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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사주들은 ‘전북 대통령’…전주시·민주당은 눈치만

등록 2012-06-08 20:44수정 2012-06-08 22:07

전주 시내버스 5개사 노조원들이 지난달 29일 집단 릴레이 단식농성 기자회견을 끝낸 뒤 시청사 앞에 펼침막을 들고 앉아 있다.  전주/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전주 시내버스 5개사 노조원들이 지난달 29일 집단 릴레이 단식농성 기자회견을 끝낸 뒤 시청사 앞에 펼침막을 들고 앉아 있다. 전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전주 버스파업 왜 안 풀리나
노조의 항복 선언에도
회사는 민주노총 쪽 노조만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

신규 채용에 연장 근무
생활고 지친 파업자들 회사로…
버스 자체운행률 80%대
전주시는 전세버스 투입해
‘사실상 회사 도와준 결과’ 불러

오늘(9일)로 89일째다.

호남고속, 신성·전일·시민·제일여객 등 전주 시내버스 5개사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3월13일, 2차 버스 파업에 돌입했다. 시외버스 업체 전북고속은 2010년 12월8일 1차 파업 시작 이후 한번도 업무 복귀를 하지 못했으니, 550일째다. 사상 초유의 최장기 버스 파업이다. 호남의 ‘여당’인 민주통합당의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파업 문제를 풀겠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딱히 해결책이 있어 뵈진 않는다.

‘자체 운행률 80%선 회복’의 불편한 진실

파업이 장기화될수록 세간의 관심은 사그라드는 모양새다. 정동영 전 의원이 지난해 1차 파업 당시 ‘전주 버스 청문회’를 열자고 촉구하면서 잠시 이슈화되는 듯 하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현안에 밀렸다. 4·11 총선을 앞두고 ‘반짝’ 관심을 받았지만, 방송국 파업 등과 맞물리면서 파업 소식은 널리 전달되지 못했다.

한낮의 기온이 30도까지 치솟은 지난달 29일, 전주시 완산구 전주대학교 종점에서 버스들이 멈춰서 있다. 
 전주/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한낮의 기온이 30도까지 치솟은 지난달 29일, 전주시 완산구 전주대학교 종점에서 버스들이 멈춰서 있다. 전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 사이 시내버스 자체 운행률이 80%선까지 올라왔다. 전주시가 비상 대책으로 투입했던 전세버스는 이미 지난달 8일께 모두 빠졌다. ‘불안한 정상화’의 뒷면에는 파업 불참자들의 무리한 2~3일 연속 근무, 생활고에 지친 노조원들의 복귀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 뿐인가. 파업중 대체인력 투입이 금지돼 있지만 호남·전북고속은 누리집에 버젓이 채용공고를 내고 기사를 모집하고 있다. “퇴직 등에 따른 상시인력 충원을 하는 것”이라는 게 전북버스운송사업조합의 해명이다. 사정이야 어쨌든 현재 ‘출근 대란’사태는 없다. ‘파업 사태를 해결하라’는 시민사회의 압박도 1차 파업 때만 못 하다. 오랜 파업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노조원들의 이탈도 가속되고 있다. 노조원들이 하루에도 서너명씩 업무에 복귀하면서 전체 기사 884명 중 629명(5월18일 기준)까지 줄어들었다. 시간은 회사 편이고, 노조는 고립된 채 고사되고 있다.

“노조가 사실상 항복 선언을 했지만 사쪽은 민주노총 쪽 노조만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노사간 협상을 중재해온 김성주 민주통합당 의원(전주 덕진)의 말이다. 조건 없는 복귀 약속에 이어 지난달 25일 산별노조의 무기인 공동교섭까지 내려놓고 개별교섭을 하겠다고 했는데도, 사쪽이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왜 파업이 장기화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전주 버스노조는 한국노총 자동차노련 소속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으로 나뉘어 있다. 사쪽은 기존의 한국노총 노조와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2010년 통상임금 지급 판결이 난 뒤, 한국노총 노조가 1인당 100만원의 위로금만 받고 통상임금 소송을 취하하기로 사쪽과 합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1000만원 이상의 통상임금을 포기하는 각서를 쓰라는 데 반발한 노조원들이 대거 민주노총으로 이동하면서 ‘한지붕 두 노조’가 시작됐다.

사쪽은‘2011년 6월30일까지는 기존의 노조와 조직대상을 같이 하는 새 노조를 설립할 수 없다’는 노조법을 내세워 민주노총과의 교섭을 거부했다. 1차 파업의 시작이다. 대법원이 ‘산별노조는 설립을 금지한 복수노조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시민사회가 압박하자 사쪽은 그제서야 성실하게 교섭을 하겠다고 물러섰다. 성실 교섭은 이뤄지지 않았다. 2차 파업이 시작됐지만, 사쪽은 느긋하다. 이번에는 “한국노총과 기존에 맺은 단체협약이 2013년 6월30일까지 유효하니, 임금 교섭만 하자는 것이다”는 것이다. 노조 쪽에선 “법 해석을 이유로 시간을 끌면서 노조를 말려 죽이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성주 의원은 “일부 사주들은 강성 노조인 민주노총이 들어올 경우, 아예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갖고 있다”며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의 우위에 서기 위해 선명성을 강조하면서 더 대화가 안 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왜 똥을 싸고 알몸시위를 했나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지만 누구도 적극적인 해결책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 복수노조 시행 초기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런 혼선을 정리해야 할 노동부는 갈팡질팡이고, 책임은 온전히 지자체가 떠맡게 되는 모양새다.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머리가 복잡하다. 자칫하단 복수노조 시대에 본격화될 ‘노노갈등’의 시범 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조심스럽다. 전주시 대중교통과 관계자의 말은 솔직하다. “지난 서울 버스노조 파업처럼 임금을 올리는 문제라면 차라리 해결이 쉽다. 여기엔 각 노조 간의 세력 확장 문제 등 여러가지가 겹쳐 있어 풀기가 어렵다. 전주가 지금 그 시험대가 되고 있다.” 결국 전주시는 “중재를 할 뿐 노사 문제는 당사자가 풀어야 한다”는 소극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노사의 잇단 소송 제기를 하고 있는 만큼 사법부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시간은 더 간다.

서윤근 시의원(진보신당)은 시의 무책임을 비판했다. “노조가 더 내놓을 카드가 없는 상황인 만큼 시가 행정 권한을 동원해 사쪽에 대화를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 의원을 비롯한 시 의회 일각과 시민사회단체에선 그 방안으로 과거 인천시 버스 파업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 회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나 보조금 중단, 면허권 취소 등을 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시는 면허권 취소 등은“직권남용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주시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면허권을 취소할 수 있다고 해도, 당장 시민 불편이 가중되고 퇴직금 계산 및 노동 승계 문제를 놓고 파업이 더 길어질 가능성마저 있다”고 말했다.

시의 소극적 대처에 노조는 “노골적인 사쪽 편들기”라며 불쾌해 하고 있다. 지난 1차 파업 당시 시 당국이 민주노총의 파업을 성급하게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하는 바람에 문제 해결이 더디게 됐다는 비판이 그중 하나다. 2차 파업과 관련해서도, 김종인 공공운수노조·연맹 부위원장은 “2시간 부분 파업에 강제적인 직장 폐쇄를 한 버스 업체를 처벌하는 대신 시는 전세버스를 투입해 사실상 사쪽을 돕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청 앞에서 똥을 싸고 알몸으로 돌아다닌 ‘돌출행동’은 좌절과 분노의 다른 이름이다. 똥을 쌌다는 노조원 김아무개씨(55)는 손사래를 쳤다. “그날 일을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알몸으로 시청에 들어가려다가 제지를 당했던 시민여객 소속 노조원 진영진(41)씨는 할 말이 많았다. “시 청사 안에 들어가려면 옷(노조 조끼)을 벗으라는 거에요. 다 벗으란 얘기가 아니라는 거 물론 알았지요. 그런데 민원 보러 가는 사람이 입은 옷이 마음에 안 들면 벗으라고 해도 되나요? 인권 유린이죠. 되레 청원경찰을 징계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도 한 집 가장이니 이해하라는 거에요. 노조원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고소·고발을 하면서 우리더러만 이해하라니 정말 기가 막혔죠.”

버스 사주가 전주시장에게 “어이, 송시장!”

버스 회사 사주들은 20~30년 이상 독점적 사업을 하면서 지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예로, 김택수 호남고속 회장은 전북 상공회의협의회 회장, 전북택시사업조합 이사장, 전북운수연수원 이사장, 경초학원 호남제일고 이사장 등의 직함을 갖고 있으며, 지역 신문(전북도민일보)까지 갖고 있다. “전북의 대통령”이란 말까지 나온다. 정치권과의 유착 관계를 의심하는 말들도 돈다. 김완주 전북지사가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버스업체들로부터 후원금 1000만원을 받았다가 전주 시내버스 파업 이후 되돌려준 것을 두고 말이 많다. 지난해 노사의 공식 협상 자리에서 김택수 회장이 송하진 전주시장에게 “어이, 송시장!”이라고 부른 것은 이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로 꼽힌다. 남상훈 전북고속 지부장은 “표를 의식하는 정치권이 버스 사주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비판은 이 지역 여당인 민주통합당으로 오롯이 향한다. 오현숙 의원은 “이 지역 민주통합당 의원들의 경우, 대부분 한국노총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나서봐야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 많다”고 얘기했다. 서윤근 의원은 “노동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민주통합당도 다른 보수 정당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전주/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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