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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해고 한번에 ‘9년째·9급심’, 대한민국 정의는 있는가?

등록 2013-04-18 20:48수정 2013-04-19 18:35

최병승씨와 현대차 울산공장 송전철탑에 올라가 18일로 184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지회 천의봉 사무국장이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일주일 전 다른 조합원의 가족이 철탑농성장 사진으로 만들어 선물한 500조각짜리 퍼즐을 천 국장이 이날 농성장 내부 천막에서 다 맞춘 뒤 침낭 위에 올려놓고 찍었다. 천의봉씨 제공
최병승씨와 현대차 울산공장 송전철탑에 올라가 18일로 184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지회 천의봉 사무국장이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일주일 전 다른 조합원의 가족이 철탑농성장 사진으로 만들어 선물한 500조각짜리 퍼즐을 천 국장이 이날 농성장 내부 천막에서 다 맞춘 뒤 침낭 위에 올려놓고 찍었다. 천의봉씨 제공
‘184일째 철탑농성’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의 분노
3년전 대법서 불법파견 인정 뒤
중노위 “부당해고 맞다” 결정
현대차 불복 “결정 취소” 행정소송
법원 “현대차 헌법소원 판단 보자”
‘9년째 9급심’ 선고 또 미뤄
철탑 고공농성 184일째를 맞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37·사진)씨는 18일 점심때 철탑 아래에서 올려줘 먹은 오이냉국과 김치가 잘 소화되지 않아 고생했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울산공장 촉탁직 노동자 공아무개씨 사건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분신한 사내하청 노동자 김아무개씨 사건 때문이다. 그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회사가 불법파견 노동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간접적 타살”이라며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철탑에 올라 있는 최씨를 더욱 고립시키는 건 대한민국의 사법부다. 서울행정법원은 최씨의 부당해고 소송에 대한 선고를 원래 이날 내리기로 했으나, 이틀 전 연기를 통고해왔다. 6월13일 헌법재판소가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2년 이상 파견노동을 할 경우 정규직이 된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여는 만큼 그 뒤로 선고를 미루겠다는 것이다. 2005년 2월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징계해고된 뒤 9년째 8차례에 걸친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단을 받고도 부당해고 여부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아 다시 9번째 법원 결정을 기다리는 그에게 법이란 무용지물이다. 노동 전문 변호사들조차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기 위해 9급심까지 간 사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최씨는 처음 해고된 뒤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고, 파견법에 따라 나는 현대차 직원이다. 사내하청업체가 나를 자른 것은 부당해고”라며 구제신청을 했다. 부산지노위에 이어 중앙노동위원회도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최씨는 중앙노동위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으나, 고등법원까지 연거푸 졌다. 이때까지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보고, 따라서 부당해고인지 여부는 판단하지도 않았다.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
그러다 2010년 7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법원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의 실체가 없고, 콘베이어벨트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사내하청 노동자가 섞여서 일하면서 현대차의 지시와 근로감독을 받는 한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돌아갔고,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2년 2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대법원은 최씨의 경우 불법파견인데다 고용 기간이 2년을 넘겼기 때문에 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에 따라 이미 정규직이 된 것으로 봤으나, 최씨의 해고가 부당해고인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판결의 취지를 볼 때 내용적으로는 부당해고가 분명하지만, 하급심에서 부당해고 여부를 다루지 않은 만큼 이를 별도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형식논리가 적용됐다.

공은 다시 중앙노동위로 넘어왔고, 중노위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부당해고가 맞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지난해 5월 중노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다시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9번째 송사였다.

노동사건에서 전무후무한 ‘9년째 9급심’ 선고가 이날 내려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또 기약 없이 미뤄진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이 근거로 삼은 6월13일 헌재 공개변론은 현대차가 최씨에 대한 대법원 선고 이후 잇따라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것이다. 자본의 끈질긴 법적 대응으로 최씨의 소송은 한없이 늘어지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만약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내려질 경우 최씨 사건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서울행정법원의 9번째 결정이 올해 중하반기에 내려지고 내가 이긴다 한들 현대차는 또 고등법원에 항소하고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다. 결국 10년이 넘는 동안 11급심까지 가서 대법원이 내 손을 들어준들 무슨 소용인가. 부당 해고를 인정받기 위해 10년 이상 소송을 해야 하는 나라가 정상국가냐”라고 말했다.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고재환 변호사는 “노동사건을 수백건 해왔지만 헌재 결정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선고를 미룬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도 아랑곳하지 않고 법정 싸움을 계속하는 현대차의 행태도 문제이지만, 노동위원회 제도의 결함이 결국 ‘9년째 9급심’이라는 해괴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인다. 노동사건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긴급히 구제한다는 취지에서 시간·비용이 많이 드는 법원 소송에 앞서 노동위의 판단을 받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됐으나, 기업들이 노동위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소송으로 끌고가는 바람에 오히려 구제 절차가 더 길어지는 역효과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장은 “현대차가 내용적 판단이 끝난 사건을 형식적인 법절차를 이용해서 질질 끌고 있다. 노동위가 신속한 구제의 기능을 하지 못해 문제를 키운다. 이럴 바에야 노동위원회 제도를 폐지하고 노동법원 제도를 도입해 법적 구속력을 높이고 신속성을 기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해고 노동자가 ‘9년째 9급심’ 선고마저 언제 나올지 모르고 철탑에서 184일째 고공농성을 벌이는 현실은 ‘대한민국에 과연 정의는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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