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시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13일 오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3층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힐 것과 보호시설에 대한 실태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여수/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이주노동자 정책 이대론 안된다②] 허점많은 고용허가제
사업주 말만 믿고 ‘책임 덧씌우기’ 일쑤
“두달이상 쉬면 안돼” 규정도 독소조항 베트남 출신인 누반동(25)은 2004년 11월 고용허가제에 따라 멀쩡히 한국땅을 밟았지만, 2년도 안 돼 불법체류(미등록)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사이 네차례 회사를 옮겼기 때문이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귀책사유로 세차례 이상 직장을 옮기면 합법적인 지위를 잃는다. 그의 첫번째 직장은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ㄱ식품회사였다. 이 회사는 그가 들어간 지 한 달이 안 돼 부도가 났다. 두번째로 찾은 직장은 인천에 있는 ㅊ공장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1년 가까이 일했지만, 연장근무 수당을 받지 못해 사장에게 따지다 해고당했다. 2005년 11월 세번째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사장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가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였다. 네번째 들어간 경기 김포의 ㅅ회사에서도 얼마 지나 해고당했다. 그는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나왔지만, 사업주들은 그의 사업장 변경 사유를 ‘본인이 적응을 못해서’라고 신고했다. 그의 귀책사유가 되는 셈이다. 이로써 그는 합법의 레이더망에서 사라졌다. 휴대폰으로 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정경훈 상담원은 “이주노동자로서는 본인의 귀책사유가 아닌 상황에서 사업장을 옮겼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말을 잘 못하다 보니 억울하게 당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제도와 이를 악용하는 기업주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합법의 신분에서 불법으로 전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11일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로 숨진 중국동포 김성남(54)씨도 건축업 비자로 들어와 건축일이 아닌 가두리 양식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의 낙인이 찍혔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은 국내에 체류하는 동안 업종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인권·시민단체에서는 합법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의 신분으로 내모는 고용허가제 독소 규정들을 고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이직을 세차례로 제한하는 규정과,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든 두 달 이상 쉬면 안 된다는 규정이 시급히 개선돼야 할 대목으로 꼽힌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고용허가제에서 허용하는 이주노동자의 국내 체류기간 3년이 너무 짧아 이들의 불법적인 연장 체류를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있다. 2003년 경기개발연구원 설문조사를 보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들어올 때 브로커에게 평균 3900달러(약 370만원)를 주었다. 그러나 3년으로 한정된 체류기간 동안 브로커 비용을 만회하면서 애초 목표만큼 돈을 벌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재단의 정정훈 변호사는 “체류기간을 2년 정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용인 이주노동자 쉼터의 고기복 대표는 “고용허가제를 전면 실시하면서 제도적으로 개선된 부분이 많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으로 내모는 함정이 여러 곳에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부는 현실론으로 맞서고 있다. 노동부 외국인인력고용팀 박기우 사무관은 “무한대로 자유로이 사업장을 이동하고 내국인과 동등하게 대우를 해주면 좋겠지만,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이 내국인 근로자의 일자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규정을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이주노동자 절반 “임금체불 경험”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에 집중
신고땐 강제출국 위험 ‘속앓이만’ 지난 1999년 관광비자로 입국해 미등록 외국인 신분으로 인천의 한 주방용품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후세인(38)·로마(32·여) 부부. 이들은 4달치 임금 950만원을 받지 못해 네살짜리 아이의 어린이집 원비도 4달째 내지 못하고 있다. 사장은 밀린 임금을 볼모로 인신구속에 가까운 강제노역을 시켰다. 이들 부부는 지난달 중순께 시민단체인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를 찾았다. 센터쪽의 도움을 받아 사장을 만날 수 있었지만, 사장은 “80% 가량의 임금을 이미 지급했고 130만원 정도만 더 주면 된다”며 당당하게 ‘가짜’ 임금대장을 내놓았다. 후세인 부부는 미리 준비한 상세한 임금 미지급 내역서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결국 사장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서야, 밀린 임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에게 임금은 생존의 문제다. 낯선 한국땅에서 갖은 수모와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자신과 가족의 생존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 체불은 상습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 지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주노동자 둘 가운데 한명꼴인 51.4%가 임금 체불을 경험했다. 임금체불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불법체류라는 신분상의 약점을 사업주들이 악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이주노동자들의 체류조건별 임금체불 현황을 조사해 봤더니, 임금체불 경험이 있는 전체 이주노동자 가운데 절반(50.5%)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평균 임금체불 기간은 2.74개월, 체불액은 236만7000원에 이르렀다. 사업주에게 항의해봤자 면박과 위협만 돌아온다. 김희선 한국이주노동자센터 상담실장은 “사업주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법적 대응을 못 할 것으로 여긴다”며 “1~3개월쯤 체불을 해 스스로 그만두게 하거나, 아예 출입국관리소 등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사정을 호소할 곳도 마땅히 없다. 임금체불은 근로기준법 위반이어서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지만, 마구잡이 단속과 강제출국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 지난 2일 몽골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ㅂ아무개(32·여)가 퇴직금 600만원을 주지 않은 사업주를 신고하기 위해 한 지방노동사무소를 방문했다가 사업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된 일이 있다. ㅂ은 강제 출국될 위기에 놓였다가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노동부에서 해결이 안 될 경우 재판을 걸 수 있지만, 이 과정은 더욱 고되고 어렵다. 적절한 법률적 도움을 받기도 어렵거니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안건수 외국인노동자인권복지회 회장은 “불법체류로 단속된 경우 노동부가 체불된 금액을 확정해주면 정부가 먼저 지급해주고 나중에 사업주에게 받아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두달이상 쉬면 안돼” 규정도 독소조항 베트남 출신인 누반동(25)은 2004년 11월 고용허가제에 따라 멀쩡히 한국땅을 밟았지만, 2년도 안 돼 불법체류(미등록)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사이 네차례 회사를 옮겼기 때문이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귀책사유로 세차례 이상 직장을 옮기면 합법적인 지위를 잃는다. 그의 첫번째 직장은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ㄱ식품회사였다. 이 회사는 그가 들어간 지 한 달이 안 돼 부도가 났다. 두번째로 찾은 직장은 인천에 있는 ㅊ공장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1년 가까이 일했지만, 연장근무 수당을 받지 못해 사장에게 따지다 해고당했다. 2005년 11월 세번째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사장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가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는 이유였다. 네번째 들어간 경기 김포의 ㅅ회사에서도 얼마 지나 해고당했다. 그는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나왔지만, 사업주들은 그의 사업장 변경 사유를 ‘본인이 적응을 못해서’라고 신고했다. 그의 귀책사유가 되는 셈이다. 이로써 그는 합법의 레이더망에서 사라졌다. 휴대폰으로 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정경훈 상담원은 “이주노동자로서는 본인의 귀책사유가 아닌 상황에서 사업장을 옮겼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말을 잘 못하다 보니 억울하게 당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제도와 이를 악용하는 기업주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합법의 신분에서 불법으로 전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11일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로 숨진 중국동포 김성남(54)씨도 건축업 비자로 들어와 건축일이 아닌 가두리 양식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의 낙인이 찍혔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은 국내에 체류하는 동안 업종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인권·시민단체에서는 합법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의 신분으로 내모는 고용허가제 독소 규정들을 고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이직을 세차례로 제한하는 규정과,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든 두 달 이상 쉬면 안 된다는 규정이 시급히 개선돼야 할 대목으로 꼽힌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고용허가제에서 허용하는 이주노동자의 국내 체류기간 3년이 너무 짧아 이들의 불법적인 연장 체류를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있다. 2003년 경기개발연구원 설문조사를 보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들어올 때 브로커에게 평균 3900달러(약 370만원)를 주었다. 그러나 3년으로 한정된 체류기간 동안 브로커 비용을 만회하면서 애초 목표만큼 돈을 벌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재단의 정정훈 변호사는 “체류기간을 2년 정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용인 이주노동자 쉼터의 고기복 대표는 “고용허가제를 전면 실시하면서 제도적으로 개선된 부분이 많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으로 내모는 함정이 여러 곳에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부는 현실론으로 맞서고 있다. 노동부 외국인인력고용팀 박기우 사무관은 “무한대로 자유로이 사업장을 이동하고 내국인과 동등하게 대우를 해주면 좋겠지만,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이 내국인 근로자의 일자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규정을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위로하는 주한 중국대사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가 13일 전남 여수 성심병원을 찾아 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시설 화재로 다친 자국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주노동자 절반 “임금체불 경험” 불법체류 미등록 노동자에 집중
신고땐 강제출국 위험 ‘속앓이만’ 지난 1999년 관광비자로 입국해 미등록 외국인 신분으로 인천의 한 주방용품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후세인(38)·로마(32·여) 부부. 이들은 4달치 임금 950만원을 받지 못해 네살짜리 아이의 어린이집 원비도 4달째 내지 못하고 있다. 사장은 밀린 임금을 볼모로 인신구속에 가까운 강제노역을 시켰다. 이들 부부는 지난달 중순께 시민단체인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를 찾았다. 센터쪽의 도움을 받아 사장을 만날 수 있었지만, 사장은 “80% 가량의 임금을 이미 지급했고 130만원 정도만 더 주면 된다”며 당당하게 ‘가짜’ 임금대장을 내놓았다. 후세인 부부는 미리 준비한 상세한 임금 미지급 내역서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결국 사장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서야, 밀린 임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에게 임금은 생존의 문제다. 낯선 한국땅에서 갖은 수모와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자신과 가족의 생존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 체불은 상습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 지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주노동자 둘 가운데 한명꼴인 51.4%가 임금 체불을 경험했다. 임금체불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불법체류라는 신분상의 약점을 사업주들이 악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이주노동자들의 체류조건별 임금체불 현황을 조사해 봤더니, 임금체불 경험이 있는 전체 이주노동자 가운데 절반(50.5%)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평균 임금체불 기간은 2.74개월, 체불액은 236만7000원에 이르렀다. 사업주에게 항의해봤자 면박과 위협만 돌아온다. 김희선 한국이주노동자센터 상담실장은 “사업주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법적 대응을 못 할 것으로 여긴다”며 “1~3개월쯤 체불을 해 스스로 그만두게 하거나, 아예 출입국관리소 등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체류자격별 임금체불 경험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사정을 호소할 곳도 마땅히 없다. 임금체불은 근로기준법 위반이어서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지만, 마구잡이 단속과 강제출국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 지난 2일 몽골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ㅂ아무개(32·여)가 퇴직금 600만원을 주지 않은 사업주를 신고하기 위해 한 지방노동사무소를 방문했다가 사업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된 일이 있다. ㅂ은 강제 출국될 위기에 놓였다가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노동부에서 해결이 안 될 경우 재판을 걸 수 있지만, 이 과정은 더욱 고되고 어렵다. 적절한 법률적 도움을 받기도 어렵거니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안건수 외국인노동자인권복지회 회장은 “불법체류로 단속된 경우 노동부가 체불된 금액을 확정해주면 정부가 먼저 지급해주고 나중에 사업주에게 받아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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