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태분석 자료 내고 시정명령 예고
유일교섭단체 규정 등 제동나서
‘경영에 노조 동의’도 문제 삼아
국제노동기구 제소에도 아랑곳않아
“정부가 노동 유연화 주도” 비판
유일교섭단체 규정 등 제동나서
‘경영에 노조 동의’도 문제 삼아
국제노동기구 제소에도 아랑곳않아
“정부가 노동 유연화 주도” 비판
정부가 대기업 사업장의 단체협약(단협)에 대한 문제제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개별 사업장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이어 단협에까지 정부가 직접 개입해 노사 자치의 토대를 허물고 정부 주도의 노동유연화 정책을 편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24일 ‘매출액 상위 30개 대기업 단체협약 실태분석’ 자료를 내어 “조합원 자녀 등의 우선채용 규정이 있는 곳이 11곳(36.7%), 법상 복수노조가 보장돼 있음에도 유일교섭단체 규정을 둔 곳이 10곳(33.3%)”이라며 “인사·경영권에 대한 노조 동의(합의) 조항이 있는 곳이 14곳(46.7%·중복 적용)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우선채용 규정과 유일교섭단체 규정은 위법이라며 8월 말까지 노사의 자율개선을 유도하고 그 이후엔 시정명령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앞서 양대노총이 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정부를 제소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는데도 정부가 단협 시정 조처를 강행하고 나선 데에는 ‘노동조합 비판 여론 조성’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컨대 기업이 우선채용 규정을 적용해 뽑은 규모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이 조항 탓에 청년고용 문제가 나빠졌다고 보기 어렵다. 유일교섭단체 규정은 그 자체가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강행규정 위반이라 복수노조를 설립하는 데 제약 요인이 되지 않는다. 있으나마나 한 조항을 빌미로 이른바 ‘기득권 지키는 노조’에 대한 공격 여론을 형성하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고용부는 이날 인사·경영권에 대한 노조의 동의 조항도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며 불합리한 규정으로 꼽았다. 하지만 해당 조항의 노조 동의 대상은 주로 직원 전환배치나 외주화, 정리해고·희망퇴직 등 핵심적인 노동 조건의 변동에 관한 사항이다. 고용부의 이런 행태는 취업규칙을 바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이른바 ‘사회통념상 합리성’ 6가지 요건을 갖추면 노동자 과반의 동의가 없어도 바뀐 취업규칙의 효력을 인정하겠다는 최근 행보와 일맥상통한다. 8월께에는 일반해고 요건과 관련한 가이드라인까지 내놓겠다는 게 고용부의 뜻이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완화하려는 정부 방침은 임금피크제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노동조건의 유연화 문제에까지 확장될 것”이라며 “단협 등 노조의 저항 수단을 제거해 노동시장 유연화 설계를 마무리하겠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위원장인 임상훈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어떤 룰(규칙)을 정하더라도 고용부가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개입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주도의 노동유연화로 노사 자치의 영역을 무너뜨릴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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