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 및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 뉴코아 강남점 앞에서 ‘매장 농성 강제진압과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해고’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0년 롯데호텔 파업과도 ‘비교’
남편과 9·11살짜리 두 아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양아무개(37)씨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 매장에서 14일 동안 점거농성을 했다. 지난 20일 양씨를 연행한 경찰은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그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양씨는 “지도부도 아니고 잠깐 마이크를 잡고 발언했을 뿐인데, 도대체 뭘 주도했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애들을 내팽개치고 도망갈 우려도 없는 나를 구속시키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랜드 매장 점거농성과 관련해 검·경이 농성자 163명을 모두 입건하고 이 가운데 14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법원에서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기각당하면서 검·경의 과잉대응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장을 기각한 수원지법 전서영 판사는 “피의자들의 주거가 일정하고 가족들과 생활하고 있어 도주 우려가 없으며, 이미 경찰이 증거를 확보한 상태라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이들 가운데는 노조에 가입한 지 두달밖에 안 된 주부도 있다.
이번 검·경의 대응은 ‘과잉진압’ 논란을 불렀던 2000년 롯데호텔 파업과도 비교된다. 롯데호텔 노조원 1400명은 2000년 6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파업을 했다. 당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설치될 예정이던 남북 정상회담 관련 시설의 운영에 차질이 생겼고, 같은달 29일 경찰은 테러진압을 주요 임무로 하는 경찰특공대 3800여명을 투입해 1100여명을 연행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쟁의대책위원회 간부 등 13명의 구속영장만 신청해 5명을 구속하는 데 그쳤다. 이남경 전 롯데호텔 노조 사무국장은 “이랜드 점거농성보다 당시 사태가 훨씬 심각했지만 단순 가담자는 대부분 훈방됐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청 최병민 수사국장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약자라고, 돈을 많이 못 버는 등 동정심이 든다고 해서 법 집행을 안 할 수는 없다”며 “이번에 14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최소한”이라고 말했다. 정점식 대검찰청 공안2과장도 “과거에는 가담자를 훈방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본인들이 입건을 각오하고 장기간 농성한 것이어서 처벌하지 않는 게 오히려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법인 지평의 류혜정 변호사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무더기로 기각한 것만 봐도 검·경이 구속 요건을 갖춰서 영장을 청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법적으로 충분한 검토 없이 여론이나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강하게 대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정애 이정훈 전정윤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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