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공장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구두 제작 기술자인 이종대(57)씨는 1989년 5월부터 유명 구두제조업체인 ㅌ사에서 일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공장에 매일 출퇴근하며 월급을 받았지만 이씨는 명목상 ㅌ사의 노동자가 아니라 구두를 납품하는 개인사업자였다. 도급계약서는 따로 쓰지 않았다. 급여도 정해진 게 아니라 만든 구두 갯수에 따라 돈을 받는 ‘개수급제’다. 통상 한 켤레에 7000원∼1만원씩을 받았다.
실제론 노동자처럼 일했다. 오전 6시~오후 11시 사이에 아무 때나 출근해 정해진 갯수의 구두를 만들면 됐지만, 회사 사장은 오전 7시30분 넘어 출근할라치면 “바쁜데 왜 늦게 나오느냐”고 따졌다. 휴가 갈 때도 회사 관리자한테 반드시 보고해야 했고, 불량품이 나오면 회사 관리자가 수선을 지시했다. 그러던 회사는 2010년 2월부터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 200여명한테 개인사업자로 등록하라고 요구했다. 사업자등록은 회사가 일괄적으로 했다. 회사에 유리하도록 형식상 서류를 꾸몄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이씨는 지난 7월 ㅌ사를 그만두며 퇴직금을 달라고 했다. 사장은 “주겠다”더니 결국 안 줬다. 근로기준법은 퇴직 뒤 14일 안에 퇴직금을 주도록 규정한다. 구두 제작 기술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에 따라 퇴직금을 비롯한 이들 노동자의 노동권을 부정하는 일은 제화업계에 만연한 관행이다.
이씨처럼 구두업체를 그만두며 퇴직금을 받지 못해 성난 구두장이 19명이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ㅌ사를 비롯한 4개 구두업체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을 맡은 최성호 변호사는 “형식은 도급이지만 이들 노동자가 회사와 사용종속 관계에 있었음이 명백하다”며 “고용노동부가 이들처럼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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