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불안과 저임금, 인격 모독 등에 시달리다 지난달 7일 분신한 뒤 한달 만에 숨진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이만수씨를 추모하는 결의대회가 9일 낮 ‘경비노동자 이만수 열사 장례투쟁위원회’ 주최로 이 아파트 앞에서 열렸다. 결의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합원들이 이씨가 분신한 105동 앞에서 그의 영정을 들고 ‘입주자대표회의 즉각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기구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경비노동자 300여명 수의시위
청년유니온 “일회용 취급기업 고발”
민주노총 2만5천명 노동자대회
청년유니온 “일회용 취급기업 고발”
민주노총 2만5천명 노동자대회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정문 건너편 인도. 은행과 성형외과 등이 몰려 있는 상가 건물 주변에 삼베 수의를 입은 이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주저앉았다. 손에는 분신 한 달 만인 7일 숨진 이 아파트 경비노동자 이만수(53)씨의 얼굴사진이 들렸다. 300여명의 ‘상주’들은 “경비노동자도 인간이다”라고 외쳤다.
1970년 11월13일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스스로 몸을 사른 뒤 44년이 지났지만,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숨진 이씨의 동료들은 분신 원인으로 한 입주민의 모욕적 언행을 지목해 왔다. 집회에 참석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예쁜 은행잎이 떨어지면 경비원들은 ‘낙엽을 치우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이 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숨진 이씨의 아내는 집회 참석 대신 녹음을 통해 “지금이라도 주민들이 사과해주기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9년째 경비일을 하는 이아무개(68)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근 경비노조를 결성했다. 한 평 남짓한 방에서 웅크린 채 하루를 참아내는 경비원의 생활을 개선해 달라”고 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같은 처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 남의 일 같지 않다. 먹던 음식을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욕설이나 성희롱을 해도 해고당할까봐 가족들을 생각하며 최대한 버틴다”고 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아파트 단지 안을 돌며 “노동인권 보장하라”고 외친 뒤 관리사무소 앞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조문을 했다.
일부 아파트 입주민들은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한 입주민은 “민주노총은 빨갱이다. 이곳은 자본주의니 발을 들이지 말라”고 했다. 다른 입주민은 “밥 먹고 할 일이 없어 집회를 하냐. 경비를 없애야겠다”고 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관리업체 변경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 입주민은 집회에 참석해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공식 사과도 안 했다고 들었다.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상식적인 태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청년유니온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청년 노동자를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리는 ‘블랙기업’들을 고발하겠다”고 했다. 한지혜 경기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계약기간이 1개월 남았는데 다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항상 불안하다. 잔업이 당연시되고 휴식 시간이나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청년들도 많다”고 했다. 기자회견에는 일본 청년노동단체 ‘포세’(POSSE) 회원들도 참여했다. 포세는 일본 내 블랙기업들을 고발하고 해마다 ‘블랙기업 시상식’을 열고 있다. 포세 활동가인 모로토미 다이지로는 “불안정 노동의 원인은 노동자 개인이 아닌 기업에 있다. 블랙기업을 없애는 일은 국경을 넘는 보편적 과제”라고 했다. 청년유니온은 블랙기업 제보 사이트(blackcorp.kr) 운영에 들어갔다.
민주노총은 2만5000여명(경찰 추산 1만7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태일 44주기 전국노동자대회’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개최했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는 알바노조가 ‘알바·비정규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최우리 박기용 기자 ecowoori@hani.co.kr
‘44주년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2014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9일 오후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본대회가 열리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까지 행진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