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환(가운데)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등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심 판결 의미
자동차 철판 작업부터
완성차 선적 업무까지
섞여 일하지 않아도 ‘정규직’
자동차뿐 아니라 제조업 공장선
어떤 형태 사내하청 써도
불법파견 해당 가능성
자동차 철판 작업부터
완성차 선적 업무까지
섞여 일하지 않아도 ‘정규직’
자동차뿐 아니라 제조업 공장선
어떤 형태 사내하청 써도
불법파견 해당 가능성
서울중앙지법이 18일 내린 판결의 핵심은 ‘현대자동차의 모든 사내하청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자동차업체들이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 넘게 도급의 외피를 쓰고 사내하청 노동자를 써왔으나 이들이 실제로는 정규직 노동자와 다름없다는 얘기다.
이날 판결에서 가장 의미 깊게 볼 부분은 현대차의 자동차 제작 공정에서는 합법적인 도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 사건 판결에서 “원고들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의장 공정에 종사하는 자들”이라거나 “컨베이어벨트 좌우에 현대차의 정규직 근로자들과 혼재해 배치된” 사실 등을 들어 최씨가 현대차의 정규직이라고 선고했다.
현대차 쪽은 그 뒤에도 컨베이어벨트에서 섞여 일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물론 나머지 공정도 불법파견의 요소가 없다고 주장해왔으나, 이날 법원은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되레 차체·도장·프레스 등 주 컨베이어벨트는 물론이고, 생산라인에 부품을 전달하는 생산관리, 별도의 공간에서 엔진·변속기 등을 반조립하는 업무, 완성된 차를 배에 싣는 수출선적 업무 등 자동차 철판 작업부터 소비자한테 차를 건네기 직전까지의 모든 공정에서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봤다.
노동자 쪽 소송을 대리한 김태욱 변호사는 “현대차는 공정별, 시기별로 (불법파견 인정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그것은 중요치 않다고 판단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혼재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자동차 생산공정 전체에서 불법파견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짚었다.
재판부가 이날 현대차와 협력업체 사이에 현대글로비스 등 제3의 업체가 개입된 때 현대차와 협력업체 사이에 “묵시적 근로자 파견계약 관계가 성립한다”는 새 이론을 적용한 대목도 눈에 띈다. 중간에 낀 제3의 업체와 협력업체 사이에 맺은 도급계약은 명목일 뿐 실제로는 협력업체가 현대차에 노동자를 파견 보내는 구실을 했다는 뜻이다. 그동안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이미 해당 업체에 고용된 것으로 봄)를 인정하는 판결은 여러 차례 나왔으나 법원이 ‘묵시적 근로자 파견계약 관계’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날 법원의 판결 취지를 넓혀 보면, 자동차 생산 공정뿐만 아니라 원청과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련의 흐름 속에서 함께 일하는 제조업 공장에서의 노동은 불법파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은 32개 업종에서만 파견노동자를 쓸 수 있도록 하면서도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은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윤애림 방송대 교수(법학)는 “법원이 원청의 사업(장) 안에서 원청과 사내하청의 업무가 연관성이 있다면 적법한 도급일 수 없다고 결론을 냈다. 제조업은 물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서비스업까지 산업 전반에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날 소송을 낸 전원이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은 사실을 환영하면서도 ‘만시지탄’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2010년 11월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에 선고가 난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부가 이미 2004년 현대차를 근로감독한 뒤 9300여개 생산공정이 모두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검찰의 ‘몽땅 무혐의’ 처분 때문에 10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비록 1심이긴 하나 현대차의 모든 공정이 불법파견이라는 이날 법원의 판단으로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경영진에 대한 처벌 여론이 높아질 수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불법파견에 따른 경영진 처벌을 촉구해왔으나 검찰은 매번 “범죄의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파견법은 법을 위반해 파견노동자를 보내거나 이를 받아 쓴 사업자를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지난해에는 법학 교수와 변호사들이 검찰에 정 회장 등의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한두명도 아니고 900여명이 불법파견 상태임이 확인됐다. 민사재판에서 상당한 증거를 토대로 고용관계를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공정의 불법파견이 입증됐으니 검찰은 강제수사에 들어가 그에 따른 기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지난달 현대차와 아산사내하청지회, 전주사내하청지회의 합의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현대차 신규채용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관심거리다. 현대차는 이날 “앞으로도 대규모 채용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2015년까지 4000명의 하도급 직원을 직영 기술직으로 채용해 사내하도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 판결에 희망을 얻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소송이 잇따를 수도 있다.
전종휘 김선식 박승헌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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