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120다산콜센터에서 하루 8시간씩 전화상담 업무를 하는 심명숙(38)씨는 툭하면 폭언을 듣거나 성희롱을 당한다. 가끔 녹음된 고객과의 대화를 다시 들어야 할 때도 있는데 최근 스스로에게 ‘섬뜩’함을 느꼈다. 고객의 폭언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 웃으며 대답하는 자신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심씨는 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통화를 할 땐 굉장히 짜증나고 기분이 나쁜데 나중에 녹취를 들으면 내 목소리에선 그런 게 안 느껴져요. 감정을 숨기고 대화하는 데 익숙해져서 그런 거죠. 참 끔찍해요”라고 말했다.
심씨처럼 콜센터나 대형 마트, 백화점, 민원실 등에서 일하는 수많은 서비스 직종 노동자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업무의 특성상 이들 노동자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할 수밖에 없다. 미소 뒤엔 눈물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아직 후진국인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기란 쉽지 않다. 심씨가 일하는 다산콜센터 노조가 지난 2일 용역업체와의 교섭에서 감정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1년에 하루짜리 감정노동 휴가(5년 근속에 1일 추가)를 주기로 합의한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노조는 분기마다 하루씩 1년에 4일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록 만족스럽진 못하지만 감정노동에 대한 보상을 실시하는 기업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국내에선 2005년 프랑스계 기업 로레알코리아가 처음이었다. 전국 70여개 백화점에서 의류·화장품을 파는 노동자 1000여명에게 회사는 매달 3만원의 감정노동 수당을 주기로 했다. 지금은 수당이 10만원으로 오르고 1년에 하루의 감정노동 휴가도 준다.
이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에 가입한 사업장 중심으로 감정노동 수당·휴가 제도가 속속 도입됐다. 매달 3만~10만원가량의 수당을 주거나 부산노보텔처럼 연차휴가와는 별도로 1년에 감정노동 휴가로 사흘을 주는 곳도 있다.
기업들이 감정노동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하는 추세가 확산되는 건 바람직하지만, 이에 앞서 노동자들이 감정을 덜 소모할 수 있도록 회사가 좀더 적극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민정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교육선전국장은 “회사 차원에서 고객의 폭언이나 성희롱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예방조처를 하고 이를 어기면 강하게 제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씨는 “악성 민원인 전화는 팀장 등 중간관리자들이 개입해서 마무리해주고 그런 전화를 끊고 나면 노동자가 감정을 추스르도록 잠시 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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