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유플러스 인터넷·아이피티브이 설치기사들이 지난 25일 저녁 서울 여의도 엘지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고용부, 케이블TV·인터넷 설치기사 332명 노동자 인정
대기업→협력사→팀장→개통기사
재재하도급 ‘3중 간접고용’ 만연
고용부 “변칙고용, 무질서·왜곡”
2000년대 중반부터 잇단 문제제기
고용부 계속 방치하다 뒤늦게 나서
그마저도 25곳만 조사…68% 인정
정수기 수리기사 등 타 업종은
당사자 소송 없인 해결에 한계
대기업→협력사→팀장→개통기사
재재하도급 ‘3중 간접고용’ 만연
고용부 “변칙고용, 무질서·왜곡”
2000년대 중반부터 잇단 문제제기
고용부 계속 방치하다 뒤늦게 나서
그마저도 25곳만 조사…68% 인정
정수기 수리기사 등 타 업종은
당사자 소송 없인 해결에 한계
엘지유플러스와 에스케이브로드밴드의 협력업체에서 케이블·인터넷 설치 업무를 하는 이의 67.8%(489명 중 332명)가 사실상 해당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라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개인도급’ 관행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업체들이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을 토대로 과당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개통기사들만 ‘위장도급’에 갇혀 노동자 지위마저 잃고 자영업자로 내몰렸다.
이들 협력업체의 업무는 각 가정집이나 사무실 등에 엘지유플러스와 에스케이브로드밴드가 제공하는 케이블티브이와 집전화, 인터넷 등을 개통하고 고장 때 수리해주는 일이다. 모두 핵심적인 서비스 업무이다. 그런데도 이들 대기업은 협력업체에 업무를 위탁했다. 그동안 ‘간접고용’ 남용이라는 비판이 거셌던 이유다.
대기업에서 업무를 도급받은 협력업체들은 개통 뒤 수리 업무는 대부분 직접 고용한 노동자한테 맡겼다. 하지만 최초 고객의 개통 요구를 받고 달려가 케이블선을 가정이나 사무실로 끌어와 컴퓨터와 텔레비전 등에 연결하는 ‘개통기사’들은 대부분 개인도급 형식의 계약을 맺었다. 재하도급을 준 셈이다. 그러면서 당연히 줘야 할 휴일근로수당이나 연차휴가수당, 퇴직금 등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급여 체계도 기본급을 책정하지 않고, 개통기사들이 영업을 뛰어 신규 고객을 데리고 올 때마다 일정액을 지급하는 ‘건당 수수료 지급’ 방식이다.
노조 쪽이 지난해부터 문제점을 제기해온 ‘삼중 간접고용’ 등 좀더 복잡하고 교묘한 방식도 이번 근로감독에서 확인됐다. 어떤 곳은 협력업체와 개통기사 사이에 팀장이라는 이름의 중간 ‘개인도급업자’가 끼어 있다. 대기업→협력업체→팀장→개통기사로 이어지는 ‘재재하도급’ 형태의 ‘삼중 간접고용’ 단계까지 확대된 것이다. 아예 아무런 계약을 맺지 않고 일을 하는 경우도 숱했다. 권혁태 고용부 근로개선정책관은 29일 브리핑에서 “근로감독을 해보니 설치기사 고용 관행이 지나치게 무질서하고 왜곡됐다.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8월20일 에스케이브로드밴드·엘지유플러스 개통기사와 유사한 조건에서 일하다 퇴직한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대우일렉서비스와 개인도급 계약을 맺고 가전제품 설치·수리업무를 하다 퇴직한 박아무개씨 등 19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박씨 등은 실질적으로 회사로부터 업무의 내용과 수행 과정 등에 관해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의 지위에 있었다”며 대우일렉서비스에 이들 노동자한테 밀린 퇴직금과 각종 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과 고용부의 판단은 비데·정수기·보일러·사무기기 등 각종 전자제품이나 통신분야 개통·수리업무 등에 만연한 개인도급 가운데 상당수가 ‘위장도급’일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이들 개통·수리기사가 관련 업체의 노동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고용부의 이번 판단을 두고 노동계에선 ‘매우 뒤늦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 현장에서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불법적인 개인도급 등 이중·삼중의 간접고용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하지만 고용부는 “당사자끼리 해결하라”거나 “인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방치해왔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과학기술 정보통신 쪽 산업은 지금껏 내부 사무관리·기술개발 등 핵심 업무만 직접 고용하고 나머지는 개인도급 등 외주화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해왔다”며 “고용부가 이번처럼 너무 늦게, 조사 대상도 되도록 줄여 근로감독에 나선 건 책임 방기이자 국정조사감”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근로감독 자체의 한계도 적지 않다. 이번 조사 대상이 에스케이브로드밴드와 엘지유플러스 협력업체 156곳 가운데 25곳(개통기사는 2350명 가운데 489명)에 그친 탓이다. 이번에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나머지 서비스센터 131곳의 개통기사 1860여명 가운데 70%가량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은 상당하다. 그런데도 고용부는 추가 근로감독을 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권혁태 정책관은 “(인력 부족 때문에) 나머지 센터의 경우 자체 시정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 서비스 직종의 위장도급 문제도 당사자가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등을 제기하지 않는 한 해소할 도리가 없다.
윤애림 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업무 도급에서) 아예 한걸음 더 나아가 노동자를 개인 자영업자화하는 등 고도로 지능화하는데 노동부의 법 집행이나 법원의 판결이 사후적이고 개별 증상에 대한 처방에 그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법률을 만들어 해결해야겠지만 고용부가 당장 직접적으로 밝혀진 사례에 대해서만이라도 엄정한 법 집행을 하면 사용자에게 충분한 경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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