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포트] 브레이크 없는 나쁜 일자리, 간접고용
① 전염병처럼 번진 외주화
외환위기 뒤 파견법 도입
건설·조선·철강 뿐 아니라
금융기관·유통업체 등 확대
2007년 비정규직법 뒤 더 확산
기업들 노동법 규제 피하려
노동자를 사업자로 바꿔 계약
현대차·기아차 판결서 보듯
하청은 필연적으로 ‘불법’ 소지
① 전염병처럼 번진 외주화
외환위기 뒤 파견법 도입
건설·조선·철강 뿐 아니라
금융기관·유통업체 등 확대
2007년 비정규직법 뒤 더 확산
기업들 노동법 규제 피하려
노동자를 사업자로 바꿔 계약
현대차·기아차 판결서 보듯
하청은 필연적으로 ‘불법’ 소지
최근 현대·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1647명이 이들 회사에 직접고용된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와 간접고용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간접고용은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에서 새롭게 나타난 고용형태가 아니다. 건설·조선·철강 등의 업종에선 1960~70년대부터 하도급업체 노동자가 원청의 사업장에 와서 일하는 형태의 사내하청을 써왔다. 청소와 경비 등의 업무도 용역 등의 형태로 외주화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자동차 직접생산공정에서 사내하청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반부터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는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폭증하는 계기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로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 제도가 도입되고 고용주가 노동자를 다른 사업장에 보내 다른 사용자 밑에서 일을 시킬 수 있는 파견법이 제정돼,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이 비바람 몰아치는 망망대해의 쪽배처럼 위태로워졌다.
당시 대규모 명예퇴직 과정에서 노동자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기업들은 정규직 대신 1~2년짜리 계약직 노동자를 쓰거나 아예 업무를 협력업체에 도급화했다. 금융·병원·호텔·유통업체 등의 주차관리·경비·판촉·시설관리·계산대 업무 따위가 전염병이 번지듯 빠르게 외주화됐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근대적인 관행인데도 이미 확산돼 있던 사내하도급이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에서 표준모델로 자리잡았다”며 “사내하도급을 청소·경비 등의 단순업무뿐만 아니라 제조업과 공공부문에서 광범하게 활용하고 상시적인 업무에, 더구나 정규직 직무와 혼재해 활용하는 외국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고 짚었다.
특히, 최근 현대차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선고에서 확인되듯 제조업 사업장의 사내하청은 10년 넘게 ‘불법파견’ 논란을 빚어온 간접고용 문제의 핵심이다. 2001년 에어컨 제조업체인 캐리어에서 시작해 현대차·금호타이어·현대중공업·기륭전자 등 제조업체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원청한테 사용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투쟁을 벌여왔다. 자신을 고용한 고용주의 사업장이 아니라 원청의 사업장에 가서 일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지휘·감독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파견법을 통해 이를 합법화한다. 그런데 사내하도급은 근로기준법이 요구하는 법률적 근거도 없이 사용-노동의 관계를 발생시켜 첨예한 사회갈등의 불쏘시개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런 모순을 해결하려는 적극적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는 참여정부 초기이던 2003~2004년 ‘외환위기 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는데, 정작 국제통화기금이 남긴 파견법 등 노동 문제는 정리하지 못했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당시 대기업 부채 비율이 100%대로 떨어지고 현금보유고가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는 등 경제위기가 극복되고 자본축적이 되는 시기였다. 비정규직 문제를 그때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때를 놓쳤다”고 짚었다.
간접고용이 좀더 직접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2007년 7월 이른바 비정규직법 시행이다. ‘기간제 근로자 및 시간제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을 새로 만들고 파견법을 고쳐 기간제 노동자, 파견 노동자의 사용 기한을 2년으로 묶었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를 무제한으로 쓰는 기업의 관행에 브레이크를 거는 게 목적이었다. 정부 공식 통계가 없어 간접고용 규모를 특정하기가 어렵지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파견과 용역 노동자의 숫자가 2001년 44만9000여명에서 2007년 76만7000명으로 급증한 것으로 파악한다. 상당수 사내하청 노동자는 이 숫자에서조차 빠졌다.
법의 취지는 정규직 고용을 늘리라는 것이었으나, 기업들은 노동법의 규제를 피해 사내하도급이라는 질이 더 나쁜 ‘회피처’로 달아났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기업이 비정규직법 규제마저 피하려고 파견이나 도급도 귀찮다며 노동자를 개인 자영업자로 돌렸다. 보일러 설치기사 등도 예전엔 기업에 직접고용된 임시 일용직에서 (원청과 개인도급 계약을 맺는) 개인 사업자라는 위장된 특수고용의 형태로 바뀌었다”고 짚었다.
제동장치 없이 증가·확산돼온 한국의 간접고용 노동자는 이미 200만명을 넘어섰다는 게 노동계의 대체적인 추산이다. 제조업 중심이던 간접고용의 파열음이 서비스 직종으로 번졌다.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씨앤앰·티브로드 등 대기업 전자·케이블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잇달아 노조를 결성한 데 이어 고용 안정성 확보, 저임금 개선,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등을 두고 파업과 농성을 반복하는 지경이 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부터 두 달간 엘지유플러스와 에스케이브로드밴드 협력업체를 근로감독해 이들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조사한 결과를 29일 발표한다.
조돈문 교수는 “2006년 법 개정 때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했어야 했다. 기간을 제한하니 기업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간접고용으로 전환했다. 이제라도 1년 이상 쓰는 업무는 상시 업무로 보고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며, 직접고용 비정규직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등 훨씬 강한 규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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