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만(왼쪽 다섯째)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영배(왼쪽 여섯째) 경총 회장 직무대행이 2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사정위 본위원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편 내용이 담긴 기본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합의문에는 노동계와 재계,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기본적인 원칙과 방향’에 대한 합의 사항이 담겨 있다. 왼쪽부터 최영기 노사정위 상임위원,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김영배 경총 회장 직무대행, 김대환 노사정위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김태기 단국대 교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노사정위 합의 파장과 전망
의제 대부분이 정부·재계쪽 주장
“노동계·재계가 제안하는식 아니라
정부가 방향 세우고 합의 보는 식”
‘유연성’ 표현 빼고 ‘노동이동성’
“구체 논의 과정서 해석 공방 우려”
의제 대부분이 정부·재계쪽 주장
“노동계·재계가 제안하는식 아니라
정부가 방향 세우고 합의 보는 식”
‘유연성’ 표현 빼고 ‘노동이동성’
“구체 논의 과정서 해석 공방 우려”
오래도록 개점휴업 상태이던 노사정위원회가 23일 오랜만에 굵직한 합의문을 내놨다. 이날 노사정 대표가 모여 발표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 합의문은 고성장 시기에 만들어진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를 저성장 시대에 걸맞게 바꿔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논의를 이끌고 노동계는 마지못해 끌려갈 수밖에 없는 힘의 역학 관계를 고려할 때, 노사정위가 노동계를 들러리로 만들 수 있다는 한편의 우려도 짙다.
이런 우려는 이번 합의의 정치적 맥락에서 비롯된다. 지난해 민주노총 강제 난입 사건에 항의하며 노사정위에서 탈퇴한 한국노총이 지난 8월 복귀한 뒤 정부는 정규직 정리해고 요건 완화에서 시작해 일반해고 요건 완화 검토, 정규직 과보호론 등을 거푸 제기하며 논의 주제를 한쪽 방향으로 몰아왔다. 정부가 애초 제시한 안에 들어 있던 ‘유연성’ 등의 표현이 노사정위 최종 합의문에선 빠졌으나 결국 임금체계 개선과 전환배치 등 정부가 추진하는 ‘유연성 확대’ 전략이 노사정위를 지렛대 삼아 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 이번 합의문에 들어간 의제는 대부분 정부와 재계 쪽이 주장한 내용이고 합의에 몸이 단 쪽도 정재계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22일 “노동시장 개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고 재촉했을 정도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노동계와 재계가 의제를 제안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고 방향을 세우고 노사 합의의 모양새를 갖추는 방식으로 진행된 탓에 노사정위가 들러리의 의미밖에 갖지 못하게 됐다”고 짚었다. 민주노총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노사정 대표자 회의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제시한 가이드라인 안에 갇혀 있을 뿐이며, 이미 정부가 정해놓은 길을 정치적으로 승인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격하게 비판했다.
정부의 밀어붙이기는 이날 합의를 바탕으로 내년 3월까지 내놓을 구체안 마련 과정에서 표면화될 전망이다. 이를테면 합의 문구에 담긴 ‘노동이동성’과 ‘노동시장 활성화’ 등을 정부와 재계는 ‘노동유연성’으로 해석하려 할 수 있다. 재계는 업무 성과가 낮은 노동자를 지금보다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고쳐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으나 노동계는 강력히 반대한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내년 상반기에 내놓기로 한 ‘가이드라인’ 두 개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일반해고의 요건·절차를 명확히 정하는 것과 회사의 취업규칙 변경 때 그 내용이 노동자한테 유불리한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이다.
2016년부터 ‘60살 정년’이 의무화되는 데 따른 임금 등 비용 상승을 이유로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하자는 재계 주장이나 현행 호봉제 중심의 임금 체계를 성과연동형 구조로 바꾸자는 정부의 견해도 노동계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반면 이번 합의를 통해 노동계가 얻을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합의문은 말의 성찬에 가까워 주도권을 쥔 정부가 구체 논의를 끌고 가는 과정에서 제 논에 물 대기 식 해석으로 공방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장 정부가 29일에 발표할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눈길이 쏠린다. 정부는 발표에 앞서 노사정위에 이를 보고하고 합의를 거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기간제 노동자 가운데 일부 직종이나 나이대의 고용 기간을 2년에서 4~5년으로 늘리는 등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할 내용들이 많아 원만한 합의는 불가능할 전망이다. 지금은 32개로 제한된 파견업종을 55살 이상 노동자와 전문직종 등한테는 전면 허용하는 내용 등도 포함될 전망이어서 한국노총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기간제 노동자가 기간 종료에 앞서 부당하게 해고되면 남은 임금을 반드시 주도록 하거나 석달만 일해도 퇴직금을 주도록 하는 방안, 두세달짜리 기간제 계약을 남발하는 쪼개기 계약을 금지하는 내용 등도 포함돼 있으나 이는 ‘딜(주고받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왼쪽 여섯째)과 산별노조 대표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사정위원회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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