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철도파업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국토부가 주무 부처인데 우리가 잘못 얘기했다간 제3자 개입으로 문제가 된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한 기자간담회에서 한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노동계 등에선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철도 파업의 한쪽 당사자는 사실상 정부이고, 노사 관계를 관장하는 부처가 고용노동부다. 그런데 정부가 직접 관련된 노사 분쟁 현안에 적극 중재하기는커녕 폐기된 지 오래인 ‘3자 개입’개념을 들먹이며 뒷전에 물러나 있는 데 대해 노동을 너무 모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파업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정부 안에서 노동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총괄·조정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라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철도 분쟁을 조정하고 중재해야 할 방하남 장관은 노사관계 분야에서는 전혀 경험이 없는 비전문가다. 지난 3월 장관에 임명될 당시 노동계에서는 “방하남이 누구냐”고 할 정도로 그동안 노동계와 접촉 자체가 없었다. 방하남 장관은 지난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철도노조와 면담한 적이 없다. 만났어도 (노조가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노사정위원회도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철도노조는 ‘철도 민영화’가 사회적 문제인 만큼, 사회적 대화로 풀어가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부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노사정위원회는 철도 파업과 관련해 입장 하나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청와대에 노동전문가가 없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지적돼온 문제다. 청와대에는 노동과 복지를 함께 담당하는 고용복지수석이 있는데, 첫 수석인 최성재 전 수석과 현 최원영 수석 모두 보건복지 분야 전문가다. 고용노동비서관은 고용노동부에서 파견됐지만 발언권이 약해 거의 영향력이 없다는 평가다.
결국 주무 장관은 개념 없는 발언을 하고 있고, 노사정위원회는 아예 존재감이 없으며, 총괄 기능을 해야 하는 청와대에는 노동 기능이 공백상태나 다름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 없이 강경하게 대응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일차적인 파국의 원인지지만, 대통령 주변에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철도 문제가 노·사, 노·정관계를 바탕에 둔 대화보다도 ‘힘의 논리’만 횡행하게 됐다. 노동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는 정부는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공안’중심으로 사태를 처리하려 해 극한 대치가 계속되는 셈이다. 지난 22일 경찰이 민주노총에 강제 진입할 당시,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민주노총에 공권력이 투입된다는 것은 정부와 노동계 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인 만큼, 노동부의 협조가 필요했다. 결국 경찰 투입으로 한국노총마저 정부를 비난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는 등 사태는 더욱 꼬였다.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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