 시급 5700원 주는 게 맞냐”고 물으며 놀라워했다. 이게 당사자의 힘이다. 더 많은 당사자들이 최저임금위원회뿐 아니라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임기가 2년 남아 있다. 올해 처음 내건 최저임금 1만원 요구는 미완의 과제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남신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노동자·사용자 위원이 대립하면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이 사용자 편에서 심의촉진안을 낸다. 공익위원 추천권 문제가 그래서 중요하다. 방청과 배석을 확대하고 속기록 수준으로 회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양대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요구를 내걸었으면 그에 걸맞은 조직적 노력을 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집회를 하든 1인 시위를 하든, 하다못해 최저임금 1만원 지지 인증샷을 찍든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고 알려야 한다.

김진숙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 참여해보니, 우리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한다는 걸 새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돈 조금만 줘도 되고, 심지어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지급하자고 하고. 최저임금은 딱 그만큼만 주라는 의미가 아니다. 아침에 출근해 퇴근할 때까지 8시간 동안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그래서 365일 목·어깨 부황 자국 달고 살고,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느라 젓가락질을 할 힘도 없을 때까지 일하는 게 마트 노동자다. 우리는 최저임금만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점이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한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청년 대표 김민수
투명한 정보공유 위해 SNS로 알려
저임노동자처럼 소상공인도 임계점
‘1만원’ 위해 양자 딜레마 해법 필요

김민수 마지막 표결 과정에서 소상공인을 대표해온 사용자 위원 2명이 최저임금 인상률이 너무 높다며 퇴장했다. 저임금 노동자의 삶과 마찬가지로 소상공인의 삶도 한계점에 다다랐다. 최저임금 1만원을 성취하려면 양자의 딜레마를 개선할 방안을 꼭 찾아야 한다. 누가 더 주고 덜 주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노동계도 임대료·카드 수수료,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료 등 소상공인의 고민과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목소리를 보태며 상호 신뢰를 쌓아야 한다.

글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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