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 고동민 조합원과 김정우 지부장, 박호민 선전부장, 조국 교수(왼쪽부터)가 7일 오후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조국의 만남 서울 대한문앞 농성 ‘쌍용차 정리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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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경찰·보험사까지 손배소송
수시로 가압류 고지 날아와
내 이름으로 통장도 못 만들고…
23번째 죽음 막았으면…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 이후에야 비로소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정리해고 대상자 2646명 중 2026명 희망퇴직, 461명 무급휴직, 159명 정리해고 된 것으로 안다. 박호민 징계해고자 44명이 따로 있다. 내 경우가 그러한데 원래 파업 후 업무복귀자였다가 파업에 참가했다고 회사가 괘씸죄를 적용하여 잘랐다. 김정우 의리를 지킨 죄지. -쌍용차 사태 3년을 개괄해 달라. 김정우 시작은 1997년말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였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주식단가 100원에 쌍용차를 인수했는데 그 뒤 대우자동차가 몰락하자 1차 구조조정을 하며 노동자들을 털어냈다. 2000년 쌍용차가 대우자동차에서 분리하면서 2차로 노동자를 털어냈다. 그 뒤 쌍용차가 워크아웃을 벗어났다.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쌍용차는 정상화하고 흑자로 전환됐다. 흑자전환이 되자 2004년 중국 상하이자동차로 팔렸는데 이 때 또 노동자를 털어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하려던 목적은 기업을 활성화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기술도둑질 후 ‘먹튀’가 목적이었다. 2006년 15일간 공장 문을 걸어 잠근 첫번째 ‘옥쇄파업’ 후 또 몇백명을 잘라냈다. 구조조정이 총 4번 있었던 거다. 이 ‘옥쇄파업’ 후에는 노조위원장 둘을 비리 혐의로 구속시켰다. 노조는 치명타를 입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상하이차는 기술을 다 빼갔다. 고동민 쌍용차 사태는 자본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한 이후 정리해고법·비정규직법·파견법 등이 만들어졌다. 한방에 도산시키거나 없애기는 어려우니 서서히 쌍용차를 무력화시킨 것 아닌가. 결정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에 구조조정 하지 않으면 회사를 살려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였고, 회사쪽은 이에 힘입어 노동자를 몰아냈다. 우리가 계속 이명박 대통령이, 그리고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본에게 노동자는 비용에 불과한 것인지…. 2009년 ‘옥쇄파업’과 진압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저 달이 차기 전에>와 <당신과 나의 전쟁>을 보았다. 그때 현장에 있었나? 김정우 우리 모두 77일 동안 그 안에서 함께 싸웠다. 이 두 분은 집행부원으로 한상균 동지와 동고동락을 했고, 나는 평조합원이었다. 당시 국가와 회사쪽은 우리를 테러범이나 공비 취급했다. 박호민 당시 나는 도장반에서 경찰, 용역, 구사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싸우면서 어떻게 국가권력이 이토록 무자비하게 노동자를 다룰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욕설이 튀어 나왔다. ‘용산참사’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고동민 무서웠다. 나는 간부였기 때문에 공포심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진짜 사람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다. 8월5일 강제진압 당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맞은 사람들을 빼오는데 걸레가 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국가권력이 우리를 사람으로 취급 안하는구나를 확실히 깨달았다. -공장점거농성으로 구속된 사람은 총 몇 명인가? 고동민 96명이 구속됐다. -손해배상청구도 당했을 텐데. 박호민 회사는 물론 경찰도, 심지어 메리츠 화재도 청구했다. 구상권을 행사한다면서. 총 390억원 정도 손해배상이 청구됐다. 월급도 집도 가압류됐다. ‘산송장’이 된 꼴이다. -아닌 말로 몸으로 때우면 되는 형사처벌보다 월급과 집을 빼앗는 민사소송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고동민 개인 파산한 이가 많다. 가정불화는 예사고, 이혼도 많이 했다. 77일 파업할 때는 나중에 가족들한테 잘해야지 하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막상 나가고 보니 쌍용차 출신이라고 찍혀 재취업도 안 되고, 다른 돈벌이도 쉽지 않다 보니…. 박호민 수시로 법원, 회사, 경찰 등에서 가압류 고지가 날아온다. 내 이름으로 통장도 못 만들고, 집도 땅도 못 판다. 일상생활을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쌍용차 출신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도 안 되는 것으로 안다. 김정우 20~30번 이력서를 넣었지만 쌍용차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재취업이 안 된다. 이력서에 쌍용차 이력을 안 적어도 4대보험이나 국민연금 자료에서 다 드러난다. 거제도에 용접을 하러 가도 쌍용차에서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이 안 된다. -왜 22명이 세상을 떠났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2009년 공장점거농성 당시 노조는 정리해고에 맞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서 총고용을 유지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고동민 신차 개발자금 확보를 위해 노동자의 퇴직금을 담보로 1천억원을 출자하겠다, 임금과 복지 삭감을 받아들이고 비정규직 고용안정을 위해서 12억원을 출연해서 비정규직 고용을 보장하겠다 등을 제안했다. 순환 무급휴직도 먼저 제시했다. 회사 상황이 정말 어려우면 돈을 받지 않고 대기하더라도 총고용을 보장하는 방안을 내밀었다. 그러나 회사는 받지 않았다. -현재 쌍용차의 경영상황은 어떠한가? 박호민 회사는 지난해 약 11만대를 판매했고, 올해에도 영업이익이 나서 예술의 전당에서 야외 페스티벌도 했다. 회사는 적자 운운하지만 핑계라고 본다. 회사의 속마음은 옥쇄파업 참가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다. 김정우 회사는 가두리 양식장의 보호막을 공장 테두리에 친 것 같다. 쫓겨난 우리와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섞이면 안 된다는 거다. 고동민 2001~2003년 3000~5000억원 최대 흑자를 냈을 때, 판매 대수가 14만대였다. 2001년 12만대 생산을 평균으로 봐도 연간 11만대면 다들 월급 주고 신차 개발 할 수 있다. 올해는 월 1만 대 이상을 판매했다고 홍보하고 있으니 2001년 수준이 된 거다. 얼마 전에는 TV 드라마 협찬도 했다. 인원은 절반으로 줄었으니 이익은 더 많을 거다. 쌍용차는 이미 정상화 궤도에 올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우선채용 약속 ‘헌신짝’
회사, 적자 운운하지만 핑계
올해도 영업이익 나서
예술의전당서 페스티벌도 했다
얼마전엔 TV드라마 협찬까지 -근로기준법 25조는 정리해고 3년 이내 신규채용할 경우 정리해고 노동자를 우선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회사는 4월9일부터 신규채용 공고 냈는데, 말씀을 들어보면 파업참가자는 이 신규 채용으로도 구제되지 않을 거 같다. 그런데 회사 내부에 금속노조를 탈퇴한 새 노조가 만들어졌다. 박호민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은 거다. 회사가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회사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노조를 만든 거다. 고동민 파업 후 박영태 법정관리인이 사장을 하며 금속노조 탈퇴시키겠다고 했다. 노조는 결정도 안했는데.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가 해준 게 뭐있냐고 선동하면서 탈퇴에 동의하지 않으면 쫓아내겠다고 위협하여 탈퇴가 이루어졌다. 버틴 사람도 있었지만, 2646명이 회사 밖에 기다리고 있으니 흐름이 그렇게 잡힌 거다. 김정우 그런 상황에서는 산재를 당해도 복대를 차고 일할 수밖에 없다. 부당하다고 저항하면 ‘너 말고 일할 사람 많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일하라’는 답이 돌아온다. -정리해고는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리해고 후 빈 자리는 주로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 회사 입장에서는 노동통제가 훨씬 쉬워진다. 19대 국회에서 정리해고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김정우 정리해고의 요건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해고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이 일을 현재의 국회가 제대로 해낼지 의문이다. 고동민 김대중, 노무현 정부 아래서 반노동 법률이 마구 통과되었다.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가 끝나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느냐.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요건이 강화되어도 자본이 이를 지키는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이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났는데도 현대자동차는 안 지키고 있다.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법을 만들어 이 불법을 정당화하려 하고.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허용은 구제금융 상황에서 비상조치로 도입된 것이다. ‘노동계엄’이라고 할까. 구제금융은 끝났지만 ‘노동계엄’은 여전하다. 최근 민주당은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쌍용차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장은 무급휴직자는 복직시키고 정리해고자는 단계적으로 일자리를 마련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박호민 이석행 위원장과 우리 쌍용차 지부 사이의 온도차가 너무나 크다. 저 사람이 민주노총 위원장을 했던 사람인가, 구조조정을 잘 아는 사람이 저런 제안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고동민 민주당은 적당한 절충안을 내어 회사와 적절한 수준에서 봉합하려 하는 게 아닌가. 한진중공업 사태처럼 말이다. 회계조작을 기초로 이루어진 정리해고는 원천무효다. 부당 해고된 모든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정우 이석행 전 위원장을 두 번 만났다. 정리해고 금지를 회피하려는 것 같다. 동의할 수 없다. -그래도 국회가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없나. 박호민 회계조작이나 상하이자동차의 ‘먹튀’ 등 쌍용차의 총체적 진실을 밝혀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이렇게 투쟁하고 있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도 정확히 모르고 있다. 고동민 노동법원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노동문제를 자본의 논리로만, 민사법의 논리로만 푸는 법원과 판사만 있으니 사태가 더 악화된다. -청문회를 통한 진상조사가 필요하겠다. 법학자로서 나는 독일이나 북유럽처럼 노조 대표가 기업 이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경영에 참여하고 회계를 감시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산업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호민 우리나라 기업의 사외이사는 거수기에 불과하더라. 민주당과 갈등
당대책위원장과 온도차 너무 커
적당한 절충안 내어
봉합하려 하는게 아닌가…
국회도 ‘회계조작’ 밝혀줬으면 -‘희망식당’ 얘기를 잠깐하자. 고동민 상도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상도 실내포장마차’다. 해고자 형수님이 하는데 음식 맛이 굉장히 좋다. 이 점 꼭 강조해 달라.(웃음) 평일에도 하는데 일요일에만 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작년 12월23일 1차 희망텐트의 날에 신동기 ‘셰프’가 지부 동지들과 함께 곰탕 1천명 분을 3박4일 동안 잠 안 자고 끓였다. 정말 맛이 좋았다. <미디어충청> 대표가 식당을 열자고 제안하여 진짜 열게 된 것이다. 김정우 시민들이 주중에도 꼭 와주시라고 당부하고 싶다. 매일매일 이용해 주시면 좋겠다. 신 ‘셰프’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몸소 했던 친구다. 생계가 어려워 오늘은 다른 일하러 갔는데, 정말 훌륭한 동지다. -서빙 지원을 받는다고 들었다. 저도 한번 하고 싶다. 김정우 기회는 많지 않다.(폭소) 고동민 인권재단 박래군 이사가 음식도 만들고 서빙하는 날 제일 손님이 안 왔는데 음식도 맛이 없다고 하더라.(웃음) 그 뒤 이선옥 작가가 오니까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음식도 맛있었다고 하고. -박 이사가 산적처럼 생겨서 그런가….(폭소) 노조 외부에서 많은 사람이 지원했다. 박호민 분향소 찾아오는 한 분 한 분이 고맙다. 그 분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김정우 민주노총 산하 조직원들이 가장 열심히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도 마음을 나눠주어 매우 고맙다. 점점 더 많은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고동민 민주노총 칭찬도 해줬으면 한다. 잘못도 있겠지만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없었으면 우리 얘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 문제는 유명인사 몇 명이 해결할 수 없다. 시민 한 분 한 분의 발걸음이 죽음을 막고 우리를 공장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다. 6월16일 오후 1시 여의도공원에서 출발해 대한문까지 걷는 ‘거북이 마라톤’ 행사를 한다.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행진이다. 꼭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으면 좋겠다. 정리/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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