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사내하청 합의 파장
사쪽 불법파견 책임 추궁 못하고
차별임금 등 소급분도 못받게 돼
“현대차에 면죄부 주는 내용 가득”
3개지회중 울산쪽은 합의서 빠져
사쪽 불법파견 책임 추궁 못하고
차별임금 등 소급분도 못받게 돼
“현대차에 면죄부 주는 내용 가득”
3개지회중 울산쪽은 합의서 빠져
현대자동차 사쪽과 사내하청 노동자인 아산·전주 비정규직지회가 18일 조합원의 신규 채용에 합의(<한겨레> 8월19일치 10면 참조)한 데 이어 19일 두 비정규직지회가 조합원 총회를 열어 이를 가결했다. 이로써 11년을 끌어온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겉으론 불법파견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된 모양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그동안 ‘불법파견 인정’ 및 ‘정규직 전환’이라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요구와는 다른 결과다.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번진 불법파견 해법의 시금석으로 여겨져왔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노동계 내부에서 논란과 함께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합의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게 ‘신규 채용’이다. 이는 ‘정규직 전환’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는 현대차가 자신들을 도급이라는 형식으로 불법파견을 받았음을 인정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2003년 노조를 만든 이들이 수백명의 해고와 구속을 무릅쓰고 11년 동안 싸워온 핵심 이유의 하나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고용의 안정성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차별받아온 임금 차액 등도 돌려받게 된다.
반면 ‘신규 채용’은 원청인 현대차가 정규직 노동자를 새로 뽑을 때 사내하청 조합원한테 우선권을 준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불법파견의 책임 소재를 가릴 근거가 사라지고, 그동안의 차별에 따른 보상도 빠지게 된다. 이번 합의에 현대차 3개 공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울산비정규직지회가 빠진 핵심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 사쪽과 2곳의 비정규직지회가 합의한 데에는 양쪽의 절박한 사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1569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의 1심 선고 예정일(21일 또는 22일)이 코앞에 다가온 점도 압박 요인이었다. 비정규직지회는 판결에서 승소해도 현대차가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갈 게 뻔한 상황이라 앞으로 4~5년간 투쟁을 더 이어가기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소송에 참여한 조합원 가운데 일부만 이기고 나머지가 패소하면 노조 내부 갈등이 불거질 위험도 있다.
현대차 쪽도 판결에서 지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법원 판결로 대규모 불법파견이 확정되면 현대차에 사회적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이번 합의에서 노사가 서로한테 제기한 민형사상 소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한 것도 이런 짐을 덜기 위한 것이다. 이번 합의에는 신규 채용에 응하는 조합원은 1심 판결 뒤 소송을 취하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현대차로선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취소되면 회사가 줘야 하는 정규직과 차별 임금 등 2800억여원을 아낄 수 있다는 게 울산비정규직지회의 추산이다.
이번 합의가 현대차는 물론 불법파견 문제가 불거진 다른 사업장에 끼칠 영향은 적지 않다. 당장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내부에서부터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울산비정규직지회는 성명을 내어 “이번 합의안은 현대차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받으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지회는 이에 맞서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노동계 안에서는 궁박한 처지로 떠밀려 합의안을 받은 비정규직지회의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막판에 원칙을 외면하고 회사 쪽과 타협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21·22일로 예정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선고가 연기될 수 있고,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 1004명이 지난해 제기한 같은 내용의 소송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며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는 한국 사회 불법파견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를 가늠하는 풍향계였다. 이번 합의는 정규직 노조와 회사 쪽 담합에 일부 비정규직지회가 투항한 꼴”이라고 짚었다.
이런 현실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한테 조합원 자격을 주지 않고 2000년대 초반 사내하청 노동자를 전체 고용의 16% 안팎 쓸 수 있도록 동의해주는 등 비정규직 문제에 무관심한 현대차지부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된다. 산별노조로서 교섭권을 갖고 있음에도 이번 합의에서는 빠진 금속노조는 물론 총연맹인 민주노총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조 교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민주노총 차원의 전략과 방침이 없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섭에 경총이 나온 데서 보듯 경영계는 전체 자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노동계 쪽은 개별 사업장의 불법파견 투쟁 전략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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