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에 사상 첫 경찰 투입]
5천명 투입해 유리문 깨고 최루액 쏘며 10시간 야단법석
철도노조 간부는 없어…좁은 건물 수백명 뒤엉켜 ‘아찔’
5천명 투입해 유리문 깨고 최루액 쏘며 10시간 야단법석
철도노조 간부는 없어…좁은 건물 수백명 뒤엉켜 ‘아찔’
‘와장창.’
22일 오전 11시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본부가 있는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 1층 정문 유리가 소방관의 망치에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경찰이 밀고 들어갔지만, 4m 앞에서 또다시 안쪽 유리문에 막혔다. 경찰은 건물 동문의 유리문을 또 깨고 진입을 시도했다. 5m를 전진한 경찰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또 막혔다. 경찰을 막고 선 조합원들 중 한 여성은 힘에 부쳐 비명을 내질렀다. 경찰은 스프레이처럼 생긴 최루액을 사람의 얼굴을 향해 뿌려댔다. 건물 13층에서 창밖으로 물을 뿌렸다. 민주노총은 이 건물의 13~15층을 사용한다. 경향신문사 별관에 있는 금속노조 사무실에선 전단지가 흩어져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 통하는 대통령이 되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경찰의 진입 신호는 이날 오전 9시40분께 떨어졌다. 연정훈 남대문경찰서장은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등 13명의 체포영장을 들고, 농성하던 조합원들에게 길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대 등 69개 중대 5500여명을 동원해 경향신문사 건물을 에워쌌고, 사고에 대비해 에어매트 2개를 설치했다.
경향신문 건물을 에워싼 경찰들은 “건물 입구부터 계단으로 돼 있어 돌파는 힘들 것 같다. 각개격파로 끌어내 1명씩 연행해가며 올라가야 할 것 같다”고 논의했다. 로비에 있던 조합원들의 연행은 오전 10시께 시작됐다. 조합원들은 저항했고, 경찰은 “당장 철수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경찰 관계자는 “민주노총 본부 안에 철도노조원 700여명과 체포 대상자 9명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유리문을 깨고 진입한 경찰들은 일사천리로 건물을 장악해 들어갔다. 몸으로 진입을 막는 노조원들을 1명씩 지속적으로 끄집어내 연행했다. 낮 12시까지 45명을 연행하고 들머리를 막고 있던 국회의원들도 현장에서 격리했다. 경찰은 오후 1시께 1층 로비에서 대치하던 노조원들을 모두 밖으로 끌어내고 로비를 점거했다. 이날 모두 138명의 민주노총 조합원 등을 연행했다.
봉쇄된 1층 로비 바깥에서는 오후 1시께 민주당·통합진보당·정의당 의원들이 건물 내부 진입을 요구했다. 이들은 “경찰은 국회의원과 취재진의 출입을 막아 안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공안 정부나 다름없다”며 경찰과 대치하다 오후 1시30분께 로비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오후 5시에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경향신문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도 민영화를 원치 않고 노조도 민영화를 원치 않는다. 강경한 진압이 아니라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경찰은 1층 출입을 막고 내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 뒤, 저녁 6시25분께 옥상까지 모두 장악했다. 경찰은 좁은 계단에 쌓여 있는 책상 등을 치우며 한 층씩 올라갔다. 노조원들은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소화전을 이용해 물을 뿜으며 경찰 진입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노조원들이 가지고 있던 소방 호스를 빼앗고 바리케이드를 철거한 뒤 노조원들을 방패로 밀며 진압했다.
결국 경찰은 오후 6시21분 13~15층 민주노총 본부를 장악했지만, 정작 체포하겠다던 철도노조 간부는 단 한명도 없었다. 경찰은 이들이 16~17층 옥상으로 피신했다고 보고 옥상까지 진입했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경찰은 저녁 7시22분 16층에서 1명을 붙잡았지만 철도노조 간부는 아니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간부들은 이날 새벽 모두 건물을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경향신문사 주변부터 서대문역 네거리와 정동길 일부, 강북삼성병원 앞 등은 모두 봉쇄됐다. 경찰은 철도노조 간부들의 체포가 사실상 무산된 저녁 7시40분께 강제진입을 위해 설치했던 에어매트의 바람을 빼고 그 자리에 살수차를 진입시켜 주변으로 모여든 시위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날 민주노총 본부 주변은 하루종일 몸싸움과 최루액, 아우성이 뒤엉켰다. 좁고 오래된 건물에서 수백명의 몸과 몸이 부딪쳐 자칫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체포하려던 철도노조 간부들도 모두 빠져나간 상태에서 경찰이 명분도 없는 위험한 작전을 벌였던 셈이다.
김효진 김성광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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