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침과 정반대로
한국지엠(GM) 노사가 사무직 노동자의 임금체계를 연봉제에서 호봉제로 바꾸기로 했다. 2003년 연봉제를 완전 도입한 지 11년 만이다.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사무지회는 3일 “사무직 조합원의 가장 큰 숙원이던 임금체계 개편에 3월31일 오전 회사 쪽과 잠정합의했다. 이로써 성과 중심의 개별적 임금체계인 연봉제가 폐지되고, 연공급제를 기초로 한 새 임금체계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지회는 16~17일 총회를 열어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의 찬반을 묻는다.
지회 쪽은 임금체계 개편의 배경으로 연봉제의 폐해를 꼽는다. 회사의 일방적 평가를 근거로 한 연봉 인상으로 사원 간 임금 격차가 커지고 경쟁이 심해져 기존의 협력적인 조직문화가 크게 망가졌다는 것이다. 한국지엠의 연봉제는 직급에 따른 기본급 없이 업적평가 결과에 따라 하위 등급자는 연봉이 동결되는 반면 최상위 등급자는 수백만원씩 오르도록 돼 있다. 이런 사정 탓에 직급별 임금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지회의 이재수 교육선전실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리 1호봉이 차장보다 더 많이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노사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고 이번 잠정합의에서 사원·대리·차장 등 3개 직급마다 연차별 기본급을 정하되 성과평가에 따른 임금인상의 차이를 크게 줄이기로 했다. 호봉제와 다를 게 없다. 부장급 이상은 기존 연봉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1999년 회사가 연봉제를 도입해 2003년 사무직 노동자까지 확대한 지 11년 만의 변화다.
한국지엠사무지회는 인천 부평과 경남 창원, 전북 군산 등지의 공장과 정비사업소 등에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 4500여명 가운데 4000여명이 조합원이다.
회사 쪽도 이번 임금개편이 불가피했다는 태도다. 김성수 한국지엠 상무는 “노조가 조합원의 뜻을 물어 연봉제를 호봉제로 바꾸자는 안을 냈는데 회사가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어 노조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호봉제는 옛날 것이고 연봉제만 신식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번 합의가 최근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제시해 호봉제 폐기 및 성과급 중심의 연봉제 도입을 유도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방침과 정반대 방향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엠 노사의 임금체계 개편 합의는 노동부 매뉴얼이 사용자만을 위한 편향된 주장일 뿐만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도 노사관계와 조직문화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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