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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잘리고… 가게 닫아도… 비빌 ‘언덕’ 없다

등록 2008-12-11 07:50수정 2008-12-12 16:44

민생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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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뉴딜] 서민경제 살리기 긴급제안
②실업급여 사각지대
일용직·자영업자·청년 구직자들 ‘J의 공포’
고용지원센터 실업자로 북적…안전망 시급
‘실업대란’ 공포가 한국 사회를 덮치고 있다. 각 지역 종합고용지원센터는 이미 실업자들로 북적인다. 10월말 현재 실업급여를 받는 이가 84만7천명이다. 하루 최고 4만원씩밖에 안 되는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낫다. 고용보험 가입률이 30%대에 불과한 비정규직, 폐업 뒤 길거리로 내몰리는 영세 자영업자, 직장 문턱에도 못 가 본 청년 구직자들에겐 실업급여라는 ‘비빌 언덕’조차 없다. 실업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비정규직 ‘있으나마나 실업급여’
건설현장서 “그만 나오라”는데 알고보니 고용보험도 가입안돼

이정석(44·가명)씨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에어컨 배관 일을 하는 일용 노동자다. 대형 건설사의 하청을 받은 ㅅ업체 소속으로 일하던 그는 지난달 갑자기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가뜩이나 일감 없는 겨울철인데다 최근 건설경기 침체를 생각하니, 공백 기간이 얼마나 될지 막막하기만 했다.

‘최후 수단’으로 실업급여라도 받아볼까 싶어 고용지원센터를 두드렸다. 어처구니없게도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지난 5월 ㅅ업체로 옮기면서 팀장한테 “고용보험은 꼭 들어달라”고 단단히 약속받았던 터였다. 팀장은 “몇 푼 안 되니까 내 돈으로라도 내 주마”라고 했다. 당연히 고용보험에 가입된 줄 알고 7개월을 일했는데, 이제 와서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이씨의 한 달 벌이는 200만~300만원 가량이었다. 이제 살림은 치킨집 일을 하는 아내(44)의 벌이(130만원)에 달려 있다. 하지만 기본생활만 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다. 아내는 “대학에 들어간 아이 등록금이라도 보태겠다”며 6개월 전 취업 전선에 나섰다.


다달이 드는 생활비는 200만원 남짓이다. 여기에 매달 이자만으로 70만원을 내야 한다. 2003년 27평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8천만원을 빌렸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 돈으로 치킨호프 체인점을 차렸다가 1억원만 날렸다. 형편이 이러니 하루 3만원 남짓 실업급여라도 아쉽지만 그마저도 받을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이씨는 “알고 보니 다른 동료들도 고용보험 미가입 상태였다”며 “현장에서 (정부가 건설 일용직들의 실업급여 지급을 돕고자 만들었다는) ‘건설고용 보험카드’는 구경도 못 해 봤다”고 말했다. ‘18개월간 180일 이상 근무’라는 실업급여 자격 요건은 건설 노동자에겐 가당찮은 조건이다. 이 때문에 이씨와 같은 건설 일용직에게 실업급여는 여전히 ‘남의 얘기’일 뿐이다.

두 번 ‘폐업’에 일용직으로 추락
“치킨집 두번이나 문 닫았지만 그저 허리띠 조르고 버텨야죠”

김순자(50·여·가명)씨는 남편(52)과 함께 지난해 큰마음 먹고 통닭 체인점을 냈다. 전세금 3천만원에 권리금 3천만원 등 6천만원이 들었다. 통닭집은 한 달 매상이 300만원 가까이 나는 등 그럭저럭 장사가 됐다. 그러나 반 년 만인 지난 1월 가게 문을 닫았다. 일이 너무 힘든데다 업종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네는 두 달 만인 지난 3월 통닭집을 다시 내야 했다. 다른 가게를 알아보고 다녔지만, 장사가 될 만한 가게는 찾기 어렵고 ‘되는’ 가게는 권리금을 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업자금을 계속 생활비로 끌어다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때가 안 좋았다. 이미 덮쳐 온 경기불황으로 “팔아도 남는 돈이 아예 없었다.” 김씨네는 결국 석 달 만에 권리금을 반으로 깎아주고 가게를 처분했다. 장사를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통에 4천만원 남짓 남은 사업자금은 야금야금 깎여 나갔다. 생활비로 끌어다 써야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1년 동안 두 번 폐업하며 사업 자금만 반토막 낸 셈”이라고 말했다. 나이도 쉰을 넘겨 안정된 일자리를 기대할 수 없는 김씨 부부에게 그나마 손에 쥐고 있는 사업 자금이 ‘유일한 미래’다.

계속 자금만 축낼 수 없던 김씨 부부는 최근 가까스로 일자리를 구했다. 김씨는 일당으로 5만원을 받고 식당 부엌일을 시작했고, 남편은 음식 배달일을 하고 있다. 둘 다 4대보험 적용도 안 되고 불안정한 일자리라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기약은 없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무슨 혜택이 있나요? 그저 허리띠 조르고 버텨내야죠.”김씨 부부는 대학 졸업이 코앞인 남매를 두고 있다. 아들(27)은 올해 들어 면접을 50여 차례나 봤지만 허사였다. 김씨의 딸(25)은 “우리 남매가 빨리 일을 시작해야 가계에 도움이 될텐데 …”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업’ 불안에 떠는 영세자영업자
‘1인기업’ 영세공장 사장님들 “이러다 실업상태 내몰릴지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일명 ‘마치코바(동네 공장) 거리’. 쇳가루가 날리고 용접 불꽃 튀는 소리로 시끄러워야 할 거리가 한산하다. 1800여개 영세 공장 중 30%가 셔터를 이미 내렸다. 문을 연 가게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곳에서 13평짜리 공장을 운영하는 김영균(48·가명)씨는 요즘 ‘힘들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30년 동안 건설노동자로 용접일을 해 모은 돈(3천만원)을 투자해 가게를 연 지 올해로 6년째다. 하지만 해마다 꼼꼼하게 매출을 적느라 새카맣게 손때가 탄 장부엔 부쩍 빈칸이 많아졌다. 7월부터는 “죽을 맛”이었다. 7월(341만원), 8월(458만원)에 이어 9월엔 117만원으로 “매출이 바닥”이었다. 물량이 갈수록 줄어서다.

그는 사업자등록을 한 ‘사장님’이지만, 종업원은 없다. 직접 재료 구입, 물건 제작, 세금계산서 발행까지 한다. 가끔 일이 많으면 일용직을 쓰기도 하지만, 올해는 그것마저 뜸해졌다. 대신 아내가 오후에 나와서 자잘한 일을 돕는다.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 점심은 도시락으로 때운다. 고교생 둘, 초등생 하나를 두고 있는데 사교육 한번 시키지 않는데도, 다달이 250만원씩 드는 생활비 대기가 벅차다. 얼마 전엔 1600만원 손해를 감수하고 펀드를 해약해, 그 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이대로 가면 어쩔 수 없이 문 닫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바로 옆에 있는 가게 4곳은 벌써 문을 닫았다. ‘20년 문래동 토박이’였던 옆가게 주인은 한달 전 기계를 담보로 빌린 5천만원을 갚지 못해 야반도주했다. 김씨는 “차라리 일용노동자로 일하던 때가 낫다”고 했다. 지금도 “노동자나 다름없는” 처지지만, 기댈 곳 없이 혼자 불황과 싸우다 막상 실업 상태로 내몰려도 손 내밀 곳이 없어서다. 그저 요즘은 “내후년쯤엔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버틸 뿐이다. 황예랑 최원형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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