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서울중앙우체국 광고탑에 올라가 80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에스케이텔레콤·엘지유플러스 하청업체 노동자 장연의·강세웅씨는 4월30일 새벽 가슴을 쓸어내렸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서울중앙지법이 이날 오전 3시 넘어 기각한 덕분이다. 앞서 검찰은 두 노동자가 국가 소유인 광고탑에 올라 점거농성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공동주거침입에 해당하고 우체국 업무를 방해했다며 4월2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 제도는 피의자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해 수사기관의 수사나 사법부의 재판을 방해할 우려가 있을 때 이를 막으려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두 노동자가 80일간 광고탑을 점거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 덮거나 감출 증거란 게 애초 없다. 이들은 4월26일 오후 고공농성장에서 내려오자마자 녹색병원에 입원한 터라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고공농성 때 요구 사항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져 농성을 끝낸 마당에 평생 도피 생활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김도형 부장판사도 이런 점을 고려해 영장을 기각했다.
이번 영장 기각으로 장씨와 강씨가 몸담고 있는 희망연대노조는 지난해부터 소속 조합원 9명한테 구속영장이 청구돼 7명은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되고 2명은 발부 뒤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나 ‘구속영장 방어율 0’라는 놀랍고도 슬픈 기록을 갖게 됐다. 그럼에도 구속영장 청구를 남발하는 검찰의 행태는 ‘국가 형벌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고공농성 노동자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상습적이다. 검찰은 지난 3월 ‘정리해고 철회, 공장 복귀’ 등을 요구하며 공장 굴뚝에서 100일 남짓 고공농성을 벌이다 땅으로 내려온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정욱·이창근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2011년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검찰이 거듭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건 노동 세력에 겁을 주기 위함이라는 게 노동계의 정설이다.
여전히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이라 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는 일단 잡아가두고 보자는 나라의 정부가 입에 달고 사는 ‘사회적 대화’란 도대체 누구와의 대화인지 궁금하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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