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낮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이 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불합리한 노동·근무 조건 개선 등을 용역업체에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심층 리포트] 브레이크 없는 나쁜 일자리, 간접고용
③ 진짜 사장 나와라
2011년 9만여명→2013년 11만여명
‘정규직 전환 우수사례’ 서울대병원
바뀐 청소용역업체 새 단협서
‘쟁위 말라’ 등 황당한 조건 제시
병원장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
정부 고용개선 대책 ‘말 뿐’
③ 진짜 사장 나와라
2011년 9만여명→2013년 11만여명
‘정규직 전환 우수사례’ 서울대병원
바뀐 청소용역업체 새 단협서
‘쟁위 말라’ 등 황당한 조건 제시
병원장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
정부 고용개선 대책 ‘말 뿐’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 개선 대책을 시행하는 2년 동안,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되레 12.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에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가 ‘나쁜 사용자’ 구실을 선도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2일 <한겨레>가 고용노동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 개선 대책 추진’ 자료(2012년 1월, 2014년 4월 발표)를 분석해보니, 2011년 9만9643명이던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가 지난해 11만1940명으로 2년새 1만2297명(12.3%)이나 늘었다. 이들은 주로 청소와 경비 같은 업무를 맡는 노동자들로, 용역·파견 등의 형태로 일하고 있다. 이는 같은 기간 공무원 등 정규직 노동자가 4.3%(5만8646명) 늘고,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0.5%(1152명) 줄어든 것과 크게 대비된다. 공공부문은 중앙 행정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교육기관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을 합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도 2년새 1만1145명이 늘었다. 이는 애초 직접고용 비정규직인 기간제 노동자만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으로 삼고 간접고용 등 나머지 비정규직 노동자는 ‘수요 관리’조차 하지 않는 정부 대책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정부는 이명박 정권 후반이던 2011년 11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 개선 대책’을 내놓은 뒤 매년 이행 상황을 점검해 발표했다. 하지만 매번 발표한 보도자료의 제목은 ‘2013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3만1000여명 무기계약직 전환’(2014년 4월14일)이라거나 ‘201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5만여명 무기계약직 전환’(2014년 8월27일)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일부 실적 부풀리기에 다름 없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국가는 제도의 설계자이자 모범 사용자로서 노동 문제와 관련한 감시·지도·관리자 구실이 있음에도 되레 나쁜 사용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가 모범 사용자로서 간접고용을 줄여나가는 등 솔선수범해야 한다. 사회 취약계층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비정규직보호법’의 내용을 대폭 강화하고 모든 산업에서 무차별적인 방식으로 간접고용이 활용되지 못하도록 국가 차원의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간접고용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비정규직의 본질적인 문제가 양보다 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8월 정부 발표 때 302개 공공기관 가운데 전환 실적 128%를 달성했다고 소개된 서울대병원이다. 이 병원은 애초 전체 청소용역 업무를 1개 업체에 맡기다 지난 4월 업체 변경 과정에서 본관과 소아병동 업체를 분리해 용역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그 직후 일어났다. 소아병동 청소를 맡은 업체 ㅌ사는 기존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새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한 노조한테 ㅌ사가 제시한 내용은 황당한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노동자의 동의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휴일근로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자는 등 노동법을 위반한 내용들도 일부 포함됐다. 심지어 “(조합원이) 타인을 위해 일체의 보증행위를 하지 못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까지 담겼다.
참다못한 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가 8월25일부터 닷새 동안 파업을 하자 ㅌ사는 노동자들에게 파업 복귀 서약서를 강요하는가 하면 ‘집회시위 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 더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노조는 9월30일 오병희 서울대병원장한테 “어린이병원 청소노동자들의 노동 3권 보장은커녕, 기존에 최소한으로 적용받고 있는 근로조건조차 개악하고 청소노동자들을 쥐어짜는 ㅌ사와 지금 당장 도급계약을 해지하라.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더는 눈물 흘리며 불안하게 일하지 않도록 원청인 서울대병원이 적극 나서달라”는 요구사항을 담아 공문을 보냈다.
다음날 오 병원장이 보내온 답변은 이랬다. “그 문제는 서울대병원과는 상관없으니 용역업체와 자율적으로 해결하라. 병원이 (업체 소속인) 노조와 면담할 이유가 없다.” 민간 간접고용 사업장에서 드러난 문제가 공공부문에서도 똑같이 재현된 것이다.
하지만 ㅌ사 쪽은 “노조가 조합원이 40명뿐인데도 전임자 한 명을 달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해서 예전 단협을 인정하지 않은 것일 뿐이고, 회사 쪽도 노조의 폭언을 반복적으로 듣는 등 피해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2012년 1월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 개선 추진지침’에서 원청인 공공기관이 용역업체한테 근로기준법 등을 지키겠다는 서약서를 반드시 받는 한편 “발주기관의 관리·감독 등을 강화함으로써 용역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실행 의지가 담기지 않은 헛구호였던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12년 12월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와 “비정규직 문제는 우선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하면 민간부문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에선 정부마저 불량 사용자가 돼 민간의 간접고용 문제 해법을 더 꼬이게 하고 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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