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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초대받지 못한 비정규직, 보금자리까지 잃었다

등록 2008-03-11 16:39수정 2008-03-11 18:02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증권선물거래소 앞길에서 지난해 7월부터 182일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천막들이 11일 새벽 용역업체 직원들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고 있다.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증권선물거래소 앞길에서 지난해 7월부터 182일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천막들이 11일 새벽 용역업체 직원들에 의해 강제로 철거되고 있다.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현장] ‘182일 비정규직 투쟁’ 코스콤 농성장 철거
“이명박 정부 들어 첫 노동자 공격…현장 돌아갈 것”

“우리가 뭣 때문에 맞아야 하나”

[%%TAGSTORY1%%]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6시40분,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여의도의 평화로운 아침을 ‘철거’했다. 182일 동안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장이 11일 영등포구청이 동원한 용역 직원들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구청에서 고용한 150여 명의 용역 직원들이 검은색 잠바 차림에 마스크를 쓰고 농성장을 덮쳤다. 이들은 일체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노동자들의 몸을 밀치며 농성장의 천막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해머, 절단기 등으로 새벽의 찬 이슬이 내려앉은 천막을 찢고 기둥을 무너뜨렸다. 천막 안에선 서너명의 노동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앉아 있었다. 용역 직원들은 이들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마구 때리고 강제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천막 바깥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노동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경찰을 찾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말리는 경찰은 없었다. 경찰은 6개 중대 400여명의 전경, 버스 이십여 대를 투입해 농성장 주변을 빙 둘러 싸고 일반 시민들의 현장 접근을 막고 있을 뿐이었다. 코스콤 쪽에서 나온 몇몇 직원들도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현장엔 코스콤 노동자 50여명과 새벽부터 연대지원을 나온 증권산업 노조, GM 대우 노조 소속의 노동자들 150여 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용역 직원들의 무차별한 폭력에 속수무책이었다. 노동자 10여 명이 천막 철근 기둥에 연결한 쇠사슬로 온몸을 묶은 채 버티고 있었지만 용역 직원 서너 명이 달려들어 쇠사슬을 끊고 이들을 끌고 갔다. 강력하게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종이짝처럼 내동냉이 쳐져 바닥에 질질 끌려 나가기도 했다.

잠시 후 격앙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한테 이게 무슨 행패야!”

지난해 7월부터 182일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증권선물거래소 앞길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이 11일 새벽 강제 철거 작업을 벌이던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에 쓰러져 동료에게 업혀 병원으로 가고 있다.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지난해 7월부터 182일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증권선물거래소 앞길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이 11일 새벽 강제 철거 작업을 벌이던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에 쓰러져 동료에게 업혀 병원으로 가고 있다.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한 여성 노동자가 용역 직원에게 윗옷을 붙잡혀 맨살이 드러난 채 붙들려 가고 있었다. 키 작은 여성 노동자 한 명이 자신보다 두 배나 덩치 큰 용역 직원의 옷깃을 붙잡고 천막을 지키려 애쓰다 바닥에 널부러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용역 직원들은 남자건 여자건, 취재진이건 가리지 않고 농성장에 있는 사람에게 행패를 부렸다.

이들의 폭력철거로 노동자들이 줄줄이 부상 당했다. 현장에서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던 김은아(38·우이동)씨는 갑자기 달려든 용역들의 폭력에 팔을 다쳐 근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그 외 다섯 명의 노동자도 코뼈가 부러지고 척추에 골절상을 입는 등 심하게 다쳐 대방 성애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박성배(27·역촌동)씨는 “천막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 갑자기 용역들이 들어와 다짜고짜 주먹으로 내 얼굴을 때리고 발로 찼다. 마구 얻어맞다 보니 꼬리뼈 부분이 부러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진단 결과에 따라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중상이다.

용역 직원들은 폭력철거 현장을 찍는 언론사 취재진의 카메라도 공격하며 폭언을 내뱉었다. 이에 항의하는 기자들을 향해서 “빨갱이 언론사”라고 조롱했다.

노동자들이 반년 넘게 사용하던 생필품들이 깨지고 나뒹굴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영등포구청은 쓰레기차를 동원해 현장에 폭력 철거의 ‘물증’들을 신속하게 치웠다. 한 노동자는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격렬하게 소리를 질렀고 한 노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먼곳을 응시하며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그는 취재를 위해 말을 붙여도 망연자실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김유식 코스콤 비정규지부 대외협력국장은 “어제 숙소 천막만은 철거하지 말아달라고 구청에 공문을 보냈지만 거절 당했다”며 “국감에서도, 노동부에서도 우리 투쟁은 정당하다고 인정해 줬는데 대체 불법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이러는지 너무 속상하다”며 분개했다.

반면, 철거를 맡은 김영진 영등포구청 도로정비과 계장은 “코스콤 쪽에서 우리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며 항의를 많이 했고, 주변 상인들도 해외 바이어들이 많이 오가는 곳인데 창피하다고 민원을 넣었다”며 “우리도 봐줄 만큼 봐준 것이어서 더이상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16일째 노동계 탄압의 신호탄이 오르자, 노동계는 “비정규직 공격의 첫 케이스로 코스콤 노동자들이 선정된 것 아니냐”며 이명박 정부에 대한 강력한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정용건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첫 노동자 공격”이라며 “이것은 870만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선전포고”라고 규정했다.

지난해 7월부터 182일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증권선물거래소 앞길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이 11일 새벽 강제 철거 작업을 벌이던 용역업체 직원들에 폭행당해 쓰러져 있다.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지난해 7월부터 182일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증권선물거래소 앞길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이 11일 새벽 강제 철거 작업을 벌이던 용역업체 직원들에 폭행당해 쓰러져 있다.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도 즉각 성명을 내어 “코스콤 이종규 사장의 위증죄는 처벌하지 않으면서 되레 농성장을 철거한 경찰과 영등포구청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또 “불법은 십 수년 동안 수십 차례나 위장도급 업체를 바꿔가며 비정규 노동자들을 착취한 코스콤 자본이 저질렀다”며 “이명박 정부의 비정규 해법이 폭력과 탄압이라면 이명박 정부 타도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한달도 안돼 노동자 탄압을 하다니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이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냐”며 “이명박이 민주노총을 죽이기 위한 첫걸음을 떼었으니 민주노총의 총투쟁을 여의도에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해 6월 회사 쪽이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정규직 고용의무를 회피하는데 항의해 파업에 들어갔으며, 9월20일부터 증권거래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해왔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날 아침 빼앗긴 농성장 바로 옆에서 다시 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의 요구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윤홍식 코스콤 홍보팀장은 “정규직화는 결코 있을 수 없다”며 “그들은 하청업체 노동자이기 때문에 정규직화를 위한 면담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고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했다.

아침 여덟시가 지나자 환하게 날이 밝았다. 강제 철거된 농성장의 아수라장이 선명했다.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 갈기갈기 찢겨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숙소 천막은 용역 직원의 폭력에 항의하며 절규하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용역 직원들이 입고 있던 잠바에 박혀 있던 태극마크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영상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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