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열린 집담회에 참석한 노동 분야 전문가들이 노사정위 합의 과정 및 결과를 평가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 분야의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장그래 눈으로 본 노사정위-다양한 견해 가진 노동전문가 8인 집담회
지난 12월 정부가 ‘장그래법’이라고 이름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통한 노동시장 구조 개편 논의가 시작됐다. 노사정위 결렬 이후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밀어붙이려는 정부와 이에 반발하는 노동계의 충돌이 예고된 가운데,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장그래’의 관점에서 노사정위 논의 과정을 평가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집담회를 열었다. 노사정위에 직접 참여했던 위원들과 양대노총, 비정규직 노조 활동가 및 연구자 등 다양한 견해를 지닌 노동 분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드문 일이다. 집담회는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청년실업·비정규직 문제 원인을
정규직 과보호로 지목하고
해고요건·임금피크제 쟁점 취업도 못하는 장그래에 뭔 소용
노사정위 결렬 차라리 잘된 일 이번같은 재계 요지부동 처음
기간제 4년 연장 정부안에 반대 청년한테 필요한 건 실업급여
정규직 양보하면 장그래 도움될까
기업 신규고용 유도할 길이 없어 장그래 노조설립 보장이 답
그다음 최저임금 인상
고용불안·차별해소가 절실 ■ 노사정 대화, 장그래에게 절실한가?
배규식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기반한 노동시장이 과거 경제패러다임에는 맞았지만 저성장 국면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밖에 아웃소싱(외주화) 확대, 경제의 서비스화, 고령화, 남성 외벌이 체제에서 맞벌이 체제로의 전환 등 근본적인 사회경제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전환기적 국면을 돌파할 해법이 필요하다는 데 노사정 모두 일정하게 공감은 하고 있다.
박영삼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10년 뒤인 2017년께 또다른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고 이에 대한 예방 또는 선제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 노동시장 조건이 크게 변했다. 2010년부터 1955~1965년생들이 은퇴 시기에 돌입했고 이들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고 있다. 청년세대도 과거와 달리 1000만~2000만원의 등록금 부채를 안고 노동시장에 진출한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시행 8년째지만 차별 시정이나 정규직 전환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오히려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골만 깊어져 고령자와 청년 취업에서 비정규직이 당연시되는 상황까지 왔다. 크게 보면 저성장에 불평등이 심화하는 현재 경제구조를 유지할 것이냐, 성장을 지속하면서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경제의 체질을 개혁할 것이냐는 갈림길에서 노사정 논의의 절실함이 있다.
주진우 단순히 비정규직이 힘들다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 사회가 지속 가능한 사회인가, 저성장 시대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노사정위 논의에 이런 위기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명확한 의제 설정이 있었나? 외국의 사회적 대화 사례를 보면 절실한 국가적 의제가 있는데, 이번에 우리 논의에는 그런 게 없었다. 정부는 기존에 노동계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혀온 의제들이 포함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이런 의제들이 결국 노사정위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됐기 때문에 결렬될 수밖에 없는 판이었다. 경제 양극화 심화를 해결하기 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의 전환 등 한국 사회에 절실한 국가적 과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면 노동계의 양보나 희생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론 노동계가 먼저 이런 국가적인 의제를 설정하고 국민적인 압박을 통해 정부와 사용자 쪽의 양보를 얻어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은 든다.
이창근 노사정위 논의가 애초부터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을 ‘정규직 과보호’로 지목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결렬 이후에도 이를 밀어붙이면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체협약에 개입하겠다는 정부의 행보는 애초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라고 하면 ‘정규직-비정규직’을 생각하는 프레임이 있다.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양보가 핵심이고, 정규직 위주인 양대 노총의 밥그릇 싸움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몰아간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신자유주의적인 노동 체제에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보장 문제도 1차적으로 사용자가 책임지거나 양보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이 스스로 노조를 만들어 ‘진짜 사장’인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기존의 프레임으로는 이러한 사용자 책임이 논의되기 어렵다.
■ 껍데기만 남은 장그래 살리기, 진정성이 없었다
조성주 정부나 노동계 모두 “장그래, 장그래” 하면서 청년 비정규직 문제를 내세우는데, 정작 노사정위에서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게 쟁점이 됐다. 취업도 못하는 장그래한테 취업규칙이 뭐가 중요하냐. 노동 3대 현안(통상임금 명확화, 노동시간 단축,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도 장그래 이슈가 아니다. 장그래한테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 절실했다. 노사정위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 전문가 그룹의 보고서를 보면 ‘열정페이’, 수습사원 부당해고 문제 등 괜찮은 의제들이 나와 있는데, 대책들은 ‘근로감독 강화’ 수준이다. 소셜코머스 업체 위메프의 수습사원 부당해고가 적법하다고 판단한 게 고용노동부였다. 열정페이가 논란이 되니까 명분 쌓기와 들러리로 장그래 문제를 내세운 게 아닌가.
실제 주요 논의는 정규직 의제로 가면서, 명분만 노사정 모두 장그래를 살리겠다고 하는 게 모순이다. 얼마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집회에서 ‘60대도 88만원 세대로 만들 거냐’고 쓴 손팻말을 봤다. 화가 나더라. 노동계가 20대 88만원 세대를 위해, 노량진에서 컵밥 먹으며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청년들을 위해 무얼 하고 있나.
이남신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 이름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이었는데, 실제 내용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은 버린 채 ‘노동시장 활력 제고’로만 갔다.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 그나마 소득주도성장 모델에 가장 가까운 당사자들을 공격하는 프레임으로 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인 기업의 책임에 대해 정책적·입법적인 제어나 처벌 방안은 전혀 논의되지 못했다. 정부가 애초 발표한 것과도 상충되는 자기모순적인 협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노사정위 결렬은 차라리 잘된 일이다.
유정엽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과 무관한, 정규직에 대한 일반해고 요건 완화,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편은 명분이고 재계의 오랜 숙원 과제를 풀어주겠다는 의도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실무진으로 참여하면서 이번처럼 경영계가 협상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건 처음 봤다. 경영계와 입장이 일치한 정부가 뒤에서 밀어주는데 먼저 나서서 양보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 오과장 밥그릇 챙기느라 장그래를 외면한 것 아닌가?
조성주 기간제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정부안에 반대하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2년 만에 계약이 끝나는 청년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실업급여 제도 개선이다. 실업급여 수급 기간과 액수를 늘리고 사각지대도 해소해야 적정 기간 재취업을 준비해서 정규직으로 진입할 수 있다. 양대 노총이 기간제 사용기간 4년을 반대하고 원론적인 사용사유 제한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고용보험료 인상을 통한 실업급여 대책을 받아냈어야 한다. 그게 정치적으로도 훨씬 이득이다. 이런 것들을 놓친 게, 실업급여는 정규직한테 해당하지 않는 문제여서 그런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원·하청 노사관계, 비정규직의 노조 설립 보장 등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주휴수당, 최저임금,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 개별 근로관계 문제가 어쩌면 더 큰 부분이다.
김종진 노동시간 단축은 청년 일자리 보장 확대로, 임금피크제는 정년 보장으로 노동계가 맞교환할 여지가 있었다고 본다. 정부와 경영계가 주장하는 해고·취업규칙 요건 완화에 맞서 알바 등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많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거나, 노사협의회 설치 의무 적용 기준을 현행 30인 이상 사업장에서 10인 이상으로 확대하는 등 보편적인 노동권 보호를 확대하는 것으로 대응하는 방안도 있다. 양대 노총이 노동법 사각지대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하면서 사회적 대화에 나선다면, 내부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사회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고 노조 조직률도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
주진우 협상 국면이 되면 노동계는 결국 임금 문제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크게는 노동시장 구조 개편, 비정규직 처우 개선,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노동계는 정규직 임금을 갖고 맞서야 하지 않나.
이창근 정부와 사용자는 노동계에 임금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 양대 노총이 임금을 희생하면 청년실업이 해결되나? 금융위기 시기에 노동계가 임금 동결을 선언한 적이 있었고,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를 낮춰줬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기업들의 자금 여력이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 현장 단위에서는 기업 사정이 어려우면 양보 교섭을 한다. 노조가 양보하면 회사가 채용을 늘린다거나 해고를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양대 노총이 설사 양보하더라도, 기업이 신규 고용을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경로가 없다. 중앙에서 요구 사항을 맞교환하려면 그런 조건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논의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맞교환하자는 이야기는 이데올로기적인 공격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
■ 장그래 살리기, 노동계는 답이 있나?
이남신 우선 양대 노총의 이견이 없는 최저임금 인상부터 시작하자.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라는 오명을 벗을 의제이기도 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높일 결정적 분수령이기도 하다. 양대 노총은 정규직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도 포괄하기 시작했다. 정규직 중심이라고 규정하는 게 꼭 맞지는 않는다. 변화된 내부 조직 구성에 맞는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비정규직 의제를 들러리로 만드는 오류는 범하면 안 된다.
또 하나,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을 하면서 얻은 결론은 당사자 노조의 조직화가 답이라는 거다. 최저임금, 노동권 보장 모두 노조로 조직된 당사자가 없으면 안 된다. 최저임금이 인상된다고 해도 노조가 없으면 사각지대가 넓어지고 입법 효과가 무력화된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비정규직 노조 설립을 보장하는 두 가지를 노사정 대타협 의제로 올려야 한다.
김종진 정부가 100만명으로 추산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감축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에 대한 탈법적이고 인권침해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경비·청소 노동자의 경우 기간제로 직접고용하되 70살까지 정년을 보장하면 된다. 또 공공기관과 대형 백화점 청소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 해소와 같은 문제는 노사정이 충분히 타협할 수 있다. 정규직 임금은 건드리기 어렵지만 콜센터나 청소 노동자 등 정규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10여개 저임금 비정규직종의 임금은 형평을 맞춰줘야 한다. 정규직 전환이 안 돼 회사를 옮긴 경우 이직한 사업장의 임금 지불 능력과 상관없이 해당 직종의 평균 임금을 보장하는 독일식·영국식 숙련급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박영삼 노동계에선 사용사유 제한을 통해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는 게 핵심적인 비정규직 대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가 늘 고수해왔던 기존 해법 이외에 다른 해법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물어보면 당장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는 게 제일 절실하고, 그다음으로 정규직과의 차별 문제를 꼽는다. 사무직이나 기술직의 경우, 비정규직으로 일한 경력을 다음 직장에서 실제 급여나 보상에 반영하는 게 당장 정규직과의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배규식 비정규직 대책과 관련해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얘기하는데, 현재로서는 무엇이 차별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 기업 단위를 넘어서는 임금과 근로조건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동일노동을 정의하고 비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초적인 작업이 선행돼야 공정한 노동시장을 논의할 수 있는 조건이 생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이중구조 개선의 한 축인데, 비슷한 일을 하는데 왜 차이가 나느냐는 문제 제기로 출발하면 임금·근로조건 표준화에 노사정이 합의할 수 있다.
정리 진명선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김민경 기자 torani@hani.co.kr
정규직 과보호로 지목하고
해고요건·임금피크제 쟁점 취업도 못하는 장그래에 뭔 소용
노사정위 결렬 차라리 잘된 일 이번같은 재계 요지부동 처음
기간제 4년 연장 정부안에 반대 청년한테 필요한 건 실업급여
정규직 양보하면 장그래 도움될까
기업 신규고용 유도할 길이 없어 장그래 노조설립 보장이 답
그다음 최저임금 인상
고용불안·차별해소가 절실 ■ 노사정 대화, 장그래에게 절실한가?
배규식
주진우
이창근
조성주
이남신
유정엽
김종진
박영삼
참석자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박영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기획위원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 정책실장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전 청년유니온 전략기획단장
주진우 전 서울시 정책특보 사회: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박영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기획위원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 정책실장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전 청년유니온 전략기획단장
주진우 전 서울시 정책특보 사회: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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