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관련 법체계 흔들린다” 수용 거부
고용노동부가 최근 실업자와 해고자도 노동자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을 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 노사관계법제과는 21일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면 국내 노동관련 법체계를 뒤흔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지난 14일 보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20일 △노동자의 개념에 실업자와 해고자를 넣고 이들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는 노조법을 고칠 것 △기존 노조가 고용부의 시정명령을 듣지 않으면 그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노조법 시행령을 고칠 것 △노조 설립신고 심사 때 법에도 없는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관행을 바꿀 것 등을 고용부 장관에게 권고한 바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헌법상 근로3권은 근로자의 권리인데, 여기에 실업자 등을 포함시키면 국민의 권리가 돼 버린다”고 권고 수용 거부의 이유를 밝혔다. 과다한 자료 요구 관행을 개선하라는 권고에 대해서도 “그동안 법원이 인정한 범위 안에서 자료제출 요구를 했는데, 인권위가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했다”며 개선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다.
노동계는 이처럼 고용부가 인권위 권고를 무시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인권위는 지난해 3월에 5인 미만 사업장까지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고 청소년 노동자의 주간 법정 노동시간을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라는 권고를 했으나 고용부는 거부했다. 2007년 10월에도 학습지 교사와 보험설계사, 대리운전 기사 등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주라고 권고했지만 아직껏 실현되지 않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는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지 우리가 꼭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노동위원장은 “인권위 권고는 되도록 그 취지를 정책에 반영하라는 것인데, 정부 부처가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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