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안정적 장기 실업급여
② 비정규직 차별 금지
③ 신뢰바탕 노사정 협약
② 비정규직 차별 금지
③ 신뢰바탕 노사정 협약
정부가 최근 정규직 노동자를 ‘개혁 대상’으로 상정하고 연일 공세다. 정규직이 누리는 몫을 덜어내야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핵심 논리다. 정규직 노동자 해고를 지금보다 손쉽게 하자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유럽 여러 나라가 고용 유연화로 고용률 높이기에 성공했다는 게 근거로 제시된다. 최경환 부총리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독일과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의 사례를 들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풀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또다른 진실엔 입을 닫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 국가들이 1980~90년대 노동시장을 개혁할 때 ‘유연성’과 함께 ‘안정성’을 대폭 높인 부분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해고=살인’이라 받아들이는 핵심 이유가 취약한 사회안전망 때문인데, 이와 관련한 정부의 책무는 방기하고 정규직 노동자한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규직 과보호론’의 근거가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 노동 분야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유럽 국가의 ‘유연 안정성’ 전략은 우선 사회보험과 교육의 강화 같은 사회적 안정성을 높이는 바탕에서 출발했다. 특히 해고 요건 완화로 노동시장에서 이동을 촉진해 고용률을 높이는 대신 해고자에게는 충분한 실업수당을 제공해 충격을 줄였다. 덴마크는 해고자한테 실직 이전 임금의 최대 90%를 4년간 주다 2년 전 2년으로 줄였다. 네덜란드도 최대 90%를 3년 동안 주고, 스웨덴은 실직 전 임금의 100%를 1년간 지급한다.
반면, 한국은 실직 때 구직급여의 상한액이 하루 4만원이다. 이마저도 재직 기간에 따라 90~240일이 최대치다. 한달에 100만원 안팎을 길어야 여덟달 받을 뿐이다. 유럽에선 실업수당 수급 기간이 끝나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각종 공적부조의 도움을 받을 길이 넓으나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근로능력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선정되기도 어렵다. 박태주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지금 복지 수준에서 고용유연화를 외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우리나라에선 고용이 삶이고 복지이고 인권인데, 정부가 너무 쉽게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럽 국가의 ‘유연 안정성’ 전략에서 안정성 개념을 이루는 둘째 축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이다. 정규직과 같은 가치의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을 동등하게 대우해 기간제 등 비정규직에 대한 거부감을 줄였다. 1982년 임금 동결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에 노사정이 합의한 바세나르협약으로 고용 창출에 성공한 네덜란드는 1996년 ‘근로시간에 따른 차별 금지법’을 제정했다. 기간제 노동자라도 노동시간에 따른 차이를 빼고는 임금·성과급·휴가 등 각종 복리후생에서 차별을 금지했다. 김성희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법은 최소한을 보장한다. 거기에 단체협약 등에 따른 추가 보호까지 고려하면 노동시간이 정규직의 절반인 노동자라도 임금 등 노동조건은 절반 이상을 보장받는다. 이는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동시에 기업의 비정규직 채용을 억제하는 양방향의 효과를 높이는 장치다”라고 말했다.
“유연성 강화 얘기하려면 고용보험 강화 먼저 얘기해야”
한국은 이 점에서도 유럽과 크게 대비된다. 불법파견 논란이 이는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왼쪽 바퀴는 정규직, 오른쪽 바퀴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끼우는 식이었으나 하청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의 60%였다. 10년 넘는 논란 속에 지금까지 1180명 이상의 노동자가 법원 판결로 현대차 정규직임을 인정받았으나 아직까지 차별받은 임금을 돌려받은 이는 아무도 없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모두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나 정부의 무관심 속에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라는 게 노동계의 평가다. 정부가 이달 중순까지 내놓겠다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마냥 믿기 어려운 이유다.
유연성의 문제를 눅일 안정성의 셋째 축은 ‘협력적 노사관계, 사회적 신뢰를 통한 사회적 타협’이다. 한국 상황에선 매우 어려운 일이다. 노사정이 노동 현안에 합의하려면 각자의 대표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 1798만여명의 4.6%를 대표하는 한국노총과 재계를 온전히 대표한다고 보기 힘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내놓는 합의의 구속력이 크긴 힘들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더구나 단체협약 적용률도 10%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라, 80%대를 넘나드는 스웨덴·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 등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윤진호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고용정책상 문제가 발견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유연화 얘기가 뜬금없이 나오고 있다. 유연성 강화를 얘기하려면 고용보험 강화 등 안정성을 먼저 얘기해야 한다”고 짚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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